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쿠퍼 -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1937년)]
한국에는 미스코리아가 있고, 세계 각 나라마다 미인 대회가 있습니다. 영화 극한직업의 이하늬, 드라마 여왕의 꽃의 김성령,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사랑 등은 미스코리아에 뽑힌 후 화려한 연예인이 된 케이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평등 논란으로 예전만큼은 못합니다.
미인대회에 뽑히면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 각종 행사와 의무 활동 등으로 고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1937년 미국에서는 베트 쿠퍼라는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거부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제, 남자와 도망간 미인대회 우승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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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아메리카 베티 쿠퍼
열일곱 살의 베트 쿠퍼(Bette Cooper)는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놀러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미스버트랜드 섬이라는 이벤트성 미인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수줍은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이런 대회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대회는 놀라운 특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전체를 대표할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베트 쿠퍼는 장난처럼 이벤트에 참가했다가 운 나쁘게도(?) 1위로 뽑혔습니다.
(베트 쿠퍼가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쓴 것은 1937년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베트 쿠퍼] / ⓒ nypost.com)
그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미인 대회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시골에 있는 고속도로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관심도 없었고 딸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대회라고 하니 경험이나 해 보자고 같이 대회 장소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막상 도착하니 호텔과 리조트 이용권이 주어졌고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불안은 금세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대회는 대회 출전자들에게 멋진 가이드들을 붙여줬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을 모집하여 운전기사 겸 보호를 하는 업무를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해변에서 같이 놀아 주기도 했습니다. 이 가이드에 루 오프라는 남자가 등록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신청해서 두 명 중에서만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른 가이드 대상이 미스 아메리카가 될 베트 쿠퍼였습니다. 루 오프는 멀리서도 오직 그녀만 보일 정도로 베트 쿠퍼가 예뻤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만 17세에 미스 미국으로 뽑힌 베티 쿠퍼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베트 쿠퍼] / ⓒ weirdnj.com)
그렇게 해서 그들은 일주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행사와 사진 촬영 등에도 매니저로 따라다니며 보디 가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선 이브닝드레스 대회에서 그녀는 통과했습니다. 미인 선발대회가 열리기 전날, 문득 루 오프가 말했습니다. "우승을 하게 되면, 난 너와 더 이상 교제하지 않을 거야" 루 오프는 베트 쿠퍼가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쓰게 되면 연예계나 각종 행사로 바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베트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기 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보 사진. 특혜가 보장된 자리를 거부한 베티 쿠퍼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베트 쿠퍼] / ⓒ tmlarchives)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하지만... 1937년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그녀는 또 운 나쁘게도(?) 우승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대관식 무도회 직후 정말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베트가 루와 사라진 것입니다. 그녀의 부모들은 전국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과 동시에 남자와 도망갔다는 것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그녀는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미인 대회 타이틀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부모는 그렇게 바랬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해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예전엔 미인대회 특정이 더 많았다 베티 쿠퍼[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베트 쿠퍼] / ⓒ lakehopatconghistory.com)
물론 경찰이 그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들은 오히려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얼마 안 떨어진 모터보트에 있는 것이 추적을 피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색이 조용해지자 멀리 도망갔습니다. 어쩌면 영화 같기도 한 일탈 로맨스였는데, 방송에서는 그들이 도망쳤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미인 대회 주최 측은 분노와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베트 쿠퍼의 미스 아메리카 실종사건 이후, 대회 측은 부모에게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24시간 만에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24시간의 해프닝 후, 그녀는 대학에 다니면서 할 수 있도록 가벼운 일정을 요구했습니다. 그 이후 주최 측은 대회 참가자들에게 미리 임무에 대한 서약서를 받아서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후 그녀는 자신이 미스 아메리카였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부정했고, 실제로 미스 오하이오에게 왕관을 줘버렸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다른 남자와 사랑을 시작한 베트 쿠퍼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베트 쿠퍼] / ⓒ nj.com)
그러나 마치 영화 같은 이 로맨스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루 오프와 그녀는 몇 년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습니다. 그 후 그녀는 모델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성가진 기자들을 피해 살았습니다. 나중에 기업 경영자인 윌리엄과 결혼한 후 손자까지 봤으며, 97세까지 장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베트 쿠퍼의 미스 아메리카 실종사건 이후 대회 측은 남성 가이드 프로그램도 중지했다는 일화입니다.
[베티 쿠퍼 - 미스 아메리카 실종 사건 (193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