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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유지 - 율곡 이이와 기생 유지의 사랑이야기, 유지사(柳枝詞)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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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유지 - 율곡 이이와 기생 유지의 사랑이야기, 유지사(柳枝詞)

키스세븐지식 2017. 7. 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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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유지 - 율곡 이이와 기생 유지의 사랑이야기, 유지사(柳枝詞)]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의 대학자이고, 유지는 이이를 흠모했던 기생입니다. 기생이라는 신분과 학자라는 신분, 그리고 나이 차가 많은 만남... 학자와 기생의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낯선 관계지만, 율곡 이이와 유지에 대한 일화는 흔하지 않게 맑고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율곡이 남긴 유지사에 전해져 옵니다.


[글의 순서]

1.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

2.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

3.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

4.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조선 선조 때 벼슬을 한 사람으로 1500년대 중반에 살았습니다. 과거에 9번이나 장원을 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조선 성리학을 발전시킨 대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황이 주리론을 주장하고 서경덕이 주기론을 주장한 후, 율곡 이이는 주기론의 입장에서 주리론마저 받아들여서 생각했습니다. 그로인해 율곡 이이의 사상은 "현실을 개선하므로써 진리성을 찾는 학문"으로 거듭나며 '기호학파'의 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오천원 지폐에 그려진 율곡 이이의 초상.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학자와 기생의 인연에 대한 일화이다.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사진: 오천원 지폐에 그려진 율곡 이이의 초상.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학자와 기생의 인연에 대한 일화이다.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 / ⓒ 한국은행)


이이의 호가 '율곡'인 이유는 그가 태어난 곳이 경기도 파주 '율곡리'이기 때문입니다. 율곡 이이는 '오죽헌'과 함께 오천 원 지폐에 그려져 있으며,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오만 원 지폐에 그려져 있습니다. '10만 양병설'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생전에 직접적으로 10만 명을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또한 기생이 곁에 있어도 유혹되지 않은 일화가 유명합니다. 다만, 정실부인 외에도 소실이 있었던 것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사진: 오만원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의 초상. 학문과 예술에서도 출중했지만,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훌륭한 인재를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사진: 오만원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의 초상. 학문과 예술에서도 출중했지만,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훌륭한 인재를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십만양병설의 대학자 율곡 이이] / ⓒ 한국은행)


율곡 '이이'와 기생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겉으로 고고한 척하면서 뒤로 문란한 생활을 하던 다른 사대부들과 비교할 때 참으로 맑고 투명합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인 사랑이니, 플라토닉한 사랑이니 명칭을 붙여 얘기하지만, 율곡 이이의 입장에서 보면 나이 차가 많이 나더라도 평생을 말벗으로 지낼 수 있는 고마운 "인연"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조선시대 한 학자와 기생의 만남은 인생을 벗하는 사이라는 표현이 가장 맞는 말이겠습니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


조선 대학자 이이가 기생 유지를 처음 만난 것은 1574년 황해도 감찰사로 부임하면서입니다. 39세의 율곡 이이는 몸이 약해져서 왕이 내리는 벼슬도 사양하고 요양을 다녔는데, 누나가 있는 황해도로 요양을 간다는 말을 듣고 왕이 황해도 감찰사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해도 황주에 머물게 되었는데, 저녁 주안상을 들고 나타난 기생이 바로 유지였습니다. 조선 대학자와 기생의 만남, 율곡 이이와 유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황해도 황주의 심원사 전경. 율곡 이이와 유지의 만남은 이이가 감찰사로 부임한 해에 처음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유지는 사모의 정을 품었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사진: 황해도 황주의 심원사 전경. 율곡 이이와 유지의 만남은 이이가 감찰사로 부임한 해에 처음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유지는 사모의 정을 품었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 / ⓒ 조선고적도보)


그러나 유지는 기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열두 살의 소녀였습니다. 율곡 이이는 유지의 술잔을 받으며 기생이 된 사연을 들었습니다. 원래 부모는 양반이었으나, 풍파를 만나서 부모를 일찍 잃고 기생이 되었다는 사연을 가진 유지입니다. 

유지의 마음 씀씀이와 외모가 고았기에, 율곡 이이는 이후에도 유지와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율곡 이이는 유지를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말벗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사진: 신윤복이 그린 양반과 기생의 풍류. 하지만 율곡 이이는 학자로서 기생을 멀리하고 여색을 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사진: 신윤복이 그린 양반과 기생의 풍류. 하지만 율곡 이이는 학자로서 기생을 멀리하고 여색을 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 / ⓒ 신윤복)


저녁 술상에서 인생을 가르치는 따뜻한 학자 이이에게 유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율곡 이이는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유지는 이이와의 헤어짐에 슬퍼했지만, 율곡 이이는 다독여 주기만 할 뿐 다시 만날 기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원접사'가 되어 평양을 오갈 때도 원래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는 율곡이었기에 지방수령이 보내주는 기생도 멀리하고, 유지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


