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영화 실화 - 제1차 대전의 참혹함과 원테이크 뜻]
영화 <1917>은 원테이크로 실화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기법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런 기법을 쓴 이유는 긴박하게 달려야 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그런 표현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감독이 1917 실화인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그 할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1차대전은 대체 어떤 전쟁이었길래... 시작과 원인 등은 교과서에도 나오므로, 이 글에서는 영화와 얽힌 비교를 위주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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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1917 실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가 <1917> 실화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런던에서만 자란 샘은 서인도제도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할아버지가 통신병으로 활약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무용담을 듣곤 했습니다.
(영화 포스터. 샘 멘데스 감독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어린 샘 멘데스는 할아버지가 너무 자주 손을 씻는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 궁금증은 아버지의 대답으로 풀렸습니다. "아직도 전쟁터 참호 속에서의 진흙을 다 못 씻었다고 생각하시는 거지."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강박증(강박장애)'의 일종입니다. 끔찍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서 엉뚱하게도 "청결"을 계속 요구하는 심리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의 보병들은 흙탕물과 진흙 속에서 싸우고 죽어갔습니다. 그것은 마치 늪에서의 전투 같았습니다.
1917 실화의 주인공 알프레드는 열아홉 살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의 비망록인 <알프레드 멘데스 자서전 1897~1991>에서는 영국군으로 입대한 그가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일화도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전령(직접 명령을 들고 가는 군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그의 병과는 통신병이었습니다. 1917 실화와 영화의 차이라는 날짜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4월로 나오지만, 실제 그 일이 있었던 것은 10월입니다. 4월이 미국 참전이 시작되는 시점이므로 바뀐 것 같습니다.
(샘 멘데스의 할아버스의 1차대전 때 참전 이야기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1917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면, 독일군은 패하고 후퇴하는 척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국군을 끌어들이는 유인전술이었습니다. 영국군 지휘부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지만, 전선의 해당 부대와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그대로 전진하면 1,600명이 몰살될 위기였습니다.
그 부대에는 주인공의 형이 있었고, 그래서 동생인 주인공에게 전령의 임무를 맡깁니다. 1917이 원테이크 기법을 써야 했던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뛰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박진감 넘치는 촬영기법으로 직접 현장에서 보는 듯하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1917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뜻
그러나 정확한 용어는 '원테이크'가 아니라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입니다.
원테이크란 뜻은 "끊김 없이 전체를 한 번에 다 찍는다"는 말이지만, 2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한 번에 찍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원 컨티뉴어스 숏' 뜻은 "긴 장면을 찍은 후 연결해서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8분짜리를 한 번에 찍기 위해서 56회나 다시 찍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은 게임을 보듯이 실감 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17는 원컨티뉴어샷기법으로 촬영되었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1차 대전과 실제 전쟁
감독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가 소속된 부대는 그해 10월, 484명의 부대원 중에서 158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직접 실종자를 찾아 나서겠다고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의 병과는 통신병이었으므로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동료들을 포탄이 빗발치는 진흙탕에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살려서 업고 왔더니, 그 사이 동료가 총알을 대신 맞고 죽어 있었다든지, 목이 날아간 병사가 그것을 모른 채 몸만 살아서 뛰어다녔다든지 하는 전쟁 참전 경험담은 사실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진흙탕 속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제1차 세계대전은 병사의 목숨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지휘관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솜전투'에서는 120만 명, '베르됭전투'에서는 90만 명이 몇 개월 사이에 죽어갔습니다. 겨우 12km 전진을 하기 위해서 매일 6만 명의 병사가 죽었습니다. 12km는 서울역에서 강남구청에서 서대문구청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은 1917 실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관총으로 900m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18m 거리의 부대끼리는 교신도 할 수 없었던 전쟁"이라고 말입니다.
1917 실화에서 알프레드는 수많은 생존자를 구해내고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신경가스가 살포되고 비행기의 폭격이 계속되며 기관총이 난사되는데 진흙탕 참호를 뛰어다니며 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은 영화 1917의 원테이크(원 컨티뉴어스 숏)에 의해 실감 나게 펼쳐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죽은 군인만 1천만 명 이상, 부상 및 실종까지 더하면 3천1백만 명 이상이 사라져간 전쟁입니다.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썩어가는 살점을 쥐 떼에 물어뜯기면서 싸웠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영화와 다르게 당시 지휘관들은 병사를 소모품으로 생각했다 [1917실화 원테이크 뜻 원 컨티뉴어스 숏] / ⓒ 영화 1917)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핵무기가 개발되기 전에 전쟁을 치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2010년대 중반, 어떤 보수단체에서는 북한과의 전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반도에서 벌어지면 남한이 100% 이깁니다. 그러나, 전쟁 개시 후 6개월 안에 전방 부대의 1/3 이상이 죽고, 수도권의 2,500만 시민들은 목숨을 운명에 걸어야 합니다. 그들은 전쟁놀이처럼 말하지만, 전쟁놀이나 하던 제1차 세계대전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어떻게 죽게 만들었는지 1917 실화에서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엮인 글]
[1917 영화 실화 - 제1차 대전의 참혹함과 원테이크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