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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실화의 진실과 생존자 - 세계문화유산 논란 하시마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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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실화의 진실과 생존자 - 세계문화유산 논란 하시마섬

키스세븐지식 2017. 7. 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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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실화의 진실과 생존자 - 세계문화유산 논란 하시마섬]

영화 군함도는 1940년대 일제말기를 배경으로 하시마섬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군함도 실화를 살펴보면 생존자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처참합니다. 이글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유네스코 논란을 일으킨 하시마섬에서 있었던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를 수집한 것입니다. 일본이 숨기려는 군함도의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글의 순서]

1.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

2.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3.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엮인 글 링크]

일본 군함도 실화 위치 - 하시마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


일본은 전국의 23개 지역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문제는 그 중 7개 군데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잔악한 강제징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영화 <군함도> 실화가 된 하시마섬의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아시아 산업발달을 위한 혹독한 노동이 있긴 했어도 절대로 강제징용을 한 것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 왔습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허락하며 조건부로 조선인의 피해도 설명할 것을 권고했고 일본도 약속했으나, 아직도 일본 '하시마섬'의 관광안내에서는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사진: 영화 군함도의 포스터. 왼쪽이 한국 버전이고, 오른쪽이 해외버전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며, 일본이 하시마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사진: 영화 군함도의 포스터. 왼쪽이 한국 버전이고, 오른쪽이 해외버전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며, 일본이 하시마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 / ⓒ 영화 군함도)


참혹한 노동환경에서 살아난 '군함도' 생존자들은 하시마섬을 지옥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군함도의 위치는 일본 서남쪽에 있으며 축구장 2개 크기의 작은 섬입니다. 

19세기 이후 20세기 초에 개발된 해저탄광이지만 1940년 이후 강제징용자에 대한 학대는 극에 달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노동자 위주였고 9층 높이의 고층 주택에서 높은 임금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조선인들이 납치되듯 끌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1940년대이며 영화 군함도의 실화가 되는 시기입니다. 


사진: 하시마섬(군함도)의 모습. 해저 탄광이 발견된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거쳐 여러 차례 콘크리트 공사를 통하여 만들어진 모습이다. 군함도의 뜻과 어원은 마치 군함을 닮았다는 것에 있고 하시마의 뜻은 끝에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사진: 하시마섬(군함도)의 모습. 해저 탄광이 발견된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거쳐 여러 차례 콘크리트 공사를 통하여 만들어진 모습이다. 군함도의 뜻과 어원은 마치 군함을 닮았다는 것에 있고 하시마의 뜻은 끝에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 / ⓒ kntrty)


일본 정부는 감추고 있지만 영화 군함도의 진실은 생존자의 증언과 기록으로 확실히 증명됩니다.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지어진 하시마섬은 해저탄광이 발견되어 개발된 곳입니다. 

오직 석탄을 캐기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이며 1943년 ~ 1945년 일제 말기에는 조선인들이 70%까지 늘어났습니다. 10m의 콘크리트 담으로 둘러싸인 군함도에 끌려온 조선인들은 고층 주택에 거주하는 일본 노동자와 달리 좁은 목조건물에 수용되었습니다. 겨우 3평정도의 방에 8명 ~ 15명이 감옥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사진: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위험한 중노동의 댓가로 주는 것은 비료로 쓰려던 콩깻묵이 섞인 잡곡이었다. 초기의 일본인 광부들에 대한 대우는 괜찮았으나, 조선인은 노예보다 못한 학대를 받았다. 결국 1940년대에는 조선인 비율이 70%를 넘어섰고, 위험하고 혹독한 자리에 배치되었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사진: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위험한 중노동의 댓가로 주는 것은 비료로 쓰려던 콩깻묵이 섞인 잡곡이었다. 초기의 일본인 광부들에 대한 대우는 괜찮았으나, 조선인은 노예보다 못한 학대를 받았다. 결국 1940년대에는 조선인 비율이 70%를 넘어섰고, 위험하고 혹독한 자리에 배치되었다. [영화 군함도 실화 하시마섬] / ⓒ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 실화를 알아보면 조선인들은 하루 12시간 교대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자원 사정이 급박해져서 강제로 하루 16시간 중노동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한 후 나오는 식사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깻묵에 잡곡을 섞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비료"로 사용될 것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식사도 주지 않아서 굶어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밤이 되면 더위와 벌레가 가득한 좁은 숙소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야 했던 것이 군함도의 진실입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군함도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하시마섬의 해저 탄광은 평균기온이 30도 ~ 40도에 이르며 갱도 막장은 60도에 가까울 때도 있습니다. 60도의 경사로 지하 1000m 가까이 파 들어간 해저 탄광은 갱도막장에 기계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보내졌습니다. 

