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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용산참사 - 영화 소수의견, 두개의 문... 용산참사의 실화를 기억하다

2015. 7. 3.

[용산참사 - 영화 소수의견, 두개의 문... 용산참사의 실화를 기억하다] 



영화 "소수의견"은 용산참사 실화가 모티브이지만 용산참사를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감독의 말이 있었습니다. 영화 소수의견은 소설 "소수의견"을 2015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 개봉한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 실화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용산참사라는 같은 실화를 가지고, 소수의견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을 다루었고 두 개의 문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라는 측면에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용산참사 실화 - 소수의견의 상황과 실제 의혹들 


영화 소수의견은 2015년 개봉하여 예매순위 4위를 기록했고 두 개의 문은 2012년 개봉하여 7만 명의 관객동원을 하였습니다. 

소수의견은 철거 시위현장에서 아들의 죽음을 본 아버지가 우발적으로 경찰을 살해하고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 안타까운 사연을 픽션으로 구성하였고,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 화재사건의 본질부터 문제점까지 다룬 논픽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소수의견의 감독은 김성재이며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이 출연하였고 두 개의 문의 감독은 김일란과 홍지유입니다. 



(2009년 용산 도시정비 사업지구에서의 용산참사 / 출처: wikipedia.org)



소수의견에서 나오는 줄거리 중에 실화였던 용산참사의 문제점이 등장합니다. 소수의견 중에는 철거현장에서 열여섯 살의 아들이 죽자 스무 살의 의경을 죽이고 잡힌 아버지의 주장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자는 용역깡패가 아니라 경찰이었다고... 소수의견의 이 부분은 실화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실화와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용산참사 실화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경찰이 기소했고, 사고 때문에 상중임에도 구속되어 옥중고초를 치렀습니다. 


소수의견은 변호인마저 경찰기록을 참고자료로 볼 수 없도록 차단된 불공평한 재판이 진행됩니다. 용산참사 사건의 재판실화에서 이 부분은 똑같습니다. 검찰이 변호인 측의 사건기록 열람을 거부한 것입니다. 

같은 사건임에도 사건기록 경찰정보가 검찰에게만 독점되어 변호인은 불리한 재판을 진행해야 했고, 재판 중에 공개를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기각해 버립니다. 

용산참사 재판 실화에서는 결국 변호인들이 항의의 표시로 변호 사퇴를 하고 국선변호인들이 재판을 넘겨받았습니다. 이 재판에서 철거민들의 재판부 기피신청도 있었지만 역시 기각되고 말았습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의 비극적인 아들 사망장면 / 출처: joongdo.co.kr)



영화 소수의견 중에 국민참여재판 장면이 있습니다. 변호인 측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자 재판부는 증인수가 너무 많다는 재검토 요구를 합니다. 소수의견에서는 결국 국민참여재판이 받아들여지지만 실제 용산참사 재판에서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변호인 측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증인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기각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검찰 측이 증인을 중복으로 신청하여 재판을 방해한다는 변호인 측의 이의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소수의견의 영화적 시선은 공권력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실화적 의혹도 모티브로 다루었습니다. 

영화 소수의견 중에 TV를 통해 철거참사 뉴스가 나온 뒤에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살인자 혐의로 검거되었더라도 아직 재판이 있기 전이므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소수의견에서는 얼굴을 공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철거참사사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될까봐 관심을 돌리려는 정치적 작전입니다. 

소수의견에서 변호인들은 경찰과 정부가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검찰이 무엇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 밝히겠다는 영화 소수의견의 대사)



용산참사 실화와 비교할 때 실화에서도 그런 의혹이 있었습니다. TV의 국민여론조사투표에 용산참사가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참여하라는 경찰청의 지시를 받고 광주경찰청이 문자메시지를 돌려서 참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이 TV조사에서는 용산참사의 책임이 경찰과 철거민 양쪽에 반반의 잘못이 있다는 투표 집계가 나오게 됩니다. 

