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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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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키스세븐지식 2022. 3. 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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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우펜베르크

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이 글은 실제 인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에 대한 글입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줄거리와 결말은 아래에 있는 링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944년, 히틀러 암살 작전을 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된 인물이 있었습니다. 작전명 발키리의 실존인물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암살 모의자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암살 배경과 암살 모의자들, 그리고 대령의 인간성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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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반나치주의자 슈타우펜베르크

 

가정을 가진 천주교인으로서 나치의 학살을 참을 수 없었던 슈타우펜베르크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후 독일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엄청난 전쟁 배상금 때문에 굶주려야 했습니다. 이때 강한 독일을 내세우며 등장한 히틀러가 인기를 얻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데, 이때가 1939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히틀러의 잔인한 전쟁 행위에 대해 반감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루트비히 베크' 상급대장, '에르빈 폰 비츨레벤' 원수, '헤닝 폰 트레슈코프' 소장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있었습니다.

 

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인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처음엔 히틀러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히틀러가 점점 잔혹해지자 이를 참을 수 없어서 히틀러 암살사건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슈타우펜베르크는 독일의 귀족 집안 출신입니다. 가톨릭 신자였으며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던 청년이었으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입대해서 사관후보생이 되었습니다. 26살에 결혼하고 5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참모본부에서 일하다가 폴란드 전선, 아프리카 전선 등에서 작전 참모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독소전쟁이 터지고, 나치 친위대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1942년, 트레슈코프 소장이 그에게 접근해왔습니다. 소장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유대인 말살,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해 반발이 크다는 것을 알고는 히틀러 암살 조직으로 포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북아프리카로 파견되게 됩니다.

 

 


 

히틀러를 죽이려던 작전

 

왼쪽 끝이 슈타우펩베르크, 가운데가 히틀러

사막의 여우로 유명한 '롬멜' 장군의 작전 참모장을 하던 어느 날, 전투기의 습격으로 왼쪽 눈과 손, 그리고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잃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그는, 부상에서 나은 1943년 베를린 예비군 참모장으로 부임됐습니다.

 

이것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주력군이 전방에 나가 있기 때문에 예비군이 독일의 수도를 점령하면 쿠데타로 전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베크 대장 등 22명의 조직원은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더구나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며 독일의 패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전에 히틀러를 죽이고 휴전을 맺어서 독일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히틀러 암살 사건 계획​

 

작전명 발키리 실화의 실존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1944년 7월 20일, 고위 참모인데다가 장애인이다 보니 신체검사를 받지 않고 히틀러에게 직접 보고를 할 수 있는 슈타우펜베르크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서류 가방으로 위장한 플라스틱 폭탄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후 가방만 놓은 채 슬쩍 빠져나왔는데, 큰 폭발과 함께 회의실에서 사망자들이 실려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히틀러는 부상만 당했을 뿐 살아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히틀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쿠데타는 급속도로 시들어갔습니다. 결국 기회주의자 '프리드리히 프롬' 사령관이 배신하고 그를 체포했습니다. 즉결처분이 내려진 그는, 1944년 7월 21일 밤, 총살형으로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딱 1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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