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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 - 가족의 억울한 사연과 베트남 국군포로 문제

2022. 3. 31.


 

안학수 사건

납치 월북 사건 - 1편

 

1966년, 베트남에서 납치되어 월북한 안학수 하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요약을 먼저하자면,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국가가 버리고 가족들마저 생매장시켜버린 사건입니다.

 

이글은 두 개의 글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에서 2편, 그 후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 - 가족의 억울한 사연과 베트남 국군포로 문제

 

베트남 전쟁 파병

 

억울한 사연의 베트남 국군포로 -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과 그 가족

베트남전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국군이 파견된 것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입니다. 안학수 하사는 1966년 비둘기부대로 파병되어 통신병으로 근무했습니다.

 

이 부대는 미군이 세운 병원의 제1이동외과병원에서 의무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매월 사이공에 출장을 가서 의약품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귀국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집에는 곧 돌아간다는 편지까지 보내고선...

 

아들이 오지 않자, 포항에 있는 가족은 어찌 된 건지 수소문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방구 주인이 북한 방송에서 안 하사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북한 대남방송에 나온 아들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 - 가족의 억울한 사연과 베트남 국군포로 문제

당시엔 대구 라디오방송과 북한의 대남 방송 주파수가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안 하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 하사의 아버지는 학교 교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놀라서 중앙정보부에 급히 신고했다고 합니다.

 

곧이어 중정 요원 2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베트콩의 포로가 된 듯하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정희 정부는 대국민 방송에서, 한국군은 단 한 명도 포로가 없다고 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8년 동안 32만 명이 파병됐는데, 한국군은 워낙 용감해서 단 한 명도 포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실종자는 모두 사망 처리해서 무덤까지 마련해 놓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흉계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 - 가족의 억울한 사연과 베트남 국군포로 문제

얼마 후, 보안사 요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180도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안 하사의 가족들을 자진 월북한 배신자의 가족이라며 살벌하게 대했습니다. 분명히 윗선에서 누군가가 새로운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당시 남북은 특히 유난히 날카로운 대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남북 충돌도 잦았고, 심지어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앞까지 기습을 가했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1971년에 곧 대선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의 귀를 막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실종자는 무조건 죽었거나 월북자라고 뒤집어씌우기로 했습니다. 보수 국민들은 그것도 모르고 베트남전을 통해 경제를 살렸다며 박정희를 떠받들었습니다. 진보 국민들은 개인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보수적인 국가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남한에도 연좌제가 있었다

 

억울한 사연의 베트남 국군포로 - 안학수 하사 납치월북 사건과 그 가족

정부는 연좌제로 가족들을 괴롭혔습니다. 안학수 하사가 자진 월북한 사건이라며 아버지와 가족을 연행해서 조사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를 갓 졸업한 넷째 동생 안용수까지 잡아가서 취조와 고문을 가했습니다.

 

학기마다 두세 번씩 보안사로 끌고 가서 취조하면서, 중3짜리에게 너 하나 죽여도 아무도 모른다고 협박했습니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빨갱이 동생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안용수는 그 괴로움이 네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버지는 강제로 교장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결국 강원도 교재 창고 임시노무원으로 강제 취업하게 해서 한 가정을 완전히 몰락시켰습니다. ​

 

이 글은 두 개의 글로 기획되었습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에서 1편, 안 하사의 사건이란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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