또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실에서도 국민여론을 호전시키기 위해 살인사건 뉴스를 이용하라는 이메일이 발송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경찰과 청와대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몇 년 후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 사건과 군 사이버부대의 온라인 여론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정부의 여론조작에 대한 불신감이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 소수의견 메인 예고편. 2015년 개봉)







용산참사를 보는 시각은 넓어야만 이해가 간다 


용산참사 사건을 보는 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법을 위반하였으니 자업자득이다라는 측과 사회갈등 처리에 대한 사회적 문제점을 보는 측입니다. 

법의 시시비비만을 가리는 좁은 시각보다는 인과관계와 미래의 사회구조를 폭넓게 볼 줄 아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사회는 문제점을 파악할 때 발전합니다. 이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논쟁만 낳을 뿐이고 교묘히 법을 피하는 강자 앞에서 법을 잘 모르는 약자는 영원히 속박 당합니다. 그러므로 법을 어겼냐 안 어겼느냐만 보는 좁은 시각은 위험합니다. 

TV토론회에서 오로지 철거민들이 잘했냐 잘못했냐만을 따지는 참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아무리 논쟁을 해도 끝이 나지 않을 사건입니다. "전체"라는 사회구조를 보는 눈은 없고 오로지 1대1의 대결로 생각한다면 어떤 해법을 제시해도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소수의견의 주연 유해진, 윤계상, 김옥빈)



용산참사는 2009년 추운 1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 서울시장은 오세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김석기였습니다. 사고책임을 지고 퇴임한 김석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모 공사의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위법적인 측면을 먼저 따지자면 철거시위자들이 위법을 한 것이 맞습니다. 불법점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화염병을 밖으로 던져서 길가의 시민이 불편을 격고 주변상가에 불이 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공권력에 폭력으로 맞서서 진압 중 경찰도 같이 사망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전국철거민연합회에서 시위에 가세하면서 더욱 과격해졌다고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당시 시위자를 무조건 미화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사업을 시행하는 거대자본과 그 거대자본을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에 비해서 약자였다는 사실입니다



(화염병을 투척하는 위법행위. 진압작전 이전에 망루에 있던 인화물질 / 출처: flickr.com)



다음으로 볼 것은 용산참사의 원인입니다. 

서울시는 도시정비사업을 한다며 삼성물산을 대표업체로 하는 사업을 승인하고 강제철거 등의 권한도 넘겨줍니다. 대우증권 자료를 인용하여 삼성물산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서 가져가게 될 이익은 무료 1조 4천억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업이 시작되자 주변 땅값이 올라서 상인들이 힘들어졌습니다. 또한 법적인 허점을 노리고 공공연한 악행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보상비를 받고 이주한 철거 상인들이 더 많았지만,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한 것이었고 남은 철거민들이 너무 적은 보상비라고 반발하며 용산참사를 겪게 되었습니다



(위험성은 대비 안한 경찰작전, 그리고 화염에 쌓인 용산참사 망루)



하지만 그 보다도 극한 상황이 되게 만든 것은 겨울철에 강제철거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엄동설한에 쫓겨날 상황을 맞은 철거민들의 감정이 매우 격해지게 되었습니다. 

반론으로는 이들 중 일부는 사업이 시작되면 철거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임대계약서에 서명을 한 사람들이라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빠른 사업진행을 위한 강제적 철거가 결국 감성싸움을 부채질한 것은 맞습니다. 


또 분석해 봐야할 문제점은 강제해산 과정에서의 위험성입니다. 

철거민들의 시위에 대해 대화의 기회도 없이 무조건 법적으로 위법이니 해산시킨다는 강경책만 존재하였습니다. 이미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 새총 등으로 저항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은 해가 져서 어두컴컴해지자 작전을 시작하였습니다. 3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한 가운데 컨테이너를 타고 시위대가 점거한 4층 건물 옥상으로 특공대식 작전을 시작한 것입니다. 더구나 화재에 대한 방비는 전혀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망한 경찰도 경찰 지휘부에 의해 희생된 것입니다. 



(영화 두 개의 문 메인 예고편)






두 개의 문 - 강자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공권력인가? 


