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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사도세자 뒤주 사건 - 임오화변과 죽은 이유, 정신병과 죽음의 진실

2025. 5. 11.

사도세자 뒤주 사건

임오화변과 죽은 이유, 정신병과 죽음의 진실


사도세자 뒤주 사건 - 임오화변과 죽은 이유, 정신병과 죽음의 진실
사도세자 뒤주 사건 - 임오화변과 죽은 이유, 정신병과 죽음의 진실 ⓒ KBS


 

조선 왕조 오백 년 역사 속에서 부자간의 비극이었던 임오화변과 사도세자 뒤주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단순하게 역사책에서 말하듯 겉표면만 하지 않고 당시 상황의 이유와 과정까지 모두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도세자가 왜 정신병에 걸렸는지, 얼마나 잔혹한 살인마가 되었는지, 결정적으로 나경언 고변 사건의 결과 장조의 뒤주 사건으로 이어지는 영향까지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좀 길지만 모두 읽으면 전체의 상황이 다 이해가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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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뒤주 사건 - 임오화변과 죽은 이유, 정신병과 죽음의 진실


 

사도세자 뒤주 사건 개요

 

영조는 조선 제21대 왕이며 18세기(1700년대)에 조선을 다스렸습니다. 조선 왕들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며, 그의 아들이 제22대 국왕 정조입니다. 즉, 영조가 아들을 죽이는 바람에 다음 왕에 손자가 오르게 되었는데, 이때 발생한 사건이 1762년 사도세자 뒤주 사건입니다.

 

이때의 뒤주는 옛날에 곡식을 보관하던 통인데, 당시 사도세자는 가로 160cm밖에 안 되는 뒤주에 갇혀서 죽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광증(狂證·정신병)입니다. 사도세자가 살인·폭행 등 패륜행위를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물과 음식을 받지 못하고 뜨거운 7월 햇볕에 고생하다가 9일만에 죽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이선'이었으며, 왕에 오르진 못했으나 나중에 '장조'로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조가 지나치게 엄격한 강압적 교육을 했기에 장조가 정신병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즉 잘한 것은 없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은 결국 영조이며, 그래 놓고는 죄를 물어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왼쪽 정조 어진, 오른쪽 사도세자 얼굴 상상도 - 사도세자 뒤주 사건 개요
왼쪽 정조 어진, 오른쪽 사도세자 얼굴 상상도 - 사도세자 뒤주 사건 개요

 


 

영조가 만들어낸 사도세자의 정신병

 

영조는 탕평책으로 유명한 정치를 했지만, 가족에게는 지독한 편애를 했습니다. 첫째 딸 화평옹주를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아꼈으며, 만나기 전에는 반드시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둘째 딸과 그 후 태어난 아들 사도세자는 항상 화평옹주와 비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자라면서 점점 공부를 멀리하고 전쟁놀이를 즐겼습니다. 이 사실을 안 영조는 화를 내며 상궁들에게 형벌을 내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사도세자는 이런 과정을 보며 무의식 깊숙이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가지게 됩니다. 영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동학대 수준으로 사도세자를 혼내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15살이 된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영조는 아들을 믿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업무 보고를 하지 않으면 왜 멋대로 처리했냐고 화를 냈고, 보고하면 왜 그런 일까지 번거롭게 말하냐고 화를 냈습니다. 심지어  날씨가 좋지 않은 것마저도 세자가 재수 없어서 그렇다며 혼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혼나는 왕세자 - 영조가 만들어낸 사도세자의 정신병
어릴 때부터 혼나는 왕세자 - 영조가 만들어낸 사도세자의 정신병 ⓒ KBS

 

 


 

사도세자의 뜻은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부자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사도세자는 영조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인 아홉 살 때부터 어지럼증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조는 공부하기 싫어 부리는 꾀병이라며 더욱 책망합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750년 겨울부터였는데, 천둥이 칠 때마다 귀신이 보인다며 무서워하는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비정상적 행동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 눕거나 골방에 틀어박히기도 하고, 관을 짜고 그 안에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옷 한 벌을 입기 위해 이삼십 벌 이상의 옷을 입고 벗길 반복했고, 귀신이 씌었다며 불태워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시중을 드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1757년 6월, 사도세자가 기록상 처음으로 살인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죽고 싶은 자신의 분노를 화풀이 한 것입니다. 옷을 갈아 입다가 내관 김한채의 목을 베어 그것을 들고 궁 안을 돌아다니며 내인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이후에도 여섯 명의 내관을 죽였습니다. 그 외에도 궁녀나 내시, 나인 등 약자를 골라서 분풀이를 하며 죽였습니다.

 

당시 남긴 편지의 속앓이 - 사도세자의 뜻은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당시 남긴 편지의 속앓이 - 사도세자의 뜻은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 KBS

 


 

살인마가 된 사도세자

 

사도세자가 이런 상황을 호소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영조에게 가슴속의 불이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이라도 죽여야 마음이 나아진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하지 않아 서럽고, 항상 꾸중하기에 무서워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영조도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으나, 잠깐이었습니다.

 

세자는 친어머니인 영빈 이 씨의 내인을 죽였고, 물건을 늦게 가져온다고 담당 내시를 죽였으며, 점친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점쟁이 맹인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죽여대니 계속 대궐 밖으로 날라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궁녀나 비구니들을 잡아다가 때리고 성폭행하기도 했으며, 때려서 피가 철철 흐르는 궁녀와 성관계를 했습니다.