일본 노동자는 편하게 채굴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고, 조선인들은 갱도를 가득 메운 가스와 95%에 육박하는 습도의 찌는 더위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더구나 염분 섞인 지하수가 유입되므로 고질적인 피부병에 고생을 해야 했던 것이 영화 군함도 실화입니다. 


사진: 군함도의 진실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 지하로 깊이 들어간 갱도 막장은 암석이 떨어지고 피부병에 고생하는 환경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모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군함도 생존자들은 아파도 쉬지 못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사진: 군함도의 진실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 지하로 깊이 들어간 갱도 막장은 암석이 떨어지고 피부병에 고생하는 환경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모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군함도 생존자들은 아파도 쉬지 못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 ⓒ 영화 군함도)


전쟁 원료로 쓰기 위해 더 위험한 곳까지 채굴을 해야 했고, 그곳은 언제나 끌려간 조선인들의 몫이었습니다. 군함도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갑자기 무너지는 암석들에 의해 몸은 성할 날이 없었고,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고 몸저 누우면 일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폭행을 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탄광인 야마구치 현 우베시의 '조세이탄광'의 경우를 보면, 대규모 수몰사고가 발생했을 때 숨진 180여명의 인부 중 136명이 한국인 희생자였을 정도로 대우가 참혹했습니다. 하시마섬(군함도)의 진실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진: 초기 하시마섬(군함도)의 일본인 거주지 모습. 영화관, 학교, 9층 주택 등 기반 시설이 갖춰진 계획도시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북쪽 끝의 좁은 목조건물에서 더위, 벌레, 병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사진: 초기 하시마섬(군함도)의 일본인 거주지 모습. 영화관, 학교, 9층 주택 등 기반 시설이 갖춰진 계획도시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북쪽 끝의 좁은 목조건물에서 더위, 벌레, 병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 ⓒ omura-highschool.net)


지하 갱도 막장에서 더위와 피부병, 부상에 죽지 못해 살아갔던 조선인들은 겨우 60cm 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서 누운 채로 석탄을 캐야했습니다.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했지만 뒤쫓아 온 일본인 감독자에게 잡혀 와서 또 다시 폭행을 당했습니다.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험한 파도에 4km나 되는 거리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를 본 '나가사키' 주민들이 불쌍하다고 해변에 위령비를 세워 줄 정도로 영화 군함도 실화는 참혹했습니다. 


사진: EBS에 소개된 당시 군함도(하시마섬)의 광부들 모습. 군함도 실화에서는 조선인들이 험한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눕다시피 작업을 해야 하는 혹독한 장소는 대부분 조선인의 몫이다. 탈출을 하다가 잡히면 또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군함도 생존자들은 지옥섬이라고 불렀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사진: EBS에 소개된 당시 군함도(하시마섬)의 광부들 모습. 군함도 실화에서는 조선인들이 험한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눕다시피 작업을 해야 하는 혹독한 장소는 대부분 조선인의 몫이다. 탈출을 하다가 잡히면 또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군함도 생존자들은 지옥섬이라고 불렀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의 진실] / ⓒ EBS)


일본 군함도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개인 소유한 해저탄광입니다. 끌려간 조선인들은 노동자 관계였으므로 당연히 임금을 받아야 했지만 10엔 정도의 터무니없는 생활비만 지급되었습니다. 미쓰비시 회사는 고향에 보내 주겠다며 저축을 강요했는데, 조선의 가족 중에 돈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 밝혀져야 할 군함도의 진실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조선 여자에 대한 기록인데, 강제로 하시마섬에 끌려와 "작부"로 일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영화 군함도의 실화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큰 피해가 군함도의 진실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발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군함도 생존자들에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일본인 노동자들이 다 도망을 간 후, 석탄 생산이 필요하다는 일본의 요청에 따라 맥아더 장군은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지시키고 계속 석탄 채굴을 하도록 한 것이 또 하나의 군함도 실화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일본 패망 다음 날, 하시마섬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파업을 하며 말을 잘 안 들었으므로 몰살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습니다. 군함도의 진실은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진: 일본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후 관광사업으로 14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군함도의 모습. 하시마섬의 북쪽은 조선인들이 거쳐했는데, 현재 관광코스에서는 이런 부분은 보여주지 않고 남쪽의 탄광과 선착장 시설만 견학코스로 하고 있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사진: 일본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후 관광사업으로 14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군함도의 모습. 하시마섬의 북쪽은 조선인들이 거쳐했는데, 현재 관광코스에서는 이런 부분은 보여주지 않고 남쪽의 탄광과 선착장 시설만 견학코스로 하고 있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 ⓒ bjsoyo.com / 편집 www.kiss7.kr)


