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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넬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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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넬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키스세븐지식 2017. 2. 1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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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넬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음악의 천재라면 단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생각나는데, 그에게는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라는 누나가 있습니다. 그녀 역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동생의 그늘에 가려서 빛을 못 본 사람이기도 합니다. 영화 나넬 모차르트는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그려내며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재능을 키우지 못한 안타까움을 주기도 합니다. 



[글의 순서]

1.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

2. 여자라서 포기한 음악

3. 마리아 안나 모자르트 재평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3대 작곡가로 유명한 모차르트에게는 모차르트의 빛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누나에게도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여자는 음악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삶이기도 합니다. 

영화 '나넬 모차르트'를 통해 세상에 다시 알려진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의 원래 이름은 '마리아 안나 발부르가 이그나티아 모차르트'입니다. 매우 긴 이름이 인상적인데, 당시에는 세례명 등이 포함되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동생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되어 있지만 정식 세례명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라고 합니다. 


사진: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의 초상화. 그녀를 주인공으로 영화 '나넬 모차르트'도 만들어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사진: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의 초상화. 그녀를 주인공으로 영화 '나넬 모차르트'도 만들어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 / ⓒ Lorenzoni)


나넬 모차르트는 1751년, 현재 오스트리아 지역(당시 신성로마제국)인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의 이름이 좋았는지 태어나는 딸들에게 모두 '안나'와 '마리아'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7명의 자녀 중 5명이 어릴 때 죽어버려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만 남았습니다. 

'나넬'이라는 이름은 어릴 때의 애칭인데, 독일어로 'Nannerl'로 되어 있어서 '난네를'이라고 발음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마리안네'라고 불렸습니다. 모차르트(Motzhardt)는 독일어로 'Motzen'과 'hart'의 합성어입니다. 


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 포스터. 원래 영화의 이름은 '모차르트의 누나'였다. 영화는 2011년 개봉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 포스터. 원래 영화의 이름은 '모차르트의 누나'였다. 영화는 2011년 개봉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 / ⓒ 마운틴픽쳐스)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는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연주자이며 작곡가이고 성악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피아노포르테(현재의 피아노)도 잘 쳤고, 특히 하프시코드(독일어로 쳄발로. 피아노의 조상 쯤 되는 악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첫 딸의 청아한 목소리가 좋아서 세살 때부터 노래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음악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일곱 살부터 하프시코드를 배웠는데, 볼프강 모차르트는 누나가 음악을 배우는 모습을 아기 때부터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일찍 천재성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어린 시절의 볼프강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초상화. 매우 친한 오누이로 음악의 발전도 함께 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사진: 어린 시절의 볼프강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초상화. 매우 친한 오누이로 음악의 발전도 함께 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 / ⓒ Eusebius Johann Alphen)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5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모차르트가 흥얼거리는 것을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악보에 옮겨 적은 것입니다. 이렇듯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동생 모차르트는 다섯 살이 되자 이미 연주 실력이 누나를 뛰어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확인하려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열 살의 나넬 모차르트는 속상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어린 두 남매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열두 살의 나넬은 유럽에서 가장 피아노를 잘 치는 연주자 중 한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난네를(누나), 볼프강(모차르트), 레오폴트(아버지), 안나 마리아(어머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의 한 장면. 왼쪽부터 난네를(누나), 볼프강(모차르트), 레오폴트(아버지), 안나 마리아(어머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누나 나넬 모차르트] / ⓒ 마운틴픽쳐스)




여자라서 음악을 포기한 나넬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11세의 나넬 모차르트와 6세의 볼프강 모차르트를 데리고 유럽 연주여행을 떠났습니다. 음악천재 남매를 두었으니 자랑할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돈벌이의 욕심도 있었습니다. 

당시 음악가는 중류층 연예인이었으므로, 운 좋게 귀족의 후원을 받는다면 아들의 출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차르트가 단독으로 공연을 한 것은 아니고, 나넬이 피아노를 치고 볼프강이 바이올린을 하는 등의 구성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누나도 피아노 실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소녀 음악가로 불리며 볼프강보다 많은 연주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 어린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는 음악연주 여행을 함께하며 음악신동으로 불렸다. 모차르트가 바이올린, 누나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영화 장면.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사진: 어린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는 음악연주 여행을 함께하며 음악신동으로 불렸다. 모차르트가 바이올린, 누나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영화 장면.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 ⓒ 마운틴픽쳐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어릴 적부터의 천재성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도 성악, 피아노,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작곡에 재능이 많은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나넬 모차르트가 성장할수록 아버지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직업으로 음악을 한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는데다가, 여자가 바이올린을 하는 것에는 더욱 보수적인 사회였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바이올린 연주자였기에 아들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키우고, 딸에게는 피아노로 만족하라며 동생에게 헌신해줄 것을 바랬습니다. 


