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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2024. 7. 9.

삼미 슈퍼스타즈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될 때, 인천 연고지 팀은 도깨비 팀으로 불렸습니다.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야기입니다. 0.812의 역사적인 패배율을 보이다가, 뜬금없이 리그 1위까지 추격한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미 그룹과 장명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기에, 야구팀 창단 배경과 역경, 반전과 매각까지 정리했습니다. 일명 영원한 꼴찌팀의 추억 같은 스토리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도깨비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할 때 있었던 야구팀입니다. 그리고 1985년 사라졌습니다. 이 팀이 추억 속에 남는 이유는 "영원한 꼴찌"라는 수많은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한때는 리그 2위에 오르는 등 도깨비 같은 성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팀의 희한한 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 시즌 최다 연패 : 18연패
    - 1985년 3월 31일 구덕 롯데 자이언츠 전 ~ 4월 29일 인천 롯데 자이언츠 전
  • 역대 시즌 최저 승률 : 0.188
    - 1982년 페넌트레이스 15승 65패
  • 역대 분기 최저 승률 : 0.125
    - 1982년 페넌트레이스 후기 리그 5승 35패
  • 팀 최다 실점 : 82년 6월 12일, 7월 10일
    - 두 차례 삼성과의 경기에서 각각 20실점
  • 최저 승률 : 82년 전후반 통합 최저
    - 15승 65패, 승률 1할8푼8리
  • 최소 득점 : 302점
    - 82년 타구단 평균 득점이 395점이었음
  • 최소 안타 : 637개
    - 82년 타구단 평균 안타이 722개였을 때
  • 최소 홈런 : 40개
    - 82년 타구단 평균 홈런이 65개였을 때
  • 최소 도루 : 74번
    - 82년 타구단 평균 도루가 125번이었음
  • 특정 팀 상대 최다 전패 : 16전 전패
    - 82년 對 OB전
  • 프로야구 최초 사이클링 히트 허용 : 82년 6월 12일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1할 승률을 기록하고, KBO 리그 구단 사상 유일한 100패를 기록한 팀이었습니다. 1982년 후기리그 성적은 무려 5승 35패였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에도 절대로 나오지 않을 듯한 팀 성적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의 등장
1982년 프로야구 출범 -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의 등장

 

다른 팀들은 약체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경기는 무조건 이기는 경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강한 선수를 내보내서 반드시 이겨버렸기에 슈퍼스타즈 입장에서는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없었습니다. 다른 팀들은 어쩌다가 삼미에게 지게 되면 큰 충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던 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경기에 지는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홈구장은 언제나 관중이 많았고, 응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그동안 사라진 팀도 많지만 이 팀에 대한 애착은 유독 강해서, 마지막 팬클럽은 울면서 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삼미 그룹과 프로야구 팀 창단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창단된 프로야구 원년 멤버입니다. 인천, 경기, 강원 지역과 이북 5도를 연고지로 한 팀이었으며, 마스코트는 슈퍼맨과 원더우먼이었습니다. (원작자에게 저작권 허락도 받지 않고 사용했었던 진기록도 있음) 구단주 기업은 삼미그룹입니다.

 

삼미그룹은 1954년부터 1997년까지 있었던 제조업 기업이었습니다. 특수강 전문 제조가 주 사업이었고, 원목의 수입과 판매 등 무역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창업자는 김두식이었고, 아들 김현철이 이어받았고,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하게 됩니다. 재계 26위까지 올랐었으나, 1997년 IMF로 부도가 나고 상장 폐지되었습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인물인 감사용 투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실제 인물인 감사용 투수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여러 기업들에게 구단 창설을 제안했지만 5개 팀만 창단되었습니다. 한 팀이 모자라서 고민할 때 삼미 그룹의 김현철 회장이 나타나서 창단을 선언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야구에 열광했던 경험 때문에 창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팀들이 야구 스타들을 보유한 것과 비교할 때 이 팀은 유명 선수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연고지 유명 선수들은 아직 졸업 전이거나 다른 팀에 있었고, 연고지의 고교팀 조차 성적이 좋지 않거나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래서 무명 선수들로 팀을 꾸렸고, 심지어 아마추어 투수 감사용까지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반란

 

상위팀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결국 KBO는 전력 균형을 위해 해외 선수 영입을 1983년에 허용하게 됩니다. 이에 삼미는 장명부와 이영구를 영입하고, 또 다른 인천 야구의 대부인 김진영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임호균, 김진우, 정구선, 이선웅 등이 가세하면서 거의 새로운 팀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프로야구 최초 30승을 돌파한 투수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프로야구 최초 30승을 돌파한 투수 장명부와 인천 프로야구 역사

 

특히 재일동포 장명부의 등장은 놀라움 속의 놀라움이었습니다. 특유의 엉거주춤한 투구 폼과 아리랑 볼에 가까운 구속을 보면서 야구인들은 왜 일본 야구 퇴물을 비싸게 들여왔냐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수준이 낮았을 때였기에, 장명부의 심리전과 마운드 운영은 임호균과 함께 42승을 올리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장명부는 30승 16패 6세이브로 최고 투수가 되었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혹사가 있었습니다. 삼미가 치른 100경기 중 60경기에 출장했고, 혼자서 최다 선발(44), 최다 완투(36), 최다 투구(427⅓이닝)를 해야 했습니다. 그가 이랬던 것은 30승을 거두면 보너스 1억 원을 주겠다는 구단과의 약속 때문이었지만 구단은 모른 척해 버렸고, 그 후 장명부는 크게 실망하며 투수 인생이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야구단

 

1983년 꼴찌팀의 기적을 보여주며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삼미 슈퍼스타즈는 예상치 못한 일로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독이었던 김진영이 심판 판정에 격렬히 항의했었는데, 마침 장면을 TV로 보던 전두환이 한마디 하자 감독을 구속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프로야구 타율의 끝판왕 백인천이 감독으로 왔으나 가정사가 문제가 되어 구속되게 됩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장명부 투수와 김진영 감독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의 추억 장명부 투수와 김진영 감독

 

슈퍼스타즈의 반란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구단에게 실망한 장명부가 내리막길을 걷고, 주축이었던 임호균을 트레이드 보내면서 또다시 팀은 꼴찌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1985년엔 한 달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일까지 생깁니다. 그럼에도 악을 쓰며 18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는데, 갑자기 삼미는 구단 매각을 발표해 버렸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삼미 그룹은 해운업 등의 적자 누적으로 2년 동안 45억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영화 같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는 식품과 청바지 사업을 하던 청보식품에 70억 원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은 1985년 6월 21일, 마지막 경기를 치렀는데, 마지막 경기마저 대패하면서 청보 핀토스라는 팀으로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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