1945년 말까지 해저탄광에서 일하던 군함도의 생존자들에게는 또 다시 시련이 닥쳤습니다. 도시를 청소해야 한다며 나가사키로 끌려간 것입니다. 

나가사키는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3만 명이 즉사하고 7만 명이 후유증으로 죽은 곳입니다. 인구의 45%가 원폭의 사상자가 된 방사능의 도시를 정비하기 위해 군함도의 생존자들이 투입된 것입니다. 영화 군함도 실화는 마지막까지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런 곳을 산업유산이라며 군함도의 진실을 숨기고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사진: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폐허가 된 나가사키 시의 모습. 군함도의 생존자들은 나가사키로 파견되어 청소를 했다. 방사능이 잔뜩 퍼져 있는 나가사키는 하시마섬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에게 또 하나의 군함도의 진실이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사진: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폐허가 된 나가사키 시의 모습. 군함도의 생존자들은 나가사키로 파견되어 청소를 했다. 방사능이 잔뜩 퍼져 있는 나가사키는 하시마섬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에게 또 하나의 군함도의 진실이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 ⓒ Lynn P. Walker, Jr)


영화 군함도의 실화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을 보면, 처음에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해서 조선인을 모집하다가, 1940년대에는 황국식민 동원령이라며 강제징집을 하고, 나중에는 포로라면서 납치해서 끌고 갔다고 합니다. 처음엔 일본인 광부 위주였다가 점차 70%에 가까이 늘었던 군함도의 조선인 피해자들은 1945년엔 90%까지 이르렀습니다. 

지옥섬같은 환경에서 매질과 폭행으로 노예처럼 부려먹다가,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원자폭탄에 오염된 방사능지역을 청소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하시마섬(군함도)의 생존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습니다. 


사진: KBS에 출연하여 당시 하시마섬의 만행을 증언하는 군함도 생존자. 군함도 실화는 너무나 참혹해서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사진: KBS에 출연하여 당시 하시마섬의 만행을 증언하는 군함도 생존자. 군함도 실화는 너무나 참혹해서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 ⓒ KBS)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군함도의 광산은 석유 사용이 석탄을 앞지르면서 1974년 폐광을 하게 됩니다. 군함도에서 죽은 사람들의 유골은 섬 내의 신사에 묻혀 있었는데, 폐광과 함께 인근 다카시마 센닌즈카로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골함에 적힌 이름과 사망이유 등의 위패를 다 떼어 내 버리고 사찰 근처에 그냥 매장해버렸습니다. 군함도의 생존자도 거의 사라져 가는 지금, 군함도에서 누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군함도의 진실을 모르게 된 것입니다. 죽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최악 중에 또 최악인 만행을 가했습니다. 공양비를 하나 세워주고는 도리를 다 했다는 게 그들의 입장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일본 여행 사이트와 하시마섬 세계문화유산 안내판. 어디에도 유네스코와 약속한 군함도 희생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직도 일본은 강제징용을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사진: 일본 여행 사이트와 하시마섬 세계문화유산 안내판. 어디에도 유네스코와 약속한 군함도 희생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직도 일본은 강제징용을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군함도 생존자의 실화] / ⓒ 편집 www.kiss7.kr)


그러고도 일본은 '메이지일본 산업혁명유산'이라며 하시마섬을 유네스코에 등재했습니다. 영화 군함도 실화는 영화보다도 더 원통한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세계문화유산 대상을 1868년부터 1912년까지의 메이지시대에 국한해서 등재한 것도, 이러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가 의심되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일본은 지금 140억 원 이상의 관광수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군함도의 진실은 과거가 아닙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일본이 유네스코에 약속했던 강제징용의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미래형입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우리들이 그들을 잊고 사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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