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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전쟁과 무기, 고조선 역사 비교

키스 키스세븐 2017. 1.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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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전쟁과 무기, 고조선 역사 비교]

청동기와 철기는 무엇이 다르며 왜 청동기 시대는 후퇴하고 철기 시대가 점령하게 되었는지 관찰해 보는 글입니다. 더불어,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해 왔으므로 청동기 무기와 철기 무기가 어떻게 공존하다가 철기 무기의 시대가 되었는지도 살펴봅니다. 신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쳐간 고조선도 같이 비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


도구의 사용은 인류의 지식수준이 얼마만큼 발달했는지를 보는 잣대이므로 보통 역사를 구분할 때 구석기 - 신석기 - 청동기 - 철기로 구분합니다. 구석기와 신석기의 변화에서 주목할 것은 "가공"입니다. 돌을 갈아 정교한 가공을 한다는 것은 지능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신석기와 청동기의 변화도, 물리적인 힘에 의해 돌을 가공하던 시대에서 불에 녹여 화학적인 가공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명의 발전을 보는 기준이 됩니다. 원시시대부터 불을 사용하긴 했지만, 철기 시대는 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큰 사건인 셈입니다. 


사진: 형틀을 이용해서 쇠를 녹여 칼을 만드는 모습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사진: 형틀을 이용해서 쇠를 녹여 칼을 만드는 모습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 / ⓒ Karsten Wentink)


청동기와 철기는 금속을 철에 녹인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기술수준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우선 채굴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청동기의 재료가 되는 것은 주석과 구리인데, 매장량은 많지 않으나 거의 덩어리째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철은 돌 사이사이에 박혀있고, 불순물이 섞이기 때문에 철만 따로 녹여서 빼내는 것은 높은 기술수준을 요구하게 됩니다. 

청동의 녹는점은 약 1000도 정도인데 철의 녹는점은 약 1500도이므로, 당시에 가장 높은 열을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1200도 정도였다는 점을 보면 얼마나 철기를 만들기가 힘들었을까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 청동기 시대에 가마에서 구리와 주석을 녹여 청동기를 만드는 모습의 상상도.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사진: 청동기 시대에 가마에서 구리와 주석을 녹여 청동기를 만드는 모습의 상상도.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 / ⓒ Kim Støvring)


하지만 일단 높은 열을 내는 기술을 익히고 나면 청동기는 철에 비할 정도가 못 되었습니다. 철은 구리와 주석보다 매장량이 많아서 구하기 쉬웠으며 더 강력한 강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무기로 사용하기에 알맞았습니다. 예를 들어 청동기 칼과 철기 칼로 칼싸움을 벌인다면 청동기 칼은 금이 가고 부러지니, 철기문화는 인류 전쟁사에서 획기적인 신무기인 것이었습니다. 

기원전 1600년대의 국가 '히타이트'가 강력한 군대로 서남아시아를 휩쓸어버린 이유는 최초의 철기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단지 청동기보다 재료가 구하기 쉬운 장점뿐이었지만, 불순물 제거 기술이 높아지면서 점차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사진: 기원전 1500년 전후의 중동. 청색이 히타이트의 세력권이다.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사진: 기원전 1500년 전후의 중동. 청색이 히타이트의 세력권이다. [고대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의 무기] / ⓒ MichaelFrey)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청동기 문화가 선을 긋듯이 철기문화로 바뀐 것은 아니고, 신석기문화와 청동기 문화, 철기문화가 일정 시대동안 공존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중동의 청동기 시대는 이집트의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1500년 정도까지로 보고 있고, 유럽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800년 정도부터로 보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3500년부터이며 중국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600년대까지로 봅니다. 한반도 내에서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대부터 기원전 300년대까지로 보지만, 우리민족의 주류가 한반도 밖에 살던 때를 감안하면 이보다는 높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진: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정리한 연대표. 중동, 유럽, 동아시아, 고조선의 대략적인 시대. 녹색이 청동기, 주황색이 철기시대.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사진: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정리한 연대표. 중동, 유럽, 동아시아, 고조선의 대략적인 시대. 녹색이 청동기, 주황색이 철기시대.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 ⓒ www.kiss7.kr)


