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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의 발자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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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의 발자취

키스 키스세븐 2019. 1. 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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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의 발자취] 

세계에 고유의 말을 가진 민족은 많지만 자신의 글까지 가진 국가는 드뭅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우리 글을 빼앗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이때 언어적 독립운동인 한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뜻은 우리말 큰사전으로 이어지며 한글을 보존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조선어학회 말모이를 재조명해 봅니다. 




말모이 뜻과 우리말 사전의 시작 


1919년 3.1 운동 후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식민지 전술을 바꿉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 민족을 완전히 말살하기로 하고 '창씨개명', '신사 참배' 강요, 한글 금지 정책을 밀어붙입니다. 이에 우리 글을 지키고자 만들어진 사전이 <말모이>입니다. 가로 쓰기법을 사용하여 <ㅁㅏㄹㅁㅗㅇㅣ>라고 쓴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 조선의 말과 극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조선의 말과 극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 ⓒ 門田房太郞)


말모이 뜻은 "말을 모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전"의 뜻은 말씀 사(辭), 법 전(典)이니 "말의 방법"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의미적으로는 말모이 뜻이 사전과 같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실제로 말모이는 1911년부터 주시경,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가 편찬에 들어갔던 사전입니다. 그러나 주시경의 죽음과 김두봉의 망명으로 실제로 발간되지는 못했습니다. 


사진: 한글한자 주시경과 그의 저서 말의 소리 책표지(한글한자 주시경과 그의 저서 말의 소리 책표지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 aks.ac.kr)


'주시경'은 "한힌샘"이라고 불리는 한글 정책가이고 연구자이며 동시에 교육자였습니다. 근대 한글 연구에서 주시경을 빼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헌이 큽니다. 한힌샘 뜻은 "크고 흰 샘"이라는 의미입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과 잘 어울립니다. 1910년 전후의 주시경은 국어 문법의 기초를 세웠고 한글을 체계화하여 현대 한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9세에 너무나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죽었기에 일제의 독살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사진: 주시경이 말모이를 위해 일일이 정리한 자필 원고(주시경이 말모이를 위해 일일이 정리한 자필 원고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말모이 뜻 조선어학회] / ⓒ cha.go.kr)


그러나 1914년 주시경이 사망하고, 광복 후 우리 학자들은 외래 음운 이론에만 매달려서 주시경이 크게 재조명되지 못했습니다. 무관심 속에 주시경의 친필 원고는 헌책방을 떠돌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20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였습니다. 한글 창제에 세종대왕이 있었다면 현대 한글에 주시경이 있지만, 국가와 학계는 그를 소홀히 다루었었습니다. 



주시경과 김두봉, 이극로의 흐름 


현대 한글의 아버지 주시경의 제자로는 '김두봉'이 유명합니다. 주시경 등과 함께 말모이 뜻인 국어사전 편찬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나 주시경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1919년 3.1 운동 참여로 더 이상은 조선에서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독립운동은 무력투쟁 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두봉은 상해로 망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선어 큰사전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 주시경과 나철을 스승으로 했던 한글학자 김두봉(주시경과 나철을 스승으로 했던 한글학자 김두봉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 ⓒ Unknown 편집 www.kiss7.kr)


김두봉은 '최현배'와 함께 한글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 정권에 참여했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거론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북한 정권에서 김일성과 경쟁관계였으며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몰락한 사람입니다. '김원봉'이 공산주의에 비판적이었다는 것과 비교할 때, 김두봉은 공산주의자였지만 김일성에 비판적이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진: 김두봉은 북한에서 최고권력에 올랐다. 오른쪽 두번째(김두봉은 북한에서 최고권력에 올랐다. 오른쪽 두번째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 Unknown)


김두봉의 항일 무쟁 투쟁으로 인해 말모이의 열망이 끊기는가 싶던 때에 나타난 사람이 '이극로'입니다. 이극로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기에 밭일을 하며 숨어서 서당의 글소리를 공부했습니다. 한일병합 때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갔었는데,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식당에서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표준화된 글이 없으니 같은 조선족끼리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 우리말큰사전 말모이 출판에 결정적인 노력을 했던 이극로(우리말큰사전 말모이 출판에 결정적인 노력을 했던 이극로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말모이 뜻 조선어학회] / ⓒ aks.ac.kr)


이후, 장학생으로 상해의 동제대학을 다니던 중에 외국인의 도움으로 베를린대학 유학에 올랐습니다. 이극로는 학비를 벌기 위해 조선어 강의를 했는데, 독일인들은 한글 문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사전조차 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이에 이극로는 조선으로 돌아가서 한글 말살 정책을 펴는 일제에 대항하여 말모이(뜻: 사전)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렇듯 한글 사전은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로 이어지며 끊길 뻔한 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조선어학회 사건과 말모이 뜻 


조선으로 돌아온 이극로는 108명의 인사와 함께 조선어편찬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931년 '조선어연구원'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1933년 한글맞춤법 표준안을 내놓는 등 말모이를 만드는 작업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11년 동안이나 매달려서 만들어진 <조선어사전>을 출판하려고 했지만, 천황에 대한 설명이 짧다느니, 동경에 대한 설명이 개경보다 적다느니 하는 트집 때문에 일제 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여 고생하였습니다. 


사진: 단어를 분류하고 설명한 말모이 원고의 일부분(단어를 분류하고 설명한 말모이 원고의 일부분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 ⓒ 국립한글박물관)


말모이 뜻은 말을 모았다는 사전의 의미입니다. 실제로 조선어사전에는 1500권의 옛말 문서를 참고하여 16만 개의 어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50여 명의 전문위원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8명의 사전 편찬 위원이 매달렸으며 5000여 명의 현직 선생님들이 낱말 모으기에 참여하였습니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거대한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전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파묻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사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말모이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말모이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조선어학회 말모이 뜻] / ⓒ 훈터)


1942년 말모이 조선어사전 편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일제는 갑자기 조선어학회 사무실을 덮쳤습니다. 이극로의 책상에 있던 편지에서 "널리 펴는 말"이라는 것을 가져다가 "조선독립선언서"라며 뒤집어 씌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일제는 내용 중 일부를 "봉기하자, 폭동하자"로 바꾸고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모이 편찬은 끝이 나고 이극로는 징역 6년을 받았으며 '이윤재', '한징'은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EBS 방송에서 조명된 우리말큰사전들. 낱말별로 나누어져 있다(EBS 방송에서 조명된 우리말큰사전들. 낱말별로 나누어져 있다.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말모이 뜻 조선어학회] / ⓒ EBS)


광복 후 이극로는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김두봉의 부탁으로 북한에 남아서 북한 한글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이극로의 후손은 빨갱이로 낙인찍혀서 취업도 못하는 '연좌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1948년에는 '보도연맹 사건'에 의해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극로의 생가는 무관심 속에 훼손되고 방치되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말모이 뜻은 말을 모으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의 역사적 비극이 함께 담긴 사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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