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역사 - 프레지어의 딸기 유래와 한국 딸기의 전래]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의 역사는 국가 간의 치열한 스파이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200년 이전의 딸기들은 식용이 아니라 감상용이었으니, 식용 딸기의 유래는 칠레 스파이로 활동하던 가짜 식물학자 프레지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한국 딸기의 전래는 100년이 넘었지만, 현재는 토종 개발 딸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글의 순서]
신품종 딸기의 유래와 배경
프레지어와 딸기의 역사
우리나라 딸기의 전래
신품종 딸기의 유래와 배경
현재 우리가 먹는 '딸기'들은 큼지막하고 당분이 높아서 먹음직합니다. 그러나 옛날의 딸기들은 조그맣고 떫고 너무 시기도 해서 식용으로 썩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700년대 이전의 유럽에서 딸기의 역사는 관상용이었습니다. 즉, 감상을 위한 식물에 불과했다는 얘기입니다.
1800년대에 들어서며 새 품종이 전래되어 지금처럼 먹기에 알맞은 딸기가 대량 재배되었는데, 이것을 딸기의 유래라고 봅니다.
(사진: 딸기의 역사는 200년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의 딸기는 인간이 재배하지 못하던 품종이었다. [신품종 딸기의 유래와 배경] / ⓒ skeeze)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기의 유래와 전래 과정은 전쟁과 국가 간의 치열한 견제 덕분에 이루어졌고, 딸기의 역사에는 '프레지어'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지어는 프랑스군 중령이며 칠레에 파견되어 스파이 활동을 하던 사람입니다.
프레지어는 신분을 숨기고 식물학자로 행세했습니다. 물론 식물학은 전혀 모르던 사람입니다.
(사진: 18세기 프랑스와 스페인의 관계. 프랑스의 루이14세의 손자가 스페인의 펠리페5세이다. [신품종 딸기의 유래와 배경] / ⓒ www.kiss7.kr)
18세기 초의 스페인 왕은 '펠리페 5세'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왕인 '루이 14세'의 친손자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왕족간의 정략결혼이 흔했기 때문에 유럽 왕실 전체가 마치 친척들 같았습니다.
루이 14세는 스페인의 정세를 항상 감시했습니다. 펠리페 5세가 권력을 독차지해야 스페인을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었기 때문에, 반란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사진: 블로거 boslbee의 종류별 딸기 모음 사진. 딸기는 80종 이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신품종 딸기의 유래와 배경] / ⓒ blog.yes24.com/boslbee)
딸기의 유래에 관련된 프레지어 중령이 칠레에 파견된 것도 루이 14세의 명령에 의해서였습니다. 중남미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가진 스페인이었으므로 식민지의 각 지역에 스파이를 파견한 것입니다.
스파이들은 적의 공격에 잘 대비하는지, 반란의 기미는 없는지, 심지어는 식민지의 총독이 펠리프 5세의 말을 잘 듣는 지까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프레지어와 딸기의 역사
칠레로 간 프랑스 중령 프레지어는 식물학자 행세를 하며 풀과 나무들을 조사하고 다녔습니다. 조사 내용은 수첩에 기록되었는데, 물론 칠레 지역의 정치, 군사적 정보에 대한 암호들이었습니다.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나 덕분에 이것저것도 배우게 되었고, 몇몇 인상 깊은 것들은 메모하고 종자를 채집했습니다. 여기서 유럽 딸기의 유래가 되는 종자를 손에 넣으며 새 품종 딸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진: markgelbart의 야생 딸기의 사진. 현재의 딸기는 1800년대가 되서야 인간이 재배해서 먹을 수 있는 딸기가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다. [프레지어와 딸기의 역사] / ⓒ markgelbart.wordpress.com)
그는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이 정보들을 보냈습니다. 루이 14세는 매우 만족해했고, 1714년 프레지어는 딸기의 유래가 될 야생 종자를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프랑스에 온 후 프레지어는 새로운 딸기를 재배해 보려고 시도하며 야생 딸기에 대한 책도 출판했습니다. 풍토가 달라서인지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딸기 역사가 쓰여지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사진: 딸기를 기르는 모습. 노란색의 열매가 땅에 닿을 듯 늘어져 있다가 빨간 딸기로 시중에 나오게 된다. [프레지어와 딸기의 역사] / ⓒ Maria Godfrida)
그 후 진짜 식물학자와 육종학자들이 현대 딸기의 유래가 될 종자의 재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764년,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야 프레지어의 딸기는 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야생 딸기 자체로는 재배가 불가능하여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산 토종 딸기와 교배시켜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필립 밀러'라는 식물학자에 의해 유럽에도 신품종 딸기의 전래가 완성됩니다.
