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방직 똥물 사건
정부의 노조 탄압 인분 사건
1978년 똥물 사건이 있었던 동일방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사건은 회사가 정부와 짜고 가짜 노조를 만들려던 사건이며, 오히려 진짜 노조원 126명은 해고된 후에도 다시 취업하지 못하도록 전국에 블랙리스트로 뿌려진 사건입니다. 방직의 여성 노조원들은 알몸 시위까지 했으나 경찰은 더욱 강경 진압을 했었습니다.
그저 노조 탄압 사건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면, 이 기사를 통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배경과 원인을 이해해 보길 바랍니다. 이 사건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아 보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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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똥물 사건 - 정부의 노조 탄압 인분 사건 (알몸 시위와 어용 노조)
당시 실제 근로환경
1970년대 동일방직은 섬유산업 특성상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사업체였습니다. 이들은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보수 정부와 회사 측은 어용 노조를 지원하며 탄압했습니다. 이에 맞서 알몸 시위가 이어졌는데, 난입자들이 인분을 들고 와서 똥물을 뿌린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동일방직은 인천의 대표적인 공장 중 하나였는데 노동 강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솜에서 실을 뽑아 면포를 만들거나 화학 섬유 제품을 생산했는데, 생산직의 대부분은 여성이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12~13시간 근무가 기본이었고 잔업과 교대 근무까지 이어지면 제대로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공장 내부는 3, 40도에 달하는 높은 열기로 가득했고, 솜에서 나오는 자욱한 먼지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눈과 코와 입으로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여름이면 숨 막힐 듯 더웠지만, 환풍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냉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고향에 돈을 보내고 있었기에, 참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일방직 노조 분쟁의 원인과 이유
당시 남녀 성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관리직 대부분은 남성이 차지했고 임금에도 큰 차별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 노동자의 임금이 70원 수준이었던 반면, 남성은 500~700원 정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노동조합 활동에서도 여성들은 차별을 받았고, 성희롱이나 폭언, 몸수색까지 있었습니다.
노동 조합은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의 질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여러 기업들이 그랬듯이 이 회사도 회사와 정부 시책을 위하는 어용노조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자 낮은 임금과 성희롱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들은 직접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최초로 여성 후보가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섬유노조 여성 지부장으로 선출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초의 여성 지부장인 주길자는 식사 시간 확대, 남녀 임금 차별 철폐, 작업장 내 환풍기 설치 등의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돈이 들어가는 것이 싫었던 회사는 노조 와해 공작을 펼쳤습니다.
동일방직 알몸 시위에도 강경 진압
동일방직 회사 측은 어용노조를 되살리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여성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회유했습니다. 부당 해고, 직장 폐쇄, 노조 활동 방해 등도 가해졌습니다. 정부의 중앙정보부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감시하고, 와해 공작을 주도했습니다.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불법 연행 등 회사편을 들어주는 공권력 행사도 해 주었습니다.
동일방직 회사 측과 박정희 보수 정권은 민주노조의 성장을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조직적으로 탄압했습니다. 정부와 중앙정보부는 노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생각의 발전이 없어서 여전히 빨갱이라고 그러지만, 더구나 당시는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는 외로운 투쟁이었습니다.
회사 관계자와 회사에 매수된 어용노조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976년 7월, 노골적인 탄압 속에서 경찰의 강제 해산 시도가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알몸 시위라는 강수를 두며 저항했지만, 경찰은 더한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며 그들을 끌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큰 부상을 입었고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동일방직 똥물 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조직원들은 어용노조에게 맞서며 대의원 대회를 계속 했습니다. 1978년 2월 21일 새벽, 동일방직 회사 측의 지시를 받는 남성 어용노조원들이 나타났습니다. 어용 행동대원들은 방화수통에 인분을 담아와 여성 노동자들에게 달려들었는데, 이것을 동일방직 똥물 사건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들은 똥물을 얼굴, 옷, 몸에 마구 뿌려댔으며, 심지어 옷 속이나 입에 억지로 쑤셔 넣는 잔인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경찰도 있었지만, 아무런 제지 없이 방관했으며, 심지어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습니다. 투표함이 파괴되어 선거는 당연히 무산되었고,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노동조합 결성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보수 정권은 이 사태를 빌미삼아 색깔론을 들고 나와 동일방직 노조가 도시산업선교회의 지시를 받는 빨갱이 단체라고 매도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노총 섬유노조는 2월 23일 동일방직 노조를 '사고 지부'로 규정하고, 새 지부장이었던 이총각 지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반조직 행위자'라는 이유로 제명했습니다.
정부의 노조 탄압과 인분 사건의 결과
합법적인 모든 수단이 막히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명동성당으로 피신하여 김수환 추기경에게 중재를 호소하며 14일 동안이나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노동조합 탈퇴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126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해 버렸습니다.
회사 측은 정부와 결탁해서 해고된 126명의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전국 각 사업장에 배포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지만, 모두 연행되었고, 결국 회사 측은 어용 지부장을 선출하여 노조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복직 투쟁을 벌였지만, 애초에 바위에 달걀이었습니다.
박정희 보수 정권이 끝나자 이들은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전두환 보수 정권이 들어서며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보 기관과 사복 경찰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보수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피해 근로자들을 종북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영향과 동일방직 사건 이후
그들은 끝까지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김영상 정부 역시 보수 정부였기에 한 회사 안에서 두 노조가 싸우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진보 정부로 바뀌고 마침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관련 부서에서는 당시 불법을 부인했지만, 당시 중앙정보부 노사 담당관이었던 최종선의 증언으로 뒤집혀 버렸습니다.
더구나, 투쟁당시 이를 역사로 남겨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부탁을 받고 평범한 동네 사진관 주인이었던 이기복이 남긴 사진들이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필름을 숨기고 사진을 지켜서 세상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위원회의 복직 판결에도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한편, 국가를 대상으로도 재판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고, 마침내 대법원은 국가가 동일방직 노조 사건 피해자 개인에게 2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후 동일방직은 2014년에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2017년에 인천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천 지역에서 인천 노동 본부와 단체들이 만들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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