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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한국 미술사의 공헌자이며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전형필

2015. 2. 15.

[한국 미술사의 공헌자이며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전형필] 





일제초기 조선 3대 갑부 전형필의 집안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갑부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할 정도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여 24세에 조선 3대 갑부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형필의 자산은 현대 시세로 보면 6천억 원이 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부친과 양자 들어간 숙부의 재산을 다 상속받아서 후에 미술품을 모으는 자금으로 활용됩니다. 


서예가며 고서화 감식가였던 오세창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전형필은 30년대부터 서화, 도기, 미술작품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을 모우기 시작했습니다. 

오세창은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 서화가, 정치인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출처: kansong.org. 위창 오세창(좌)와 간송 전형필(우))





간송미술관으로 남은 전형필의 특별한 문화재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6.25 동란 중에도 품에 넣고 지켰을 정도였는데, 전형필이 이런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면 현대인은 한글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훈민정음의 해례본 덕분에 우리는 한글이 어떤 원리에 의해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고서화 및 유물의 진가를 알면, 원하는 가격보다 더 얹어주며 모았기에 전형필의 고미술 수집활동은 엄청난 거액이 투자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집안 재산 다 말아 먹으며 고물 그릇과 그림을 사 모은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전형필은 1938년에는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현재의 간송미술관)을 세웠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사립미술관입니다. 전형필의 자손들이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데, 1년에 2회 무료로 일반에게 공개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사가 간직된 간송미술관 


개인이 수집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국보급 문화재를 모았는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정음 해례본, 상감청자, 금동여래입상 등과 김정희, 신윤복, 정선, 장승업 등의 작품은 전형필의 공이 매우 큽니다. 

전형필은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개인 재산을 쏟아 부었으며 전쟁 중에도 인민군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혼심을 다하는 일화를 남깁니다. 전형필을 빼 놓으면 한국미술사를 얘기하기 곤란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혹자는 일제 강점기에 그 정도의 위치면 친일자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기록 외에는 중요한 친일행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는 재산이 줄어 어려워지면서도 보성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개인재산으로 나라의 역사를 지킨 인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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