그리고 9년 후, 율곡 이이의 나이 48세가 되는 해에 누나를 만나러 다시 황해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인연이 닿아서 이이와 유지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 율곡 때문에 가슴만 태웠을 유지입니다. 스물한 살이 된 유지는 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 누군가와 관례를 치루어 머리도 올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율곡 이이와 유지는 학자와 기생으로서가 아니라 말벗으로만 만나서 술잔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진: 위키백과에 실려진 조선시대 기생이라고 소개된 사진. 작자 미상이라 사진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15세 전후의 소녀들이 기생의 길로 들어섰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사진: 위키백과에 실려진 조선시대 기생이라고 소개된 사진. 작자 미상이라 사진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15세 전후의 소녀들이 기생의 길로 들어섰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 / ⓒ 미상)


이렇게 율곡 이이와 유지는 얼굴만을 대하고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남녀의 정이 싹틀만도 했지만 율곡 이이는 가정을 가진 학자였고, 유지도 어릴 적부터 모셔오던 대학자에게 함부로 흠모의 정을 고백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사회상으로 볼 때 양반이 기생을 한 번 품는 것이 큰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율곡 이이는 여인을 대할 때도 "정"으로 시작해서 "예의"로서 끝을 맺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사랑하는 마음마저 거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유지가 하룻밤 모시고 정을 나누려 했으나 이이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진: 드라마 황진이의 한 장면. 이이와 유지는 10여 년을 알고 지내면서도 그저 말벗으로 인연을 맺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사진: 드라마 황진이의 한 장면. 이이와 유지는 10여 년을 알고 지내면서도 그저 말벗으로 인연을 맺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 / ⓒ KBS)


그러던 또 어느 날엔가 율곡 이이는 누나의 집에 가는 길에 유지에게 들렀습니다. 이날도 이이와 유지는 술잔을 나누며 마음의 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유지는 언제나 기약 없는 학자를 기다리는 기생일 뿐이었습니다. 사랑을 나누기에 율곡 이이는 너무나 거목 같았으니, 학자와 기생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밤을 함께 지새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남자를 대했던 기생이지만 흠모의 정은 오직 율곡 이이에게 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진: 신윤복이 그린 양반과 기생. 겉으로는 젊잖은 척하지만 뒤로는 난잡한 생활을 하는 양반이 한 둘이 아니었으나, 율곡 이이는 대학자의 길을 걸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사진: 신윤복이 그린 양반과 기생. 겉으로는 젊잖은 척하지만 뒤로는 난잡한 생활을 하는 양반이 한 둘이 아니었으나, 율곡 이이는 대학자의 길을 걸었다. [학자와 기생의 플라토닉 러브] / ⓒ 신윤복)


이이는 누나 집 방문을 마치고 한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황해도 재령의 '율관진 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어 누우려는 참에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보니 유지였습니다.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맞아야 하니 그리운 남자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수십리 길을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유지는 "여색을 보고도 무심하니 감탄한다"며 속마음을 슬며시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모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이이는 유지를 그저 벗으로만 대할 뿐이었습니다.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


율곡 이이는 이러한 사연을 유지사(柳枝詞)라는 글로 남겼다고 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모의 정을 애틋하게 보면서도, 천한 기생으로 고달프게 살아가는 유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컸다면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아름답고 맑은 얼굴, 총명한 머리를 가진 유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보일까봐 두려워하여 일부러 불을 켜고 대화만을 나눴다"고 이이는 글을 적었습니다. "사람이 탐욕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마음을 거두어 본성으로 돌아가니 내세가 있다면 거기서 만나겠다"는 시 구절도 전했다고 합니다. 


사진: 율곡 이이가 유지에서 써준 것으로 알려진 일명 유지사. 따로 제목은 없고 유지와의 사연이 적혀 있어서 유지사라고 부른다.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사진: 율곡 이이가 유지에서 써준 것으로 알려진 일명 유지사. 따로 제목은 없고 유지와의 사연이 적혀 있어서 유지사라고 부른다.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 / ⓒ 율곡 이이 유지사)


사실, 이때 율곡 이이는 이미 병들어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서너 달 후 율곡 이이는 정말로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이의 소식을 들은 유지는 마치 남편을 잃은 것처럼 3년을 슬퍼하며 "예"를 지냈다고 합니다. 사람의 정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이이를 향한 유지의 사랑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품은 연정은 스물한 살 여인이 되어서도 그대로였고, 39세에 처음 본 어린 소녀를 49세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지켜준 이이의 마음 또한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오천원 지폐에도 그려져 있는 오죽헌. 율곡 이이가 거쳐하던 곳이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본분을 잊지 않은 학자와 기생의 이야기로 맺는다.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사진: 오천원 지폐에도 그려져 있는 오죽헌. 율곡 이이가 거쳐하던 곳이다. 율곡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본분을 잊지 않은 학자와 기생의 이야기로 맺는다. [기생 유지를 걱정하는 유지사] / ⓒ Klaus314)


이이와 유지의 사랑이야기는 율곡이 마지막 만남에서 적어준 '유지사(柳枝詞)'에 전해져 옵니다. 현재 유지사는 이화여대 박물관에 전해져 오는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가 너무도 진솔하게 기생과의 사연을 적었기에 글을 읽는 이마다 탄복하곤 합니다. 

하지만 후세의 제자들이 기생과의 사적인 글이니 율곡 문집에 실을 수 없다고 하여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말년에 병이 들어 유지의 사랑을 받아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율곡 이이가 유지를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며 남긴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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