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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석유발견 사건 - 석유발견비사, 우리나라에서 원유 발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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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석유발견 사건 - 석유발견비사, 우리나라에서 원유 발견?

키스 키스세븐 2018. 11. 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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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석유발견 사건 - 석유발견비사, 우리나라에서 원유 발견?] 

우리나라는 수출에 의지하는 경제를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인 석유 수입국이라는 한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유에 대한 열망이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극소량의 석유가 나오지만, 과거의 석유발견비사를 보면 포항 석유 발견 해프닝처럼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포항 석유 발견 사건 


1970년대에는 두 차례나 '석유파동'이 있었습니다. 석유산유국들이 올린 원유 가격 때문에 세계가 휘청거릴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 성장이므로 특히 타격이 컸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도 석유를 생산해보자는 열망 때문에 포항 석유 발견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사진: 포항의 유명한 상생의 손 조각상(포항의 유명한 상생의 손 조각상 [포항석유발견 비사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 ⓒ bosco_lee1310)


1976년의 포항 석유발견 발표는 한국 석유발견비사의 대소동이었지만, 우리나라는 나중에 진짜로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등록하게 됩니다. (아래 링크 참고) 그러나 포항 석유발견 사건은 막무가내에 가까웠고, 나중의 울산 동해-1 가스전은 과학적 탐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링크 - 95번째 산유국, 세계 6위 석유수출


사진: 원유는 정제를 하여 석유가 된다(원유는 정제를 하여 석유가 된다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포항석유발견 비사] / ⓒ 금호석유화학)


우리나라에서 포항의 원유 가능성을 생각한 건 1968년입니다. 포항 앞바다에 대륙붕이 뻗어 있고 지질이 퇴적층이라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결론은 포항의 석유 발견은 "가능성 희박"이었습니다. 그런데 1975년에 포항 앞바다 영일만의 석유 발견 가능성이 다시 제기됩니다. 



1970년대 석유발견비사 


수완이 좋은 어떤 사업가로부터 다시 추진된 이 사업은 엉뚱하게도 에너지 사업부가 아닌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해관계가 없는 중앙정보부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1972년 '유신' 독재체제를 만든 후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공작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진: 한국에서 석유가 나왔다는 신문기사(한국에서 석유가 나왔다는 신문기사 [포항석유발견 비사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 ⓒ 경향신문)


중앙정보부 입장에서는 매우 황당한 일이겠으나, 어쨌든 1975년 초부터 추진된 포항 석유탐사 사업은 5월부터 정식 가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그 사업가의 석유개발권을 취소시키고 시추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동신산업공사'라는 이름의 위장회사를 차려서 3개의 갱정을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포항의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의 당시 기사 사진(포항의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의 당시 기사 사진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포항석유발견 비사] / ⓒ 매일신문)


당시에는 석유 시추기술이 매우 아마추어 같았으므로 외국 전문가를 초빙해서 의뢰하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국립연구소 박사는 "퇴적층이 너무 얇아서 가능성이 낮고, 포항에서 석유발견이 되더라도 경제성이 없다"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밀어붙였으며 12월이 되도록 아무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진: 포항 영일만의 상공 사진(포항 영일만의 상공 사진 [포항석유발견 비사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 ⓒ NASA)


그런데 여기서 석유발견비사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포항석유발견 사건입니다. 사실 대륙붕 지하 1400m를 파 내려가자 퇴적층이 끝나며 화강암층이 나왔으므로 이 사업을 접자는 의견이 많았었습니다. 화강암은 마그마가 식은 것이므로 석유 생성물질의 퇴적이 없는 곳입니다. 정말로 퇴적층이 너무 얇았던 것입니다. 


사진: 박 전 대통령에게 병에 담겨져 보고되었다고 한다(박 전 대통령에게 병에 담겨져 보고되었다고 한다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포항석유발견 비사] / ⓒ congerdesign)


하지만 12월의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검은 액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을 붙이니 활활 타올랐고 시추공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12시간 정도 나오던 액체는 한 드럼 정도를 채우고는 멈췄습니다. 이 액체는 즉시 박정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대통령과 관계자들이 포항 석유 발견에 꽤 흥분했다고 포항 석유발견비사는 적고 있습니다. 



포항 원유 발견 해프닝 


포항 석유발견이 사실인지는 중화학공업 담당 비서관이 맡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정유사에 그 액체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박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이 사실을 흘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괴로웠습니다. 원유가 아니라 경유였다는 것입니다. 석유발견비사는 이 사실이 보고되자 박정희가 매우 크게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사진: 대규모 석유시추선의 예시 사진(대규모 석유시추선의 예시 사진 [포항석유발견 비사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 ⓒ tekila918)


'원유'와 '경유'는 완전히 다릅니다. 원유는 석유의 원료이고 실제로 땅 속에서 시추해 올린 것입니다. 하지만 경유는 원유를 정제해서 다시 만든 석유의 한 종류입니다. 즉,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경유를 다시 퍼올린 셈입니다. 아마도 시추를 위해 윤활유로 뿌려진 경유가 아니었을까 짐작되고 있습니다. 포항 석유발견 사건은 그렇게 묻히나 싶었습니다.


사진: 포항 포스코 인근의 일몰 시간(포항 포스코 인근의 일몰 시간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포항석유발견 비사] / ⓒ monomind)


하지만 포항 석유발견비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유가 아니라 경유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정희는 197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물론 "단, 외국 기술자들이 유망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아직 뭐라고 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지만 흥분한 기자들에 의해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진: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석유발견을 발표하는 모습(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석유발견을 발표하는 모습 [포항석유발견 비사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 ⓒ 경향신문)


이때부터 한국의 기자들은 거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표기사 특집으로 포항 석유 발견을 쏟아냈고, 어떤 기자들은 앞으로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사도 썼습니다. 심지어 중동 최대의 유전 한 곳과 맞먹는 양이 매장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국민들은 환호하며 들떴고, 이미 유신독재 헌법 문제는 까마득히 잊히고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석유시추선의 예시 사진(바다 위에 떠 있는 석유시추선의 예시 사진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포항석유발견 비사] / ⓒ Arabian Drilling Company)


박정희는 그래도 석유 시추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미국에서 최신 기계를 사 오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1500m도 넘게 뚫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때라도 포항 석유발견이 이루어졌다면 평가가 달라졌겠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너무 무식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석유파동 이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석유 발견을 열렬히 원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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