 

1760년에는 아끼던 아내 혜경궁 홍씨에게 바둑판을 던져 눈을 크게 다치게 했고, 1761년에는 사랑했던 후궁 빙애를 때려 죽였습니다. 심지어 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갓난 아들 은전군을 연못에 내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여동생 화완옹주에게 칼을 들이대기도 하고, 어머니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살인마가 된 사도세자 - 미처가는 왕세자
살인마가 된 사도세자 - 미처가는 왕세자 ⓒ 영화 사도

 

 


 

나경언 고변 사건과 임오화변

 

기록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살해한 사람은 중관, 내인, 노비 등이 거의 백여 명에 이르고, 불로 지지는 낙형 등 참혹하고 잔인한 짓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국은 영조를 분노하게 만드는데, 그중 하나가 '나경언 고변사건'입니다. 나경언은 액정 별감 나상언의 형이며 형조판서 윤급의 청지기였습니다. 그가 궁궐 내시들이 반역을 모의했다고 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사실 나경언은 집안 살림을 탕진하여 생활이 어려워지자 이런 짓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이 커지며, 영조는 궁궐 문을 닫으라는 명을 내리고 국청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 거짓말을 하는데, 심문 도중 숨겨둔 글을 꺼내며  내시들의 불온한 모의를 거론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는 사도세자의 여러 비행 문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경언이 꺼낸 그 문서를 고변서라고 하는데, 세자의 여러 죄상이 적혀 있었습니다. 궁녀를 때려 죽이고, 여승을 궁궐로 끌어들였으며, 영조 몰래 유람을 다녔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더구나 변란의 조심이 있다며, 세자가 아버지에게 반역을 할 것이라고도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본 영조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경언 고변 사건과 임오화변 재현 드라마 장면
나경언 고변 사건과 임오화변 재현 드라마 장면 ⓒ KBS

 


 

사도세자 뒤주 사건의 이유

 

신하들도 너무 놀란 나머지 나경언을 대역죄인이라며 참수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심문 과정에서 나경언이 결국 무고하려고 했다고 실토하기도 하고, 노론 세력에게서 돈을 받고 고변한 것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그는 참수당했지만, 그 소식이 세자에게 알려지고, 사도세자는 자신과 소론을 이간질하려는 노론의 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사도세자 뒤주 사건은 노론과 소론의 정치 싸움 때문에 희생된 결과라고 보는 역사가도 있습니다. 노론들은 사도세자를 공격하며 소론의 권력을 깎아내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 씨마저 영조에게 차라리 세자를 처분해야 한다고 눈물을 쏟자 영조의 마음이 굳어져 갔습니다.

 

결정적으로, 사도세자가 아버지를 칼로 도해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영조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죽기 전날 밤에는 하수도 구멍을 통해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가려다가 돌아오기도 했다는데, 이런 점에서 영조는 아들이 역모를 생각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세자 뒤주 사건의 이유와 원인
사도세자 뒤주 사건의 이유와 원인 ⓒ 영화 사도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결국 영조는 1762년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사도세자를 모셨던 내시 박필수와 여승, 기녀들도 참수당했습니다. 그리고 창덕궁 휘령전으로 불러서 세자가 역모를 꾀했다며 자결을 명했습니다. 세자는 아니라며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세자가 자결하지 않자 영조는 뒤주를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임오화변'이라고 하는데, 임오년에 화를 입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세자는 삼복더위 속에서 음식도 물도 먹지 못하고 고온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때 정조는 11살이었는데, 어린 정조를 지키기 위해 아내 혜경궁 홍씨는 아무 항의도 못하고 그대로 참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8일 만에, 즉 9일째에 사도세자는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나이 겨우 27살이었습니다. 좁은 뒤주 안에 있던 세자의 시신은 굳어서 무릎이 끝내 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가 손자마저 죽이고 다른 왕세자로 대를 이을까 봐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혜경궁 홍씨와 아들 정조 이산 -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두려움에 떠는 혜경궁 홍씨와 아들 정조 이산 -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 영화 사도

 

 

 


 

아내 혜경궁 홍씨와 아들 정조

 

혜경궁 홍씨의 걱정과 달리 영조는 어린 정조 '이산'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이산은 세손도, 세자도, 왕도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적을 파내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죽은 효장세자의 아들로 이산을 입적시켜 세손 자격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의 아들이고, 효장세자는 정빈 이씨의 아들이었으나 일찍 죽었습니다. 이산은 이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3년 상복도 더 이상 입지 못하고 아버지를 잊어야 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정조는 1776년 즉위하게 됩니다. 한달 후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정조는 14년간이나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원수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공격했던 김상로와 문성국이었습니다. 정조는 그들의 아들과 조카까지 유배 보내며 복수했으며, 처자식은 모두 노비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은 시키지 않고 평생 후회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사도세자 뒤주 사건과 임오화변의 기나긴 역사였습니다.

 

영화에서 구현된 사도세자의 뒤주와 어린 정조 영화 장면
영화에서 구현된 사도세자의 뒤주와 어린 정조 영화 장면 ⓒ 영화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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