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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C-123기 추락 사건 - 봉황새 작전 추락 사고와 707대대 사망자

2023. 3. 4.

제주 C-123기 추락 사건 - 봉황새 작전 추락 사고와 707대대 사망자 / ⓒ kiss7.kr 편집


 

C-123기 추락 사건

제주 봉황새작전과 707대대 사망자

 

이 글은 1982년 2월에 있었던 제주도 봉황새작전과 C-123 추락 사건을 다룹니다. (같은 해 6월에는 경기도 청계산 C-123기 추락사고도 있었음)

C-123기는 XC-123기의 양산형 기종으로, 수송기지만 후방 도어를 통해 공수병 강하 작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전사 부대에서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1994년까지 활동하다가 퇴역한 기종. 영화 "콘 에어"에도 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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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C-123기 추락 사건 - 봉황새 작전 추락 사고와 707대대 사망자

 

봉황새 작전이란 것과 사고

 

제주도 C-123 추락 사고 - 봉황새 작전 은폐 사건 / ⓒ KTV

1982년, 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확장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2월 6일로 예정된 이 행사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도 참석합니다. (전두환: 박정희처럼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고, 한국 보수정당 계보 중 하나인 민정당을 세웠음)

 

그전인 2월 5일, "봉황새 작전"이란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상징을 봉황새로 하고 있었으니, 결국 대통령 경호 작전인 셈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심한 악천후였습니다. 전날 아침 일찍 출발할 경호 부대는 결국 오후가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맡은 부대는 특전사령부 7787부대의 707 특임대대였습니다. 군부 보수 정권은 특전대를 마치 사병처럼 사용했습니다. 특전사 대원들은 공군 수송기인 C-123기를 타고 출발하는데, 이 비행기가 비극을 겪을 "제주 C-123기 추락 사건"의 비행기입니다. 

 

 


 

제주 C-123기 추락 사건의 진실

 

제주 C-123기 추락 사건 - 봉황새 작전 추락 사고와 707대대 사망자 / ⓒ Aeroprints.com

특전사 450여 명이 동원된 봉황새 작전은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53명을 태운 C-123기 한 대가 한라산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오후 3시 30분 정도... 해발 1060m에 있는 개미등에 충돌한 장병들은 그대로 전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국방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악천후로 추락해서 공군 승무원 6명과 707 특임대대 4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초대형 사고임에도, 그 후로는 추가 보도가 거의 없었으며 사망자 명단도, 사고 상황도 비밀에 부쳐진 것입니다. 

 

원래 경호작전이었던 봉황새 작전도 "대간첩 침투작전"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한 기자는 군대보다 먼저 사고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보도 금지에 걸려서 단 한 장의 사진도 신문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악천후에도 억지로 보내다가 난 몰살 사고임을 은폐한 것입니다.

 

 


 

비명횡사로 몰살된 장병들

 

봉황새 작전 추락 사고와 707대대 사망자 / ⓒ 제주관광공사 / kiss7.kr 편집

제주 C-123기 추락사고는 그대로 지워졌습니다. 유가족들은 특전사령부에 따라갔다가 감금당하다시피 감시당했습니다. 정부의 말을 믿고 훈련 중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사고현장에 가는 것이 금지당하고, 시신조차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이 처음 제주도에 갈 수 있었던 것은 "100일제"가 되어서였습니다. 보수정부는 비행기까지 태워주며 100일제를 치러주었지만, 웬일인지 사고현장에 가는 것은 계속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유가족은 끝까지 남아서 현장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100일이 지났는데도 살점과 뼛조각이 파묻힌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유가족들도 다시 제주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결국 살점과 뼈, 신체 일부를 포댓자루에 담아 나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제주도 C-123 추락 사건 - 707 특임대 사망 사고 / ⓒ hani.co.kr 기사 캡처

하지만 유해를 싣고 비행기를 탈 수도 없는 상황... 군인들이 와서 시신을 넘기라는 협박은 계속되고, 결국은 화장해서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항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에게 반발하는 유가족을 빨갱이 좌파로 매도하는 것은 같았고 심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정부와 군대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전두환마저도 단 한 번도 참배를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증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장세동'과 '박희도'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전두환을 따라 쿠데타를 일으킨 후, 보수 정당에 참여하고 정부 요직에 오른 인물들)

 

공군은 아침부터 기상악화를 보고했지만, 장세동이 호통을 치며 강제로 제주에 C-123기를 보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두환에게 충성하려고 그랬다고 추측합니다. 또한 C-123기 추락사건 다음 날 박희도는 동계특별훈련인 "대간첩 침투작전"이었다고 거짓말하게 했습니다. 

 

 


 

제주 C-123기 추락 사고의 그 후...

 

제주 C-123기 추락 사고 - 전두환, 장세동, 박희도의 은폐 사건 / ⓒ ohmynews.com 기사 캡처

그러나 그러고 끝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더 이상의 진실규명은 없었고, 추모비석에 마저 그저 훈련이었다고 적혔습니다. 그 상황도 장세동과 박희도는 출세를 거듭했습니다. 5공 세력이 망한 이후에도 "5·18은 북한이 개입한 사건"이라고 주장해댔습니다. 

 

이후에도 유가족들은 그들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직권남용"으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혐의없음과 공소권없음이 내려지며 아무도 벌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형사고가 터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것은 똑같습니다. 오히려 어떤 국민들이 그들을 감싸고 도는 것도 똑같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다행히도 2015년, 충혼탑에 적혀있던 비문은 "대통령 경호 작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제주 C-123기 추락 사건의 진실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봉황새 작전 중 추락한 사고라는 것은 증언자와 몇몇 기자들의 오래된 기사에나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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