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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김정련, 타벽통보법 - 서대문형무소의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

2017. 8. 10.

[김정련, 타벽통보법 - 서대문형무소의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

타벽통보법이란 뜻은 벽을 때려서 말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사용하던 방법인데, 서대문형무소에서 김정련이 타벽통보법을 안창호에게 가르쳐 준 일화는 유명합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만남은 임시정부의 지도급 인사와 항일독립운동 투사의 눈물겨운 사연이 되었습니다. 


[글의 순서]

1.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

2.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

3.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


1930년대 서울 '서대문형무소'의 '김정련'은 평소 존경하던 '도산 안창호'가 바로 옆 감방에 수감되자 가슴이 뛰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비록 일제 치하의 감옥에서의 만남이지만 도산 안창호는 임시정부 창설을 주도하며 민족의 지도자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수용된 곳은 일제 만행으로 악명이 높은 서대문형무소 중에서도 중대 정치범만 따로 수용하는 특별감방이었습니다.


사진: 독립운동가 김정련의 사진. 김정련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타벽통보법을 가르친 일화가 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인연은 타벽통보법이란 것으로 이어졌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사진: 독립운동가 김정련의 사진. 김정련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타벽통보법을 가르친 일화가 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인연은 타벽통보법이란 것으로 이어졌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 / ⓒ mpva.tistory.com)


도산 안창호는 7호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바로 옆 6호에는 김정련이 있었고, 5호에는 '여운형', 8호에는 '오동진'이 있었습니다. 앞서 김정련은 여운형에게 '타벽통보법'을 두 주일이나 걸려 가르쳐 준 뒤 서로 소통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타벽통보법이란 뜻은 '모스부호'처럼 약속된 형식에 맞게 벽을 두들겨서 말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모스부호를 예를 들자면 짧게, 길게를 ···---···처럼 치면 구조신호인 SOS가 됩니다.


사진: 모스부호를 치는 예를 설명하는 사진. 타벽통보법이란 뜻은 모스부호처럼 벽을 치는 회수와 간격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암호이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사진: 모스부호를 치는 예를 설명하는 사진. 타벽통보법이란 뜻은 모스부호처럼 벽을 치는 회수와 간격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암호이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 / ⓒ OpenClipart-Vectors)


국내에서 잡힌 독립투사들은 어느 정도 타벽통보법을 알고 있어서 암호 전달이 되었지만, 해외에서 잡혀 송치된 독립운동가들은 방법을 모르기에 중간에서 암호 전달이 끊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지사들에게는 옆방 동지가 타벽통보법을 알려주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는 워낙 거물급이었기 때문에 감시가 심해서 이를 알려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도산 안창호과 김정련은 시멘트벽을 사이에 두고 그냥 지내야 했습니다.


사진: 도산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와 동성동본 친척이다. 연설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조선을 위임통치 해 달라는 청원을 한 것을 안 후 이승만과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사진: 도산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와 동성동본 친척이다. 연설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조선을 위임통치 해 달라는 청원을 한 것을 안 후 이승만과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타벽통보법 뜻과 도산 안창호] / ⓒ archives.go.kr)


도산 안창호는 우리의 상해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거물급 독립운동가입니다. 해외에 각각 있던 임시정부를 통합하여 세웠는데, 스스로 대통령에 출마할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다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도록 양보하였습니다. 그래서 제1대 임시정부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승만'입니다.

1932년 윤봉길의 거사 때 '김구'가 정부요인들이 대피하도록 연락을 보냈지만 안창호는 연락을 받지 못하고 체포되어 국내로 송치되었습니다. 조사 받을 때 안창호의 인격에 감복하여 삼윤이라는 경부가 최대한 약하게 조서를 써 줘서 극형을 면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


타벽통보법이란 뜻을 풀이하자면, 打甓(타벽)은 벽을 때리는 것이고 通報(통보)는 알려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벽 두드리기"라고 해도 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는 중인지라 걸리면 크게 곤혹스러운 처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감옥생활은 노역을 해야 했는데, 한 달에 두 번 쉬던 어느 일요일에 드디어 김정련이 안창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시멘트 벽 위쪽의 유리창을 톡톡 두들겨 본 것입니다.


사진: 타벽통보법이란 벽을 두드려서 암호를 전달하는 것인데, 당시 서대문형무소의 정치범 감방은 시멘트 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썼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사진: 타벽통보법이란 벽을 두드려서 암호를 전달하는 것인데, 당시 서대문형무소의 정치범 감방은 시멘트 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썼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 / ⓒ Marion Wunder)


높은 시멘트벽이 있고, 채광을 위해 그 위로 유리가 있었으니 그냥 서서는 건드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김정련은 도산 안창호에게 타벽통보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대변통을 밟고 올라갔습니다. 도산 안창호는 뭔가 소리가 나자 의아한 눈초리로 살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김정련은 간수가 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멈추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놀라서 넘어지며 온 몸에 대변통을 뒤집어썼습니다.


