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공주(미샤 공주)의 죽음 - 이슬람 명예살인]
여성 인권 탄압의 예로 이슬람의 명예살인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주인 미샤 공주는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이 명예살인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영국의 한 TV에서 이 러브스토리를 다루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문제에 발끈하며 무역보복까지 했었습니다. 열아홉의 나이에 총살당한 미샤 공주의 이야기를 알려 드립니다.
[글의 순서]
1. 이슬람의 명예살인
2.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
3. 미샤 공주와 드라마
이슬람의 명예살인
이슬람에는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성이 관습을 어겼을 때 가족 남성이 살인을 해도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독하다든지, 양성평등에 어긋난 일방적인 처벌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인권의 시각에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 허락 없이 남자를 사귀거나 강간을 당한 것까지도 잘못이라며 살인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 미샤 사우드 공주는 겨우 19세에 사형 당했다. [이슬람의 명예살인] / ⓒ 미샤 알 빈트 파드 알 사우드 공주)
법적으로는 살인죄로 기소되지만 아랍 사회 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슬람에서 명예살인을 하는 가해자는 가장이거나 아들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인데, 가장의 중매결정에 따르지 않고 다른 남자를 사귀는 경우에 많이 발생입니다. 결혼 전에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도 간통에 준하는 취급을 받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다른 종교의 상대와 사귀었을 경우엔 더욱 혹독합니다.
(사진: 강간을 당해도 여자의 잘못이라고 죄를 묻는 상황이 발생하는 현실이다. 미샤 사우드 공주의 경우는 혼전순결의 문제였다. [이슬람의 명예살인] / ⓒ Österreich)
21세의 딸이 유대인과 사귄다고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살해한 경우도 있고, 16세의 어떤 소녀는 기독교인과 사귄다고 아버지가 칼로 11차례나 찔러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14세의 한 소녀는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이유로 자살 강요를 받고 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미샤 공주'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명예살인의 대상이 되었었습니다. 아랍국 중에서 꽤 서구화가 된 국가인데도 말입니다.
(사진: 이슬람의 어떤 여성은 반항하고, 또 어떤 여성은 오히려 옹호하는 보수적 제도가 있다. 그것이 또 어떤 여성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슬람의 명예살인] / ⓒ abeer almshrafi)
그런데 이슬람의 명예살인은 대표적인 예일 뿐, 반드시 아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요르단, 이란, 터키 등의 이슬람 문화권 뿐 아니라 힌두교의 인도, 아프리카의 몇몇 기독교 국가, 유럽의 알바니아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는 사건만 해도 매년 5천여 명 이상이 명예살인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미샤공주의 죽음은 세계에 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
1980년, 영국의 한 TV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문제가 되어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큰 외교적 충돌을 빚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샤 공주 이야기 때문에 영국과의 대형 수입계약이 취소되고 경제적인 보복을 가한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영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에게는 관습을 간섭받는 치욕적인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부친과의 한 때. 이때만해도 아버지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시간이었다.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 / ⓒ 미샤 알 빈트 파드 알 사우드 공주)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샤 공주가 명예살인을 당한 사건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미샤공주는 유럽생활을 동경해서 유학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랍전통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 국왕은 이웃나라 레바논 유학만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베이루트 대학에 다니던 미샤 공주는 '새르'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은 즉각 본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사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는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명예살인의 대상이 되었다.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 / ⓒ Bteekh.com)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19세의 미샤 공주는 본국으로 가지 않고 버텼고,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들을 강제 귀국시키기 위해 요원을 보냈습니다.
이 소식을 안 미샤공주와 새르는 유럽으로 도망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투신자살을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인형을 강물에 던진 후 소문을 냈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공항에서는 사우디에서 보낸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진: 유럽에서는 단순히 러브스토리로 생각하고 TV 다큐드라마로 방영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히 반발했다.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 / ⓒ 미샤 알 빈트 파드 알 사우드 공주)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인 미샤 공주와 레바논의 청년 새르는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새르 때문에 미샤공주가 속아 넘어간 것처럼 하기 위해서 공주에게 사랑을 부정하라고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새르만 죽게 될 것을 알고 있는 미샤 공주는 부정하라는 압박을 거부했습니다.
관습에 따라 미샤공주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이므로 투석형은 면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진: 명예살인은 혼전순결, 불륜 등에도 적용되며 남성도 희생자도 1/8정도 된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미샤 공주)의 죽음 - 이슬람 명예살인] / ⓒ elcinema)
대신 미샤공주에게는 총살형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새르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형 당했습니다. 새르도 참수형이 결정되어 목이 잘려 사형 당했습니다.
아랍의 젊은 남녀는 혼자 살겠다고 사랑을 부정하는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한 죄밖에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샤 공주와 레바논의 새르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이슬람 명예살인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저승까지 함께한 이들의 사랑은 1977년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미샤 공주의 죽음과 드라마
1980년 영국에서 미샤 공주의 러브스토리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서양인들에게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였습니다. 겨우 열아홉의 나이에 사랑 때문에 사형당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이야기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랍인들에게는 가장의 명을 어기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미화시키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명예살인의 전통이 서양인에 의해 무시당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왕족의 일을 남의 나라가 후벼 팠으니 자존심도 상했을 것입니다.
(사진: 1980년 영국에서 방영된 TV다큐드라마 "공주의 죽음". 미샤 사우드 공주 이야기는 외교와 무역보복으로 큰 충돌을 낳았다. [미샤 공주와 드라마] / ⓒ ATV)
이슬람 아랍에는 '샤리아'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샤리아에 의하면 간통 등의 잘못을 할 여인은 공개적으로 돌팔매질을 당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와 잠자리를 한 것도 역시 불륜죄에 처해집니다.
투석형을 당하면 온 몸의 살이 터지고 피가 낭자하게 된 후에나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미샤 공주는 국왕의 조카였기 때문에 투석형을 면했습니다. 총살형은 그나마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이러니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서양인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진: 명예살인 발생국가 빈도수를 지도로 만든 것. 대부분 이슬람문화가 들어간 곳이다. 북미와 남미도 아랍인이 정착하면서 명예살인이 늘어났다. [미샤 공주와 드라마] / ⓒ Sarah Cowal)
영국 드라마 <한 공주의 죽음>(Death of a princess)에서 그려진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샤 사우드 공주의 죽음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아직도 이슬람인들은 명예살인을 "가정 내부의 일"로 치부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명예살인을 옹호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세대마저도 절반 정도가 명예살인을 찬성한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아무리 금지해도 여성인권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화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람은 누군가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