사진: 책에 소개된 볼프강과 난네를 모차르트의 그림. 어린 시절의 두 남매는 함께 연주를 했는데, 난네를도 피아노르 가장 잘 치는 연주자로 소개되었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사진: 책에 소개된 볼프강과 난네를 모차르트의 그림. 어린 시절의 두 남매는 함께 연주를 했는데, 난네를도 피아노르 가장 잘 치는 연주자로 소개되었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 ⓒ Better World Books)


나넬 모차르트가 18세 되던 해부터는 아버지와 동생만 유럽 연주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넬은 집에 남아 살림을 배우고 집안일을 돌봐야 했습니다. 음악은 취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유럽을 돌며 공부를 하고 엄청난 성장을 하였습니다. 14세 때에 오페라를 작곡하여 공연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동생 모차르트는 음악적인 면에서 급성장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영화 나넬 모차르트는 이때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티브로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사진: 영화 '난네를 모차르트'에서 표현된 두 남매의 끈끈한 가족애의 장면. 난네를의 1751년, 볼프강이 1756년 생이니 다섯 살 차이가 난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사진: 영화 '난네를 모차르트'에서 표현된 두 남매의 끈끈한 가족애의 장면. 난네를의 1751년, 볼프강이 1756년 생이니 다섯 살 차이가 난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 ⓒ 마운틴픽쳐스)


반항적인 볼프강에 비해 순종적인 나넬은 속으로는 속상했겠지만 아버지 말에 따랐습니다. 나넬이 스무 살이 되던 해,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졌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순순히 사랑을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볼프강 모차르트는 누나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강압에 맞서서 사랑을 선택하라고 응원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이 찾아오고 아버지와 동생을 뒷바라지하게 되면서 나넬 모차르트는 서른 살이 넘도록 사랑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 가정의 주부역할을 짊어진 것은 음악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진: 모차르트의 가족 초상화.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세상을 뜨면서 세 사람만 남았다. 당시 대가족제도에 비해 볼프강과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는 단 두 남매 뿐이었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사진: 모차르트의 가족 초상화.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세상을 뜨면서 세 사람만 남았다. 당시 대가족제도에 비해 볼프강과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는 단 두 남매 뿐이었다. [여자라서... 라는 이유,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 ⓒ Johann Nepomuk della Croce)




모차르트가 의지한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유럽을 돌아다니면서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누나에게 편지를 자주 썼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 나넬에게 모차르트는 누나를 위한 여러 곡을 작곡했고, 여자이기 때문에 음악을 그만두게 된 나넬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어떤 편지에서는 "누나가 그렇게 작곡을 잘하는지 몰랐다"며 작곡을 계속하라는 응원을 해 주었습니다. 

볼프강은 나넬 모차르트에게 작곡한 것을 보내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는데, 피아노 협주곡 21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누나가 대신 작곡한 것도 있지 않겠냐는 가설을 펴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사진: 나넬 모차르트도 작곡에 소질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인류는 여자라는 이유로 한 명의 음악가를 잃은 셈이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사진: 나넬 모차르트도 작곡에 소질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인류는 여자라는 이유로 한 명의 음악가를 잃은 셈이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 / ⓒ 마운틴픽쳐스)


나넬 모차르트는 32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들이 상대의 재산을 보고 결혼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나넬도 그렇게 잘츠부르크의 법관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의 결혼을 했고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이혼남이었습니다. 나넬도 3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다가 레오폴트가 손자를 너무 귀여워해서 첫 아이는 할아버지가 길렀습니다. 

그동안 동생 모차르트는 36세로 사망했습니다. 18년의 결혼 생활 후 남편도 사망하고 나넬도 어느 덧 50대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많은 유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으나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했습니다. 


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의 한 장면. 딸을 돈 많은 집안에 시집 보내서 득을 보려는 당시 풍토도 그녀를 묶는 올가미가 되었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사진: 영화 '나넬 모차르트'의 한 장면. 딸을 돈 많은 집안에 시집 보내서 득을 보려는 당시 풍토도 그녀를 묶는 올가미가 되었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 / ⓒ 마운틴픽쳐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는 3대 악처로 불리기도 합니다. 모차르트가 사망한 뒤 그의 이름을 팔며 돈벌이를 했다는 비난도 받습니다. 장모의 흉계에 속아서 결혼했다고 생각한 아버지 레오폴트가 며느리를 싫어했으므로, 나넬과 콘스탄체는 연락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혼한 콘스탄체가 재혼남과 함께 모차르트의 누나를 찾아왔습니다. 재혼남이 모차르트의 자료를 모아서 자서전을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나넬 모차르트는 감동하여 그동안의 모든 편지와 악보를 넘겼습니다.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은 모차르트의 작품과 일화를 남길 수 있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현재 우리가 접하는 많은 양의 모차르트에 대한 정보는 누나인 나넬 모차르트의 존재 덕분이다. 그녀 자체도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사진: 현재 우리가 접하는 많은 양의 모차르트에 대한 정보는 누나인 나넬 모차르트의 존재 덕분이다. 그녀 자체도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재능] / ⓒ 미상)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 모차르트의 말년은 평화로웠습니다. 콘스탄체와 사이가 안 좋아서 수십 년을 본적 없었던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를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하던 진혼곡이 모차르트의 추모식에서 연주되었는데, 그 지휘를 조카 프란츠가 맡게 된 것입니다. 말년의 나넬이 조카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는 말년의 4년을 시각을 잃은 채로 살다가 7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작품을 후세에 남기는데도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이기 때문에 묻혀진 그녀의 아까운 재능은 아직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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