(사진: 과수원의 딸기 재배 모습. 프레지어와 스파이에 관한 일화로 유명한 것이 딸기이다. [프레지어와 딸기의 역사] / ⓒ Fonthip Ward)
먹어도 맛이 없거나 관상용으로나 키웠던 딸기가 현대의 맛있는 딸기의 역사가 된 것은 1806년 대량 생산까지 가능하게 된 후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딸기는 인간이 재배를 할 수 없었고, 지금의 딸기에 비해 먹을 만한 것이 못 되었을 뿐,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먹어 왔던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식 딸기가 전래되기 전부터 '흰땃 딸기', '뱀딸기' 등이 식용으로 사용되기는 했었습니다.
우리나라 딸기의 전래
최초의 정원 딸기가 프랑스 '브르타뉴 반도'에서 재배된 후, 유럽과 미국, 일본을 거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도 현대식 딸기가 전래되었습니다. 그 후 거의 100년 동안 한국의 딸기는 일본에서 육종된 딸기가 점령했습니다. '육보'나 '장희'로 알려진 품종은 일본에서 한국에 전래된 딸기 품종입니다. 2002년 딸기의 점유율은 일본 품종 86%, 한국 품종 1%였기 때문에 연간 60억 원의 로열티 사용료가 일본으로 빠져나갈 위기에 있었습니다.
(사진: 한국에 전래된 일본 딸기와 우리나라에서 직접 개발한 딸기 품종의 비교 사진. [우리나라 딸기의 전래] / ⓒ chosun.com)
그러나 2005년, 한국산 토종 재배품종이 개발되며 딸기 전래 후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새 딸기 품종인 '설향'이 큰 성공을 거두며 2015년에는 점유율에 90% 근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딸기의 역사에서 새로운 딸기의 유래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딸기는 세계 딸기 수출국 5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프레지어의 딸기는 한국에도 꽃을 피웠습니다.
(사진: 프레지어의 딸기 유래는 우니나라에 들어와서 설향, 매향이라는 명품이 탄생하였다. 과거에는 육보, 장희가 90%를 차지했었다. [우리나라 딸기의 전래] / ⓒ michelmondadori)
그러나 한국 딸기의 역사에는 우려도 있습니다. '매향', '금향' 등의 품종도 개발되었지만, 설향이 너무 많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바나나가 단 하나의 품종이어서 걱정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병충해에 의해 언제 모두 전멸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딸기를 전래해 준 일본의 경우 각 지방마다 다른 품종의 딸기를 개발하여 지방 특산물로 거듭나는 것과 비교됩니다.
(사진: 18세기 스페인의 스파이 프레지어부터 현재의 딸기에 이르기까지 딸기의 역사도 파란만장했다. [우리나라 딸기의 전래] / ⓒ congerdesign)
딸기의 역사는 200년 전과 후로 나뉩니다. 이전에도 딸기가 있었지만, 현대에 세계인이 먹는 품종과는 전혀 달랐다는 얘기입니다. 프레지어가 세계에 새 딸기를 전래 시킨 후, 우리는 크고 달고 병충해에 강한 딸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 토종의 딸기도 나름의 맛은 있지만, 지금은 더 풍요로운 맛을 싸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딸기의 유래 이야기입니다.
[음성으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