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국극
창극, 국극의 차이, 역사, 남혁 배우, 사라진 이유 등
남성 역할을 포함한 모든 배역을 여성들로만 하던 공연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입니다. 특히 여성국극에서 남성 역을 한 남혁이란 배우는 지금의 아이돌 이상으로 스타 숭배를 받았습니다. 여성 팬덤을 형성했다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향수는 크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여성 국극이 창극과 다른 차이점, 역사와 유명 남혁 배우들에 대해 설명하고,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지까지 추적해 봅니다.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 사이의 대중문화의 역사에 대한 상식이 되길 바랍니다.
여성 국극 - 창극, 국극의 차이, 역사, 남혁 배우, 사라진 이유 등
창극이란? 국극이란?
먼저 국극이 뭔지를 알아봅시다. '국극'이란, 여러명의 소리꾼들이 연기·소리·춤을 하는 '창극' 공연입니다. '판소리'는 거의 혼자 하고, 창극은 뮤지컬처럼 하는 연극 형식입니다. 그럼 '여성국극'이란 무엇인가도 설명합니다. 194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모든 배역을 여성 소리꾼들이 공연하기 시작했던 창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국극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194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고, 195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가, 1960년대 이후 사라져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잠깐 부흥되었다가, 2020년대에 들어서서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1, 2, 3세대의 여성국극 시대가 있었습니다.
최초의 작품이라면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의 《옥중화》를 들 수 있겠고, 그 후 《햇님달님》, 《춘향전》, 《청실홍실》, 《황금대지》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23년에는 웹툰 《정년이》가 화제에 오르면서 과거의 여성국극이 다시 관심을 받았는데, 그 영향으로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여성 국극의 역사와 유래
개화기 이전의 국악계는 오로지 남성 위주였습니다. 여성의 경우 기생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문화 예술인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여성 명창들도 순수 예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1948년에는 여성 국악인들이 여성 국악동호회를 결성했고 《옥중화》라는 작품을 올려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남녀가 어울리기 어려웠던 시기의 동호회였기에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정 규칙도 엄격했던 당시에, 여성국극을 보러 간다고 하면 여자들만 있다는 것 때문에 부모에게 허락을 받기 쉬웠던 것도 여성국극 관객이 확보되는 배경이 됩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도 부산을 중심으로 전쟁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후, 1955년에는 12개의 여성국극단이 활동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춤과 연기를 강화하고 로맨스 줄거리를 보여 주면서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알맞는 대중문화 예술 분야가 되었습니다.
배우 남혁이란 존재
여성국극에서는 여성이 남성 역할을 하는 것을 '남혁'이라고 불렀습니다. 남혁이란, 여성국극에서 여성 배우가 남성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남성적인 매력과 여성의 섬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지금으로 치면 남자아이돌 이상의 팬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혁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남성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걸음걸이, 목소리, 말투 등을 남성처럼 보이도록 연습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 분장을 하기 때문에 미소년 같은 외모가 팬들의 환상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이들은 팬들과 만남을 가지거나 하는 팬서비스로 스타 연예인급 활동을 했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현재의 아이돌 스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기에 여성 팬들의 숭배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선물은 기본이고, 혈서로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팬들은 배우와 가상 결혼식을 올리는 등 지금 팬덤 이상으로 열렬하게 아껶습니다. 남혁은 그들에게 연예계 우상이며 이성 스타로 여겨졌습니다.
여성국극는 왜 사라졌을까
그러나 여성국극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인기를 업고 수많은 극단이 마구 생겼는데, 그로 인해 제대로 훈련된 전문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극단들은 서로 배우들을 빼앗아가기 시작했고, 미숙한 배우로 공연을 하는 극단이 늘어나자 공연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계약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였기에 유명 배우는 쉽게 극단을 이동했습니다. 스타 배우 중심으로 돈을 벌던 극단은 배우가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 수익 기반을 잃기도 합니다. 더구나 1960년대 이후 영화와 텔레비전이 보편화되면서, 서구 지향적인 산업화, 대규모 시설에 비해 한정된 공연 환경은 시대에서 뒤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시대적 변화에 의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창극에 대한 수요가 있긴 했으나, 정부가 1962년 국립창극단을 설립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애초에 열악한 환경 때문에 남성 역할을 여성 배우가 맡았던 것이었기에, 남녀 배우가 모두 나오는 창극단이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유명 여성 국극 배우들
중국에서는 남성들만 공연하는 '경극'과 '월극' 극단이 있고, 일본은 미혼 여성들만 공연하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여성 국극'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아이돌급 인기글 끈 남혁 배우들과 여성 배우들은 임춘앵, 박녹주, 조금앵, 조영숙, 이옥천, 그리고 탤런트로도 활동한 김을동도 있었습니다.
여성국극의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국극 배우들은 국악계로 돌아가거나 연예계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박녹주, 이옥천 등은 판소리 명창으로 공헌했고, 임춘앵, 조영숙, 조금앵, 이소자 등은 여성국극 보존과 한국 전통 공연 예술과 대중화 보급에 공헌했습니다. 웹툰과 드라마 《정년이》는 조금앵, 조영숙 등을 모티브로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현재의 여성 국극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레전드 춘향전》, 《조 도깨비 영숙》 같은 공연이 있을 정도로 아직도 여성 국극에 대한 향수는 남아 있습니다. 여성 국극은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저 여성끼리 공연을 한 특이한 문화가 아니라, 그 나름의 장르적 특징과 전통적 가치를 가진 공연예술이 되었습니다.
함께 볼 심심풀이 지식거리
바로크 오페라를 이끈 카스트라토의 역사와 카운터테너의 팔세토 가성 창법
바로크 오페라를 이끈 카스트라토의 역사와 카운터테너의 팔세토 가성 창법
[바로크 오페라를 이끈 카스트라토의 역사와 카운터테너의 팔세토 가성 창법]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를 부르는 남자들 성악가의 음역은 대체로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알토), 테너,
kiss7.tistory.com
이야기꾼 전기수 - 조선시대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가
[이야기꾼 전기수 - 조선시대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가] 지금은 TV와 스마트폰 등으로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도 있었
kiss7.tistory.com
[ 여성 국극 - 창극, 국극의 차이, 역사, 남혁 배우, 사라진 이유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