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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파괴의 밤 - 시카고 야구장의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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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파괴의 밤 - 시카고 야구장의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키스세븐지식 2019. 7. 2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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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파괴의 밤 - 시카고 야구장의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음악 때문에 난동이 났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카고 야구장의 디스코 파괴의 밤 사건입니다. 이것은 이벤트를 좋아하던 상업주의로 인한 해프닝이기도 했지만, 폭력적이고 대형 사고였다는 점에서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 록음악과 디스코 음악의 희한한 사건이었던 시카고 야구장의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현대 음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디스코 폭파의 밤 이벤트 


1970년대는 춤추기 좋은 음악인 '디스코' 열풍이 있었습니다. 디스코 어원은 프랑어인 'Discotheque'에서 나왔는데, 펑크와 소울, 살사 등이 마구 섞인 음악이며 기존의 록음악을 좋아하는 계층이 아닌 소외계층이 즐기던 음악이었습니다. 록음악의 주 계층은 백인이었지만, 흑인, 라틴계 이민자, 성소수자들에게는 맞지 않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비지스', '보니엠' 등의 음악이 히트하며 1970년대 후반에는 세계적인 주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사진: 디스코에 대한 욕설까지 준비한 난동자들(디스코에 대한 욕설까지 준비한 난동자들 [디스코 파괴의 밤 시카고 야구장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 ⓒ Victor Modlinski)


그런데 1980년대 들면서 디스코 음악이 갑자기 인기를 잃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이 1979년 시카고 야구장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입니다. 시카고 야구장은 화이트삭스 구단의 홈구장이었으며, 당시 구단주는 '빌 빅'이었습니다. 

그는 관중의 흥을 돋우는 상업적 이벤트를 즐겼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선수들에게 반바지 야구복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때 록음악 디제이를 하던 '스티브 달'이란 사람이 찾아오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스티브 달은 디스코 음악의 열풍으로 락 디제를 하던 일자리를 잃고 앙심을 품었습니다. 그는 디스코 음악에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에 빌 빅을 찾아가서 이벤트를 제의합니다. 그의 계획은 '디스코 파괴의 밤'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이벤트 광인 구단주 빌 빅은 야구장에 디스코 음반을 가지고 오면 98%를 할인해 주겠다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드디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경기가 열리는 날, 1만 2천 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9만 명이 몰렸습니다. 


사진: 개인적 복수심에 이벤트를 제의한 스티브 달(개인적 복수심에 이벤트를 제의한 스티브 달 [디스코 파괴의 밤 시카고 야구장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 ⓒ dailydsports.com)



디스코 파괴의 밤 난동 


더블헤더 1차전이 끝나고 쉬는 사이에 이벤트가 시작되고 스티브 달이 헬맷에 군복까지 입은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가져온 디스코 앨범들을 모아 놓고 화형식을 거행합니다. 디스코 파괴의 밤을 열겠다는 말과 함께 쌓아둔 앨범들을 폭파시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구에 관심 없는 디스코 반대자들이 잔뜩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흥분한 관중들이 갑자기 그라운드에 뛰어들었습니다. 선수들은 놀라서 대피를 해야만 했습니다. 



관중들은 애초에 "디스코는 엉터리다(Disco Sucks. 그러나 는 매우 성적인 욕이므로 조심해야 할 단어입니다.)"라는 플래카드까지 제작해서 왔습니다. 붉은 깃발을 흔들며 앨범들을 다시 불태웠고 깨지고 불탄 음반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맞으면 시비가 붙어서 패싸움으로 번집니다. 

디스코 폭파의 날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벤트 해프닝은 무장경찰까지 투입해야 하는 광란의 폭동사태로 번진 후에야 겨우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뛰어들고 난동에 방화까지 한 폭력 군중(뛰어들고 난동에 방화까지 한 폭력 군중 [디스코 파괴의 밤 시카고 야구장 디스코 폭파의 밤 난동 사건] / ⓒ historyrat.wordpress.com)


후에 평론가들은 말했습니다. 디스코 폭파의 밤은 처음부터 난동의 문제점을 가진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경기에 몰린 관중은 백인, 노동자, 남성이 많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섞이면 보수주의에 잘 빠진다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동자가 많다는 점은 좀 놀랍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 중에 의외로 보수표가 많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로 보듯이 보수주의가 심하면 매우 편견이 강해져서 다양성을 부정하고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디스코 파괴의 밤이 남긴 것은 지나친 편견이 사회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물론, 이벤트나 좋아하는 상업주의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해프닝이었다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197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야구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 이후 디스코의 열풍은 이상하게도 식어버렸습니다. 

그 후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의 집권과 더불어 정치, 사회가 매우 보수화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디스코를 대신해서 힙합 문화가 성장했으니, 비주류 문화라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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