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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731부대 - 마루타 생체실험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731부대

2015. 4. 13.

[731부대 - 마루타 생체실험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731부대] 




마루타 생체실험을 하고도 잘 먹고 잘 살았던 731부대 책임자들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1930년대에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 내에 있던 부대가 731부대입니다.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생체실험을 했던 731일 부대는 정작 일본에서는 잘 알지 못하며 한국에서도 마루타라는 소설로 겨우 알려져 있습니다. 단지 중국에서나 참혹한 731부대 생체실험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중입니다. 



731부대는 처음엔 관동군 방역급수부라는 이름으로 있었는데 이시이 시로가 부임하면서 생체실험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중국에 진출하면서 수질이 안 좋은 물 때문에 사망자가 생겼는데 물 공급을 해결하고자 운영되던 부대가 731부대의 전신인 방역급수부입니다. 즉 일본군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임무가 731부대의 처음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시이 시로 중장이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이름을 731부대로 바꾸고 생체실험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731부대는 사상, 방첩 업무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시이 시로는 쿄토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군의관출신 장군이었는데 인간성에 대한 소문으로는 이기적이고 출세욕이 매우 강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731부대에서 비인간전인 참혹한 마루타 실험을 자행하였음에도 미국의 보호 아래 전범처벌에서 제외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한 번의 기소도 당하지 않은 채 잘 살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실험용 생쥐농장을 운영하고 여관을 열어서 미군을 상대로 매춘업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의료계에서 원로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쿄토대학에는 그의 동상도 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731부대는 생체실험에서 산 채로 해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시이 시로 뿐만 아니라 당시 731부대에서 마루타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인들은 전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도쿄지사, 의학협회장, 일본올림픽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고위직을 지냈다고 합니다. 731부대에서 책임자급에 속했던 인물들은 거의 다 무사히 일본 귀환에 성공하여 의료계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의 승자로 일본을 관리하던 미국은 731부대가 저지른 실험내용을 미국에 다 넘겨주는 대가로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들을 전범재판에 세우지 않았으며 심지어 돈을 주며 이들과 정보교환을 하기도 했습니다. 


731부대는 일본 천왕의 칙령으로 세워진 부대로는 유일합니다. 그럼에도 일본 천왕은 전범 재판에서 제외되었고 모든 범죄를 면책 받았습니다. 

당시 주일미국 책임자는 맥아더 장군이었는데 맥아더의 비호 아래 일제의 잔재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일본의 전후 처리는 주변국의 피해와 관계없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전범자의 죄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마루타 생체실험 부대인 731부대 전경 사진)






천인공노할 731부대의 마루타 생체실험 


마루타의 뜻은 생체실험 대상자를 의미합니다. 

일설에서는 마루타의 뜻이 통나무라는 뜻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731부대는 생화학무기 특수전 부대였기 때문에 보안을 위해서 철저히 감춰졌는데, 생체실험을 감추기 위해 농담처럼 마루타라고 불렀다는 의견도 있으나, 731부대 내에서는 마루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사람을 통나무처럼 마구 절단하고 사용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731부대입니다. 


만주 내의 731부대에서의 생체실험은 적어도 3000천명 이상의 끔찍한 살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만명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직접 실험 외에도 중국 민간인 지역에 전염병을 퍼트려서 수만명이 피해 받고 죽기도 했습니다. 

전쟁 패망으로 급히 731부대를 폐쇄하느라 생화학무기를 미처 폐기하지 못한 생화학무기가 중국에 100톤이나 묻혀 있다고도 합니다. 


