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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제2차 세계대전 일본 패망의 몸빵전투 - 병사를 소모하는 사고방식

2015. 5. 19.

[제2차 세계대전 일본 패망의 몸빵전투 - 병사를 소모하는 사고방식] 



20세기를 시작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일본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주변국의 피해가 크지만 극우보수성이 강한 일본은 오히려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국 병사들마저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데, 말 그대로 몸빵전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의 패망, 애초에 예정된 전근대성의 패배 


제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통계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만해도 민간인 사상자 비율은 5% 정도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되면서 민간인 피해는 전체 사상자의 66%까지 올라갑니다. 군인 사상자수를 앞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의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태평양전쟁을 보면 일본의 군인 사상자수는 기타 연합군과의 비율에서 말도 안 되게 높습니다. 소련의 피해도 막심하지만 병사를 소모품으로 사용한 것은 일본이 더 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전투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각종 첨단무기의 활용으로 인하여 더 이상 병력의 수적 우세만으로 승부를 가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과 미국의 전투물자 생산량을 비교하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이나 미국이 많은 물자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물량전 자체에서 일본은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을 일으켰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정 먼저 서구화되었다는 장점을 지니긴 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입니다. 현대화된 장비로 일본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아시아를 짓밟고 있었지만, 왕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관료체제는 현대전을 수행하기엔 벅찬 수준이었을 따름입니다. 국가적 전근대성은 젊은 병사들의 희생만 가중시켰을 뿐입니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 일본도 거대 영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면 대등한 전투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의 전투는 언제나 "무식한" 전투였습니다. 항상 상대국 보다 많은 희생을 치렀고 그래서 전쟁 말기에 어린 초보병사들이 자살공격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사상자는 미국의 3배입니다. 마닐라 전투에서는 약 2배였고 레이테만 전투에서 5배, 이오지마 전투에서 3배의 전력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전입가경이 되는데, 페렐리우 전투에서는 10배였고 괌 전투 10배, 만주 전투에서는 소련의 10배, 사이판에서도 미국의 9배의 자국 병력을 죽여 가며 싸웠습니다. 

급기야 후반에 과다카날 전투와 레이테 전투에서는 20배의 병사들이 죽어갑니다. 









변화하지 않는 사고방식, 극단적으로 흐른다 


최대 격전지였던 오키나와에서 12배의 일본군이 죽었는데, 이 때 미군의 피해는 1만 2천명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숫자마저 많은 손실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일본은 매번 상대국의 10배 이상의 자국 병사를 죽여 가며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 미국은 이 오키나와 전투와 같은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답니다. 


일본은 왜 이렇게 무식한 전쟁을 했을까요? 

일본 왕을 중심으로 한 막부 정치 이래 무조건적인 명령과 복종이 몸에 배인 일본의 지휘관들은 현대적 무기의 열세도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왕 만세를 외치며 죽어가는 것을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군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국민과 병사들의 목숨을 군집집단의 개미처럼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지도급이었고 국민은 세뇌된 희생양이었던 것입니다. 





1939년 전후의 미국 인구는 약 1억3천만 명이었습니다. 일본은 7천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당시의 주요 공업선진국 중에서 일본이 2위의 인구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전쟁물량 생산력에서 이미 미국이 수배 이상인데 비해 인구는 겨우 절반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몸빵전투를 했습니다. 적은 인구를 더 낭비한 것입니다. 


18만 명이 상륙해서 미군 1만여 명이 죽은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10만 명의 일본군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 12만 명이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자결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일본군은 천황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무식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일본 본토 앞에서 벌인 전투였기 때문에 나름 어쩔 수 없는 결사항전이긴 했습니다. 

두 달여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승기를 잡았습니다. 일본군은 전력의 85%를 잃고 오키나와 전투의 패배가 확실해졌습니다. 


패배에 이르러 일본군 사령관과 지휘부는 할복자살을 하였습니다. 많은 수의 군인들도 천황만세를 외치며 자결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휘부는 이 섬에 살던 주민들에게도 옥쇄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민간인들은 가족끼리 목 졸라 죽이거나 수류탄을 터트려서 집단자살을 했습니다. 적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자결하라는 군부의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게 12만 명의 민간인도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왕은 전쟁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고 전범재판에도 회부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 많은 국민이 탐욕스러운 정부의 전쟁놀음에 목숨을 바쳐 희생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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