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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징가 여왕 - 아프리카 앙골라의 어원과 식인종, 변태성욕자설에 대하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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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징가 여왕 - 아프리카 앙골라의 어원과 식인종, 변태성욕자설에 대하여

키스세븐지식 2016. 3.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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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징가 여왕 - 아프리카 앙골라의 어원과 식인종, 변태성욕자설에 대하여] 




아프리카 서남쪽의 나라 앙골라에서 은징가 여왕(Nzingha Queen)은 국가적 영웅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은 은징가 여왕이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며, 변태성욕자로서 가학적 성행위를 즐겼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은징가 여왕은 앙골라에서는 전쟁의 군주로 섬겨지는 여왕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잔인한 학살자로 낙인 찍힌 여왕이기도 합니다.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라고 알려진 은징가 여왕


대표적인 은징가여왕의 인육을 식육하는 일화를 보면, 한마을 사람 전체를 맷돌에 갈아 먹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은징가여왕이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 마을 사람이 실수를 범했다고 합니다. 은징가여왕은 대로하여 600여 명의 마을 사람 모두를 발가벗긴 채 거대한 맷돌에 넣었다고 합니다. 시체는 갈기갈기 찢기고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그릇에 담아오게 하여 연회를 열어서 먹어버렸다고 합니다. 또 은징가여왕은 아이들의 살을 좋아해서 이틀 동안에 130여 명의 아이들을 죽여서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강력한 왕권을 지닌 은징가여왕을 두려워하며 구전되어 온 얘기를 적은 것이므로 매우 과장되었을 수 있습니다.



(은징가 여왕은 아프리카 앙골라의 국가적 영웅이다)


포르투갈로부터 부족을 지켜낸 은징가여왕에게는 인육을 먹는 식인종, 무자비한 변태성욕자라는 설명 등이 따라 다닙니다. 하지만, 이에 근거가 되는 자료들은 대부분 은징가여왕 때문에 침략에 실패한 서양인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정적인 은징가여왕에 대한 자료들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인육을 먹는다거나 한 마을을 몰살시키는 것이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동이지만, 따지고 보면 서양인들은 더 잔혹한 행위를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서부영화를 보면 언제나 인디언이 야만족에 잔인한 종족으로 묘사되는 것도, 더 많은 기록을 남긴 침략자가 피지배자를 음해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서양인의 눈에는 미운 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변태성욕을 가졌다는 은징가 여왕의 얘기들


은징가여왕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은 또 있습니다. 남성의 피를 보면 흥분하는 변태성욕자라는 얘기입니다. 인터넷에 퍼진 얘기를 보면 은징가여왕은 남자노예들에게 싸움을 붙여서 살이 터지고 피가 나면 흥분하곤 했다고 합니다. 노예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은징가여왕은 살아남은 노예를 불러들여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침실에서도 은징가여왕은 할퀴고 물어뜯어서 괴로워하는 남자 노예를 보며 흥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뒤 노예는 사지를 찢기거나 해서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은징가여왕에 대한 공식기록에서는 물론 찾아볼 수 없는 얘기들입니다. 



(은징가여왕의 앙골라는 유럽이 노예 납치 행위의 교두보로 삼은 곳)


그런데 은징가 여왕의 변태성욕 이야기는 소설의 영향의 큽니다. 해상제국 포르투갈을 막아낸 여장부 은징가 여왕에 대한 소문은 유럽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고, 프랑스의 작가 사드 후작이 모티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드 후작이 소설에서 남자 노예와 변태적인 하룻밤을 보낸 후 잔인하게 살인하는 여왕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앙골라의 전투적인 여왕 은징가에 대해 유럽인의 소문이 좋을 리 없었고, 공포와 잔인한 얘기를 은근히 좋아하는 사람의 습성상 더 잔혹하게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며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여왕이라는 인터넷의 자료들은 이런 바탕 위에서 적혀진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식인종이었을 수도 변태성욕자였을 수도 있지만 독립투사이기도 했다)






앙골라를 지켜낸 철의 여왕 은징가


루안다를 수도로 하는 앙골라는 아프리카 서남부에 있는 나라입니다. 1600년대 초, 조선이 여러 호란으로 피폐해지고 있을 시기에 앙골라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이때 앙골라지역에는 은동고 왕국(또는 은돔바 왕국)이 있었습니다. 은동고왕국은 노예를 배에 태우는 해안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침략 야욕에 먹잇감이 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징가 여왕이 왕위에 오른 후 포르투갈의 노예무역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내륙에서 노예를 잡은 후 앙골라를 지날 때 은징가 여왕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은징가 여왕은 앙골라 내에 포르투갈이 설치한 기지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대담함으로 유럽인을 놀라게 하는 은징가여왕의 일화를 담은 그림)


은징가 여왕은 부족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한 여왕입니다. 은징가 여왕은 유럽과 친선을 맺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을 하기도 했고, 포르투갈을 견제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힘을 이용하는 외교술도 펼쳤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하자 잘 훈련된 여전사들을 이끌고 공격을 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은동고왕국 사람들은 은징가여왕을 전쟁군주라는 뜻으로 "은골라"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이 유럽에 전해지며 지금의 "앙골라"라는 국가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앙골라의 은징가여왕은 포르투갈의 내정간섭에 굴하지 않고 싸워 이겼습니다. 포르투갈은 은징가 여왕이 살아있는 동안 앙골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은징가여왕은 80세가 넘도록 살았고, 은징가여왕이 죽은 뒤에야 포르투갈은 앙골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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