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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개로왕과 바둑, 도림 - 한성 백제(위례성)의 마지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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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개로왕과 바둑, 도림 - 한성 백제(위례성)의 마지막

키스 키스세븐 2019. 2. 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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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개로왕과 바둑, 도림 - 한성 백제(위례성)의 마지막] 


백제의 '개로왕'과 '성왕'은 참수를 당한 왕들입니다. 개로왕은 고구려에, 성왕은 신라에 붙잡혀서 목이 베어졌습니다. 특히 개로왕의 전사는 수도를 빼앗기는 굴욕을 당했으며 "한성 백제"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위례성'을 빼앗기는 중에 개로왕과 바둑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간첩 도림이 개로왕을 정신없게 만들어서 죽게 했다는 것이지만, 모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백제 개로왕, 도림의 바둑 역사 


백제 '개로왕'은 5세기(400년대)에 살았던 21대 왕이었습니다. 서기 18년, 백제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세워졌습니다. 이때를 "한성 백제"라고 하는데, 고구려에서 분리해 나온 백제가 지금의 서울 근처에 수도를 세운 후 충청, 전라의 지방세력을 통합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제 개로왕 때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 때문에 신라와 연합하여 '나제동맹'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백제 개로왕의 상상도. 바둑, 장기를 좋아했다고 한다(백제 개로왕의 상상도. 바둑, 장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성백제 개로왕 바둑 도림 위례성] / ⓒ Aks이제현)


고구려 장수왕의 남쪽 영토확장으로 견디지 못할 상황이 되자 개로왕은 중국의 '북위'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압박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들통나고 장수왕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고구려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이때 나오는 것이 개로왕과 바둑 이야기이며, 고구려의 간첩 '도림'이 등장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개로왕을 모함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승려 도림이 나타나서 백제에 간첩으로 가기로 합니다.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니 이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고구려 내에서도 내분이 있었으므로 도림이 도망쳐 왔다고 생각한 개로왕은 그를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불교가 전래된 후 당시의 승려들은 정치에 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진: 위례성의 위치. 서울의 역사에서 백제 한성의 위치로 추정된다(위례성의 위치. 서울의 역사에서 백제 한성의 위치로 추정된다 [한성백제 바둑 개로왕 도림 위례성] / ⓒ www.kiss7.kr)


삼국사기에는 개로왕이 바둑, 장기 등의 놀이에 집착하여 정사를 보지 않는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개로왕과 도림은 바둑을 두며 친해졌고, 도림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라고 현혹시켜서 백제의 국력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수왕이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는데, 국력을 소모한 백제는 7일 만에 무너졌습니다. 결국 백제 개로왕은 바둑 때문에 잡혀서 참수당합니다. 




한성 백제와 웅진 백제의 진실 


위례성의 한성 백제가 '웅진'으로 수도를 천도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개로왕의 바둑이야기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백제 개로왕은 의자왕처럼 온갖 모함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개로왕이 도림에게 현혹되어서 국력을 낭비한 폭군으로 묘사되지만, 너무나 강력한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외교를 이용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방어를 위해 노력한 점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한성백제 문화제의 모습(한성백제 문화제의 모습 [한성백제 위례성 바둑 개로왕 도림] / ⓒ SONGPATOUR)


그렇다면 정말로 백제 개로왕이 바둑에 미쳐서 도림에게 넘어갔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도림이 고구려로 돌아간 후 장수왕은 마침내 한성 백제의 위례성을 침공합니다. 국경을 지키던 '재증걸루', '고이만년'이 배신을 하는 바람에 힘든 전투가 되었습니다. 결국 개로왕은 태자였던 '문주왕'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끝까지 싸우다가 잡혀서 참수를 당합니다. 문주왕이 신라로 가서 구원병을 이끌고 갔지만 이미 늦었었습니다. 



물론 대규모 토목공사는 국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맞지만, 개로왕의 경우는 왕권강화를 추진 중이었으므로 과연 개로왕이 바둑 때문에 현혹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 열쇠는 구원병이 백제군이 아니라 신라군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내려온 백제는 지방 토착세력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을 추진 중이었으므로 호족들의 반발이 있었고 왕의 위험을 모른 척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의자왕 때도 문제가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한성백제 당시의 몽촌토성 공사 재현과 단면도(한성백제 당시의 몽촌토성 공사 재현과 단면도 [위례성 한성백제 개로왕 도림 바둑] / ⓒ Asfreeas)


연맹국가였기에 지방 세력의 협조가 있어야만 했던 백제, 그러나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그 세력과 투쟁을 해야 했던 백제 개로왕... 한성 백제의 위례성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게 되는 역사에는 이러한 백제의 내부 사정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개로왕이 바둑으로 도림에게 넘어갔다고 보기에는 역사의 흐름이 너무 단순하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이후 웅진 백제는 6세기에 '무령왕'이 집권할 때까지 혼란한 정치상황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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