사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밀랍인형. 당시 안창호와 김정련이 타벽통보법으로 말을 주고 받는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사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밀랍인형. 당시 안창호와 김정련이 타벽통보법으로 말을 주고 받는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 / ⓒ sscmc.or.kr)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감방을 수상하게 여긴 간수가 감시구멍으로 들여다봤습니다. 김정련은 순간적인 임기응변으로 똥을 퍼서 감시구멍에 뿌리며 미친 척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안창호까지 끌려가서 뼈가 부러지도록 고문을 당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친 연기를 하던 김정련은 폭행을 당한 뒤 끌려 나갔습니다.

정말 미쳤는지 취조관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으면서도 일부러 난리를 피웠다고 합니다. 결국 쇠방울과 수갑까지 차고 격리되었습니다.


사진: 김정련은 도사 안창호에게 타벽통보법을 가르치려다가 위태로운 상황을 만났다고 한다. 미친 척하는 임기응변으로 모면했지만, 쇠구슬과 수갑을 차고 악형을 당해야 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사진: 김정련은 도사 안창호에게 타벽통보법을 가르치려다가 위태로운 상황을 만났다고 한다. 미친 척하는 임기응변으로 모면했지만, 쇠구슬과 수갑을 차고 악형을 당해야 했다. [도산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 / ⓒ wsyperek OpenClipart-Vectors)


고통의 악형을 받았지만 김정련은 속으로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안창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일본군을 속이는데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도산 안창호는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며 격려해 줬고, 간수에게 쇠방울과 수갑을 풀어달라고 계속 간청했습니다.

3주가 지난 후 정신이 돌아온 것으로 겨우 인정받고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면 타벽통보법에 얽힌 안창호와 김정련의 일화를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


김정련의 별명은 '무랍인(無臘人)'입니다. 臘이 "섣달"의 의미이니 마지막 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너무 많이 옥고를 치러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김정련은 안창호와의 타벽통보법이란 일화로 주로 언급되지만,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하고 군자금 조달을 했던 주요 독립운동가입니다.

김정련은 1895년에 태어났습니다. 평양 숭실중학교 교사로 있기도 했는데, 3.1운동 때 붙잡혀서 태형(맞는 형벌) 90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진: 1930년대의 서대문형무소 전경 모습을 찍은 사진. 역시에서 김정련은 타벽통보법이란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안창호 뿐 아니라 여운형에게도 김정련이 가르쳤다고 한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사진: 1930년대의 서대문형무소 전경 모습을 찍은 사진. 역시에서 김정련은 타벽통보법이란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안창호 뿐 아니라 여운형에게도 김정련이 가르쳤다고 한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 / ⓒ sscmc.or.kr)


전라남도로 옮겨서는 군자금 모금운동 중심의 항일운동을 하다가, 중국 상해로 넘어갔습니다. 그 후 대한독립군에서 활동하다가 잡혀서 톈진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20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과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하자는 뜻을 모읍니다.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었다면 독립군도 공군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국내로 잠입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진: 당시 수형기록표의 도산 안창호. 지금의 재소자카드와 비슷한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이떄의 수감생활에 이어 2년 후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가며 건강이 급히 나빠져서 결국 병사하게 된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사진: 당시 수형기록표의 도산 안창호. 지금의 재소자카드와 비슷한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이떄의 수감생활에 이어 2년 후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가며 건강이 급히 나빠져서 결국 병사하게 된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 / ⓒ sscmc.or.kr)


동지들과 국내로 잠입한 김정련은 기금 모으기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우편수송차를 습격해서 돈을 빼앗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우편수송차는 현금 수송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서무대문형무소에서 타벽통보법으로 안창호를 만나게 되는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29년 김정련은 동지들과 망우리에서 우편수송차를 습격했습니다. 돈을 빼앗고 일본인들의 편지만 골라서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1968년 김정련 독립운동가의 영결식 신문기사. 김정련은 건국공로훈장에 추서되었다. 타벽통보법이란 것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김정련, 안창호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사진: 1968년 김정련 독립운동가의 영결식 신문기사. 김정련은 건국공로훈장에 추서되었다. 타벽통보법이란 것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김정련, 안창호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김정련과 서대문형무소] / ⓒ sscmc.or.kr)


일제는 충청도 등의 지방군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추격하였습니다. 강원도 쪽으로 피신을 했지만 추격전이 벌어지고 1주일간이나 항전을 하다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김정련은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여기서 여운형과 안창호에게 타벽통보법을 가르쳐 주게 됩니다.

그가 회고하는 바에 의한 서대문형무소의 현실은 "겨울에는 얼음 창고 같으니 동상에 걸려서 섞은 살을 칼로 베어 내야 했고, 여름엔 한증막 같아서 피부병에 고생해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김정련은 항일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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