서양의 철기시대는 '히타이트'의 등장 이후 기원전 1200년대에 이뤄지는데, 이때 중동은 '수메르'가 멸망하고 '바빌로니아'가 있었으며 이집트문명이 주도하는 중이었습니다. 히타이트는 철기 무기를 앞세워 중동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동양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500년을 전후하여 춘추시대가 있던 때입니다.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서 전쟁을 벌이던 때였으므로 철기 무기는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400년 정도로 보고 있는데, 고조선은 중국 연나라와 치열하게 싸우던 중이었습니다. 각 지역별 철기시대의 시작은 치열한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기원전 2000년 경의 청동기시대 문명지도. 왼쪽부터 이집트, 히타이트, 인더스, 하왕조, 고조선 등이 보인다.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사진: 기원전 2000년 경의 청동기시대 문명지도. 왼쪽부터 이집트, 히타이트, 인더스, 하왕조, 고조선 등이 보인다.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 ⓒ yellow.kr)


'고조선'의 건국연도는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고 멸망연도는 기원전 108년이니 고조선은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는 역사를 가집니다. 중국 최초의 국가로 여기는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경에 건국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동북아시아의 청동기문화는 서로 교류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에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위만조선' 때인 기원전 2세기로 보이며 위만조선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왕권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한반도 남부내부에도 국가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후 농업과 무기 생산의 수공업이 발전하고 상업과 무역이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사진: 기원전 500년 경의 철기시대 문명지도. 그리스와 페르시아, 춘추전국시대와 고조선이 보인다.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사진: 기원전 500년 경의 철기시대 문명지도. 그리스와 페르시아, 춘추전국시대와 고조선이 보인다. [고대 동서양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 ⓒ yellow.kr)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전쟁, 전투


1996년 북유럽에서 청동기시대의 전투 유적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1200년인 청동기시대의 전투 유적이었는데, 추정 인원 700여명 이상이 참전한 것으로 보이니 청동기 전쟁 발굴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이들은 청동기 무기, 나무로 된 무기와 투구,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서, 이 시대에도 훈련된 군인이 있었으며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이미 말을 이용한 전투가 진행된 것도 알 수 있는데, 동양에서도 기원전 400년경의 중국 전국시대에도 기마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지금으로는 탱크를 사용한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사진: 약 3200년 전의 청동기시대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의 유적 발굴 현장. 청동기시대에도 큰 전쟁이 있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전쟁, 전투](사진: 약 3200년 전의 청동기시대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의 유적 발굴 현장. 청동기시대에도 큰 전쟁이 있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전쟁, 전투] / ⓒ sciencemag.org)


전쟁이 지휘체계와 전술에 의해 벌어지는 시기를 대략 청동기 이후로 보고 있는데, 철기 시대가 되면서 전쟁은 또 한 번의 변혁을 맞습니다. 철기 무기와 상대가 되지 않는 청동기는 고급 장신구용 재료로 바뀌고 철로된 무기가 전장을 휩쓸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철로된 칼의 문제가 아닙니다. 

철은 청동기보다 훨씬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군대의 증가와 일반 병사마저도 강력한 무기로 전투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반면 청동기 시대의 청동기 무기는 상류층 및 지도층의 전유물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청동기 시대가 상류층이 주를 이루는 전쟁이었다면 철기 시대는 일반 병사가 주를 이루는 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서기 200년 경의 위,촉,오 삼국지를 그린 드라마의 한 장면. 엄청난 수의 보병이 철기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전쟁, 전투](사진: 서기 200년 경의 위,촉,오 삼국지를 그린 드라마의 한 장면. 엄청난 수의 보병이 철기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전쟁, 전투] / ⓒ lzgjn.com)


철기 문화는 농기구 개량으로 농업량의 생산증대를 가져오며 인구 증가와 이어지고, 이것은 병사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더 많은 병사를 이용한 물량전의 성격이 강해지고 국가는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국민의 수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바뀝니다. 즉 더 강력한 중앙집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상나라(은나라)의 동원 병력은 약 3만 명 수준이었는데, 철기 시대인 서기 200년대의 위, 촉, 오 삼국시대에는 10만~20만 명의 군대가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기마병의 돌격과 함께 많은 수의 보병으로 전쟁을 치르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인류의 발명과 발전은 전쟁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으니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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