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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클 납구슬 정체 - 일제강점기 저주? 종교적 사찰 유물?

2024. 11. 21.

의문의 납구슬

미스터리 서클 - 일제의 만행인가


미스터리 서클 납구슬 정체 - 일제강점기 저주? 종교적 사찰 유물?
미스터리 서클 납구슬 정체 - 일제강점기 저주? 종교적 사찰 유물?


 

2000년대 초부터 전국 각지의 사찰과 유적지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납구슬은 그 목적과 기원에 대한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야구공 크기의 둥근 형태와 납 성분으로 제작된 납구슬은 주로 탑 주변에서 발견되었지만, 그 용도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일제가 납구슬을 음흉한 목적으로 설치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인지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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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클 납구슬 정체 - 일제강점기 저주? 종교적 사찰 유물?


 

미스터리한 납구슬 발견

 

전국에서 목적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납구슬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슬들은 미스터리 서클(Mystery circle. 의문의 원)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이유는 이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전국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일제강점기 때의 주술적 저주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납구술의 모양은 야구공과 비슷한 크기로 지름 약 6.5cm, 무게 1.56kg~1.7kg 정도입니다. 98.2~99.6%의 납(Pb)으로 구성되어 있고, 철(Fe), 안티몬(Sb), 비소(As) 등이 미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면에는 약 2mm 정도의 가는 실선 형태의 돌기가 둘러져 있고, 상부에는 직경 11mm 내외의 원형 구멍이 있습니다.

 

의문의 납구슬은 주로 탑 주변에서 발견되며, 대부분의 납구슬이 비슷한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충남 당진 영탑사 납구슬의 경우 받침대와 함께 발견된 경우도 있습니다. 납구슬과 받침대의 성분은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대부분 사찰 근처에서 발견되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작이 있던 곳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국적인 사찰의 납구슬들

 

납구슬은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발견되었으며, 주로 탑 주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주 고달사지, 춘천 월송리 삼층석탑, 홍천 물걸리사지 삼층석탑, 안성 죽산리 삼층석탑,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군위 인각사, 포천 선적사지, 익산 숭림사, 구미 대둔사, 성주 심원사, 서산 문수사, 구례 화엄사, 충남 당진 영탑사, 당진 안국사지 절터, 강원도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 괘석리 사사자사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특히 당진 안국사지 절터에서는 가장 많은 16개의 납구슬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납구슬은 사찰뿐만 아니라 월출산 구정봉 정상 부근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찰 밖에서 발견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납구슬은 불상이나 탑 주변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충남 당진 영탑사에서는 약사여래불 아래에서 받침대와 함께 발견된 경우도 있습니다.

 

충북 충주시 가금면 봉황마애불 주변에서도 납구슬 2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충북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이며 마애불 불상 주변에서 출토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처음 발견된 시점은  2001년 여주시가 고달사지에서 납구슬을 발견한 것인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납구슬의 제작자, 연도 미스터리

 

납구슬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만 있고 사실은 모릅니다. 경기도 박물관은 고려시대에 유행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여주 고달사지 부도에서 발견된 납구슬은 신라시대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조선시대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납구슬의 제작자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전국의 납구슬이 일정하게 생겼다는 점에서 당시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초에 나라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는, 제작자가 조선 개국의 공신인 무학대사일 수도 있다는 추정을 내놓았습니다.

 

사용된 납이 생산된 곳은 북중국과 한반도 북부 지역, 또는 경기도의 광산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토된 납구슬의 미세 조직 및 성분 분석, 그리고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해서 얻어낸 결론입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미스터리인 상태입니다.

 

 


 

납구슬의 여러 가지 목적설

 

만들어진 목적도 전혀 알 수 없는 중입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납구슬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주의 일종이라는 것입니다. 보주는 불교 경전에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가능성은 납구슬이 건물을 지을 때 안전을 기원하며 묻었던 진단구나 지진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탄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의 구멍과 납구슬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아서 더욱 의문이 생깁니다. 네 번째 가능성은 풍수지리적으로 위치가 좋지 않은 지점에서 납구슬이 발견된다는 풍수설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1960~80년대 누군가가 묻고 다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납구슬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지기를 누르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의 기운을 꺾고 기의 축을 뒤틀어 놓기 위해서 경복궁 안에 근정전과 광화문을 가로막으며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대량 생산되어서 전국에 일정하게 묻힌 것도 일본의 흉계였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납구슬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서클 납구슬의 정체는 의문만 더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조선 역사의 기를 꺾으려는 일제의 흉계라면 신라 왕궁터나 유명 사찰의 탑 주변이 아닌, 외딴 사찰에 주로 묻혀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물론, 풍수적으로 그곳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으니 의문만 더해집니다.

 

분명한 것은 전국의 사찰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형태와 무게가 대부분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한 곳에서 대량 생산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개인이 설치하고 다닌 것이 아님은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주된 이유는 어떤 기록도 문서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 이상 미스터리 서클 납구슬 논란 정리

 

  •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발견되기 시작
  • 크기는 야구공만 하고 무게는 약 1.7kg 정도
  • 형태와 무게가 유사한 국가적인 차원 제작
  • 신라시대 말엽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시대는 다양함
  • 불교 보주설, 건물용 진다구설, 풍수지리설, 일제강점기 만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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