영화 "두 개의 문"은 극장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놀라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들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약자,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문은 오히려 경찰특공대의 눈으로 접을 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철거민 가족들과의 증언과는 거리를 둡니다. 그렇기에 보는 사람은 훨씬 객관적인 사건 추적임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두 개의 문에서 말하는 것은 누가 잘했고 누가 옳냐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문은 "싸움"이 아니라 "비극"으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두 개의 문"의 뜻은 용산참사 현장의 망루로 통하는 문과 잠겨서 다른 데로 갈 수 없는 문을 말합니다. 



(영화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공권력과 철거민의 싸움이 아니라 현실상황이 주는 비극이다)



컨테이너를 통해 옥상 접근이 이루어지자 용산참사의 시위대는 당황하여 공격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옥상 망루에 있던 철거민 4명과 경찰 1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철거민들이 일부러 인화물질을 뿌려서 화재를 일으키게 되는 동영상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실제 진압에 참가했던 특공대원은 실제로 화염병을 인화물질에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영화와 관계없이 다른 매체를 통해 의견을 말하는 전문가들도 그렇게 춥고 건조한 날씨에 인화물질이 가득한 공간에서는 가벼운 스파크만으로도 화재가 날 수 있다고 조언하였습니다. 
과잉진압이었냐 아니었냐의 차이는 안전을 위해 좀 더 다른 방법 생각해 보았느냐, 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처럼 대했느냐의 차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경찰의 고의적 화재 주장과 철거민의 과잉진압 때문에 생긴 우발적 화재 주장은 재판장에서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난 것으로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화재와 사망에 대해 철거민 당사자 20명과 철거용역업체 7명은 재판에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잉진압 등의 경찰 책임자는 단 한명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 4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당한 용산참사의 책임공방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 현장의 망루 위에서 살아남은 철거민 전원은 유죄를 받고 복역하게 됩니다. 



(영화 두 개의 문을 제작한 김일란 감독과 홍지유 감독 / 출처: youtube.com)



시위대의 위법도 맞고 경찰의 과잉진압도 맞는 상황에서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을 뒤집어 쓴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에서 제기되는 논제입니다. 더구나 용산참사는 경찰 수뇌부가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진행한 유신시대식 사고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더욱 문제이겠습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용산참사가 배후의 전문시위꾼들 때문이라는 대변인 브리핑을 했었습니다. 또한 2013년 KBS는 보도국장의 의지에 따라 용산참사가 아니라 용산사건이란 명칭으로 보도를 했을 정도입니다. 사회라는 개념은 없고 오로지 제거해야 할 "적"만 보이는 듯한 태도입니다. 이들에게 "적"은 강한 자에게 항거하는 일반 시민인 것입니다


사회 갈등을 대비도 없이 주먹구구식, 적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식으로 대한 공권력이 비판의 핵심인데도 위법을 했으면 시위대가 죽어도 싸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사회갈등을 전쟁놀이로 인식하는 좁은 시각입니다. 

과거에 국민이 정권의 시녀 정도로 인식되던 개념이 민주화시대를 맞이하면서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보수의 물결 속에서 다시금 되살아나는 구시대 방식의 역사인식이 문제입니다. 21세기는 21세기 다워야 합니다. 구태여 20세기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21세기만의 시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는 주차장으로 사용될 뿐인 용산참사 현장.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위 사진은 엄청난 예산만 쓰고 급하게 강제철거를 하느라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용산참사 현장의 사진입니다. 지금은 겨우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럴려고 충분한 대화도 없이 성급하게 싸워가며 강제철거를 했던 것인가요? 

사실 이 용산참사는 공권력과 시민의 대결이 아니라 강제철거를 원하는 거대자본 측과 강제철거를 당하는 측의 대결이었지만, 강제철거를 한 측의 책임은 가벼이 다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거대 자본이 강자이고 대항하는 자는 상대적으로 약자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서 있던 경찰과의 싸움인 것으로 잘 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후에 불거진 재판과정에서의 불공평성과 권력기관의 여론조작 문제는 나중에라도 다시 검토해야할 사안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정권의 도덕성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론적으로 용산참사는 한국사회가 극한 자본주의 몰가치성시대가 되면서 경제적 이익을 가진 강자와 약자 간의 갈등이 무슨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연구해야만 할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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