731부대에서의 잔악한 마루타 생체실험은 마취도 없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더욱 끔찍합니다. 죽은 상태에서 하거나 마취를 한 상태에서 생체실험을 하면 인체의 변화가 생겨서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봐 731부대의 실험은 생생한 자각을 하는 상태에서 생체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인체해부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진공이나 원심분리기에 사람을 넣은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 / 출처: exblog.jp)


신체를 절단하여 엉뚱한 곳에 붙여 본다든지, 피를 빼내서 얼마나 사는지 본다든지, 일부러 동상에 걸리게 하거나 전염병에 걸리게 한 후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본다든지, 임산부와 태아를 가지고 실험한다든지, 뇌나 위장이나 폐 등을 꺼내버린다든지, 산채로 피부를 다 벗겨낸다든지, 세균전 무기를 실험해 본다든지, 총이나 폭탄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용으로 쓴다든지, 원심분리기로 수분을 다 뽑아버린다든지, 피 대신 바닷물을 넣거나 진공에 넣어본다든지 하는 생체실험을 마루타들에게 자행하였습니다. 

차마 관련 사진을 함께 올리지 못할 정도로 참혹합니다. 


이 모든 생체실험을 마취도 없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저질렀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실험이 끝나면 고통스러워하는 피실험자들을 그대로 불에 태워 소각해 버렸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수용자들도 태평양 전쟁이 끝나서 급히 731부대를 정리해야 할 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일부 서양인 포로들도 있었지만 한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중국인들을 주 대상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자행되었는데, 중국인 마루타가 가장 많았고, 수용소 이외의 지역에 세균살포 실험을 했을 때 죽은 민간인도 중국인이 가장 많았습니다. 

731부대원들은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가지고 장난이나 내기를 하규도 했으며, 말을 잘 안 듣는 수용자는 때려죽이는 연습에 사용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731부대를 주제로 한 중국영화 살인공장의 한 장면)


 




마루타 생체실험 부대는 731부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체실험은 만주의 731부대에서만 자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내의 의과대학이나 육군시설 내에서도 행해졌는데 포로와 항일 재소자를 대상으로도 생체실험을 했었다고 합니다. 

한국 시의 거목인 윤동주 시인은 수감 중에 뇌일혈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죽기 전에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피 대신 바닷물을 넣어보는 생체실험 때문에 죽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흔히 일본의 마루타 생체실험이라고 하면 만주에 있던 731부대만을 떠 올리는데, 일본의 생체실험을 행한 부대는 731부대 외에도 중국 내에 5~6개 이상의 부대를 운영하였습니다. 다만 대규모 현지실험이 진행된 곳이 731부대이기 때문에 가장 유명할 뿐이고, 전쟁 중에 일본 전체가 반인륜적인 생체실험을 용인하였다는 시각이 맞습니다. 


한국은 해방이후 일제청산을 위해 설치했던 반민특위마저도 보수우파들이 반대하고 이름 모를 테러를 받아 강제로 해산 당했는데, 중국은 일제의 잔혹함을 잊지 않고자 원형을 복구하고 전시관을 만들어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흑룡강에 있는 과거 731부대 터에 가면 당시 상황이고 자료들을 복원하여 전시한 전시관이 있어서 731부대의 만행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중국이 복원해 놓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고발하는 침화일본군731부대 복원터 / 출처: wenweipo.com)


소련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개입하면서 731부대의 존재를 알았고 역시 마루타 생체실험 자료를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미국도 역시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에 욕심을 갖고 자료 확보에 뛰어들었는데, 소련은 매우 혹독하게 전범자들을 처리했기 때문에 급히 귀국한 731부대 책임자들은 미국과 협상을 하였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전쟁에 책임이 있던 자들은 맥아더의 일본주둔 미군부와 협상하여 731부대 전범자 다수가 살아남아서 아직도 일본 정치성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친일세력도 일본의 그들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일제의 책임이 있는 자들은 보수우파와 합세하여 영향력을 보존하고 있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완전한 비밀에 붙여지고 해당 전범들도 부인을 거듭하여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731부대의 만행은 최근 일본에서 당시 기록의 일부가 발견되고 양심적인 몇몇 일본 의사, 학자들이 731부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진실이 밝혀질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지나간 일이라고 묻으려고 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다시 그 일을 당할 사람이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후손에게 물려줄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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