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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민간인 학살과 뉘른베르크 재판의 아이러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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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민간인 학살과 뉘른베르크 재판의 아이러니

키스세븐 2015. 2. 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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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민간인 학살과 뉘른베르크 재판의 아이러니]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은 불공정 재판 


뉘른베르크는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바로 이 뉘른베르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범을 처리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두 번에 걸쳐 열렸습니다. 

첫 번째는 결정권이 있던 고위급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었고, 두 번째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전범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측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을 재판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재판을 열었는데, 침략 전쟁의 책임자 재판, 비인도적 학살 등에 대하여 책임을 물었습니다. 


20여명의 1급 전범을 기소하여 재판을 했었는데, 하우스포허, 괴링, 헤스 등의 거물급 독일 인사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 중 10명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 유태인 학살에 대한 재판에서는 약 25명이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특히 이 뉘른베르크 재판은 독일만 전쟁의 비인도적 학살에서 책임을 져야하는가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인 군인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 논쟁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뉘른베르크 재판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지게 됩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기본적인 관점은 비인도적인 전쟁에 대한 책임추궁입니다. 그래서 연합군측에 피해를 준 장본인과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책임자들이 엄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뉘른베르크 재판이 철저히 연합군이 벌을 주고 독일이 벌을 받는 형태라는 것에 있습니다. 연합군측도 전쟁기간 동안 엄청난 비인도적 살상을 가했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의 재판은 연합군측의 시작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직 승자만을 위한 재판이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승전국의 전쟁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아예 재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로도 승전국의 민간인 학살, 불법 폭격, 대량살상 등에 대한 책임은 면죄부를 받은 채 그대로 묻히고 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통계 


유럽의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등 제3세계 동맹국에 대항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주변 연합국이 맞선 전쟁으로 1939년 일어나서 1945년에 끝난 전쟁입니다. 

아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에 대항한 미국, 중국 등의 태평양 전쟁을 말하며 1937년 시작되어 1945년 끝났습니다. 


유럽이나 아시아나 1차 세계대전과의 차이점을 들라고 하면 각종 진화된 무기와 병력, 전술 등이 있겠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차이점 바로 사상자의 민간인 비율입니다. 


유럽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전쟁 중 소련, 프랑스, 독일, 폴란드, 미국 등의 군인 사망자는 약 1천 8백만 명입니다. 

그런데 소련, 폴란드, 독일, 유고슬라비아 등 전쟁 당사국들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약 2천 9백만 명입니다.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자 비율이 약 1대 1.58명입니다. 군인이 2명 죽을 때 노약자를 포함한 민간인은 3명이 죽어갔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통계에서 접할 수 있는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자 비율을 찾아 봤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군인과 민간인 비율은 약 95%대 5%였습니다. 

마치 전장에서만 총성과 죽음이 오고 갔을 뿐, 국내의 민간인들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으로 가면 양상이 바뀝니다. 전체 사망자 중 군인과 민간인의 비율은 33%대 67%로 역전됩니다









독일의 어마어마한 비인도적 민간인 피해 


이렇듯 민간인의 사망자 비율이 매우 높은 것에는 가공할만한 살상무기들이 총동원되면서, 전쟁 상대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민간인에게 피해를 줌으로써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전쟁수행 능력을 내부로 부터 흔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세계대전 영화를 보면 독일 공군의 철면피 같은 폭격으로 인하여 영국 및 각 도시들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고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독일의 민간인들도 같은 입장이었으며 어쩌면 그 보다 몇 배의 더 심각한 피해와 공포를 격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누가 우리 편이냐 아니냐, 패전국은 할 말이 없는 것이다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하는 인간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독일을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연합국에도 전범이 있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독일측의 공습과 비인도적인 공격, 유태인 학살에 대한 잘못만을 다루었습니다. 

독일의 드레스덴에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연합국의 공습에서 독일 민간인은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사망을 합니다. 그 숫자는 최소 4만 명, 최대 10여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민간인이 폭격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공격을 지시한 영국의 아더 해리스는 훈장을 받고 전쟁영웅이라는 동상까지 받습니다.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이러한 연합국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전혀 재판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서 독일인의 사망자는 600만 명~90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40만 명 정도이고 영국도 비슷합니다. 프랑스는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소련의 사망자는 그 이상입니다. 이 중에서 사망자가 많은 국가의 특징은 전쟁의 전투지역이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군인의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의 전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국은 독일의 대공습에서 약 6만 명의 시민들이 사망을 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약 54만 명이 공습에 의해 사망을 합니다. 제공권을 잡은 연합군이 독일 내륙에 민간인 대상의 폭격을 대대적으로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쟁 말기에는 독일 공군력의 50%이상이 연합군의 폭격기를 막기 위해 사용됩니다. 비인도적인 살상행위 때문에 그 방어를 위해 연합군에 대한 공격력이 상실되어 간 것입니다. 





전쟁의 잘 못을 독일이 먼저 했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시민들과 어린 아이들까지 그 책임을 지고 폭격에 죽으라는 응징은 너무도 비인간적입니다. 서방국의 이런 비인간성은 승리자로서의 권한으로 아무도 입에서 꺼내지 않는 역사로 지워지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뉘른베르크의 재판은 승자로서의 독일에 대한 앙갚음과 응징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인류를 참혹하게 죽인 자들에 대한 재판은 아닙니다. 독일 보다 더 많이 민간인을 학살한 연합군의 자들은 여생을 편히 살다가 갔기 때문입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가 반성해야할 또 다른 뒷면을 담고 있는 재판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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