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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석유 시추, 석유는 어떻게 사용되게 되었나? - 그 역사와 상식

2015. 7. 22.

[석유 시추, 석유는 어떻게 사용되게 되었나? - 그 역사와 상식] 




석유는 어떻게 발견 되었으며 처음엔 어떻게 시추하게 되었을까요? 현대에는 당연히 석유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150년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휘발유, 플래스틱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석유를 사용하는 것에는 생각지 못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운 좋게 사용되기 시작한 석유 시추의 역사를 보다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약으로 먹고 건축물에 바르던 석유 


인류가 20세기 들어서 처음 석유를 안 것은 아닙니다. 이미 기원전 3000년경에 우연히 발견한 아스팔트를 건축물에 이용했다는 연구도 있고, 역사 이래에 페르시아, 인도, 유럽, 인디안, 심지어 일본에서도 불을 밝히기 위해 썼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사용하게 된 것이므로 그리 중요한 내용들은 아닙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한 가지는 초기의 석유가 약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먹기에는 고역이었을 석유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팔았었고 19세기까지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석유를 시추하고 있는 모습. 먼저 원유를 뽑아 올린 후 정제를 거쳐 석유가 된다)


석유를 시추하기 위한 파쇄방식 중에는 무거운 추를 반복적으로 떨어트려서 땅을 파는 방식이 있고 드릴이나 수압으로 뚫는 방법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 추를 떨어트리는 방법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석유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과 소금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의 내륙지역은 바다와 워낙 멀어서 소금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고 들어가 물이나 소금을 캐 올렸는데 기원전 4세기~서기 1세기에 이미 300m 이상을 파들어 갔었다고 합니다. 


아직 인간과 크게 관계없었던 석유는 17세기에 간단한 정재방법이 고안되고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추방법이 시도되는 등 약간씩 발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발견의 시대에 들어가는 것은 19세기가 돼서야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최고의 기름은 고래 기름이었습니다. 덩치가 커서 양도 많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고래가 바다에 무한정 넘치는 생물이라 생각하고 마구 학살을 했었습니다. 



(바다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거대한 플랜트 시설)






석유 시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이 시작하다 


실질적인 현대식 원유의 시추는 18세기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일단 프랑스와 미국에 등유 제유소가 들어서면서 등유의 수요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금을 파내기 위한 우물에서 기름이 올라오자 이를 약이라면서 팔게 되었는데 표지에 기름을 퍼 올리는 그림을 넣었었습니다. 

그러자 그 그림을 본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퍼 올리면 기름을 쉽게 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석유시추를 시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생산 참고 자료 / 출처: USGS)


마침내 19세기 중반에 드래프트라는 사람이 현대식 파쇄방식으로 최초의 유정을 발견하여 세계 석유생산량을 하루 만에 두 배로 늘려 놓게 됩니다. 보통은 수백 미터 이상 파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원유인데, 그는 운 좋게도 겨우 20여 미터만 파고도 유정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이때가 1859년이었는데, 세계석유협회에서는 이 해를 현대식 석유시추의 원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엔 단지 등불을 켜기 위한 등유를 얻기 위해서 시추에 들어간 것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등유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서 휘발유 등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가장 많이 쓰이는 종류의 석유가 됩니다. 


그렇게 19세기 말에는 세계적으로 석유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석유가 들어온 것도 이때입니다. 개화파 사신들이 일본에 갔다가 최초로 석유램프와 성냥이라는 것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냥 신기한 기름에 불과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석유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한미수교를 맺은 후였고 1920~30년대에 일제가 중국 전쟁 보급용 정유소를 세우면서 실질적인 석유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등유를 이렇게 사용했다. 촛불보다도 강했던 석유)






등유, 휘발유... 아스팔트까지, 석유의 놀라운 쓰임새 


석유는 정제를 통해서 여러 물질을 얻어내는데, 통칭 석유라고 부르지만 정제과정에 따라 휘발유, 등유, 중유, 아스팔트 등 여러 물질이 나옵니다. 

처음엔 그저 등유가 필요해서 시추하기 시작한 석유... 그런데 찌꺼기로만 생각했던 부산물에서 가솔린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기차, 자동차 등 화려한 석유 산업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필요 없어서 버렸던 가솔린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20세기가 되면서 자동차의 보급으로 석유는 일반인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에너지로 거듭납니다. 



(석유 정제의 찌꺼기인 셈인 아스팔트 콜타르 - 화장품도 만든다)


그 중에는 화장품도 있습니다. 4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원유를 정제하면 1등급으로 나오는 것이 항공유입니다. 그래서 비행기값이 비쌉니다. 그 다음이 휘발유, 경유 등등인데 마지막에 찌꺼기로 분류되는 것이 콜타르입니다. 찌꺼기는 도로에 아스팔트를 까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콜타르로 만드는 것이 바로 마스카라, 아이라인 같은 것입니다. 콜타르와 비슷하지만 약간 위의 등급에 있는 미네랄오일로 만드는 것이 베이비오일, 파운데이션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석유는 상상도 못할 곳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석유가 대폭적인 성장을 한 것에는 내연기관의 발명 외에도 전쟁의 영향이 큽니다. 세계 제1차 대전과 세계 제2차 대전을 통해 탱크, 비행기 등 무기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석유는 절대적인 필수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석유 때문에 일본과 독일은 전쟁지역을 확대해야했고 독일과 일본에게는 매우 부담이 되는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석유자원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는 미국이 연합국에 합류한 것은 독일과 일본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1920년대의 자동차. 석유의 폭발적인 사용을 견인했다)






세계의 영향력 - 신흥재벌들과 석유자원 


지금은 상식적으로 석유라고 하면 중동을 떠 올리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석유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과 영국, 일부 중동지역, 그 밖의 국가들이 석유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의 신흥갑부들 중에는 실제로 석유를 발판으로 한 재벌이 많았고 지금도 미국 상류층에 다수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석유가 유명하게 된 것은 1950년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들이 속속 개발되면서부터 입니다. 

이후 석유공급의 주도권은 완전히 중동으로 넘어갑니다. 1960년대에 중동 산유국들이 OPEC(석유수출기구)를 결성하면서 세계적인 입김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강국들. 실질적인 석유 생산국은 더 많다)


70년대만 해도 석유는 앞으로 60년 밖에 못 쓸 것이라고 예상했고 OPEC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면서 오일쇼크가 있기도 했었지만,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향후 사용 가능한 석유량은 60년 정도라고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까지 석유를 채굴해내기 때문인데, 현재 석유 시추는 15000미터(해상의 경우 3000미터)까지도 성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더구나 일부 지역에서는 원유량이 바닥을 보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석유가 샘솟기 시작하기도 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60년 밖에 안 남았다는 석유 고갈 문제에 대해서, 석유재벌들이 석유값을 올려 돈을 벌기 위해서 음모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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