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천둥벌거숭이, 드래곤플라이의 어원은?]
여름이라고 하면 매미와 함께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곤충으로 잠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잠자리라고 하지만 천둥벌거숭이라는 말도 있고, 영어로는 드래곤플라이(dragonfly)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돈보(とんぼ), 중국어로 친틴(蜻蜓:청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천둥벌거숭이, 영어에서 드래곤플라이라고 하는 것은 재미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잠자리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천둥벌거숭이의 어원은 잠자리
한국어에 천둥벌거숭이라는 말의 어원도 재미있습니다.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사람을 뜻하는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무서운 천둥이 치는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비유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벌거숭이는 '발가벗은'과는 어원적 의미가 다르다고 합니다. 사전에서도 벌거숭이는 발가벗다와 잠자리라는 두 가지 어원으로 풀이합니다.
벌거숭이는 붉다라는 의미를 가진 "벌겋다"에서 온 것으로 붉은잠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둥벌거숭이의 어원은 천둥치는 날씨에 돌아다니는 붉은잠자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어원를 쫓아가 본 잠자리에 대한 인간의 생각들)
잠자리를 뜻하는 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천둥벌거숭이, 잠찌, 짱아, 촐비, 잰잘나비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방언으로는 자마리(경기도,전라북도), 참자리, 나마리(충청도), 잼자리(함경도)라고도 합니다.
자리라는 단어로만 사용되기도 하는데, 조선 문헌에는 거의 "잔자리"로 나온다고 합니다.
자리, 마리 등은 날개와 연결되는 말이고, 앞에 파르르 흔들리는 뜻의 잔이 붙은 것이라는 풀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자리는 의성어 또는 의태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날개를 파르르 떨며 날아다닌다는 뜻이 됩니다.
(잠자리의 교미 장면 - 위쪽이 숫컷, 아래쪽이 암컷. 마치 하트같다)
잠자리는 약 3억년 전부터 있었던 곤충으로 "메가네우라"라는 종은 64cm도 넘는 크기를 가졌었다고 합니다. 큰 종의 잠자리는 모기를 수백마리씩 잡아 먹기도 하는데, 주 먹이는 모기, 나비, 파리 등 작은 곤충류입니다. 장수잠자리는 말벌을 잡아먹기도 하고 어떤 종류는 자신들끼리 잡아 먹기도 합니다. 자연계에 5000종 이상이 존재하며 한국에는 120여종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숫컷이 배 끝의 집게로 암컷의 머리채를 붙잡고 돌아다닙니다. 그 동안 수컷이 자기 가슴에 미리 붙여 놓은 정자 덩어리에 암컷이 생식기를 갖다대어 정자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짝짓기를 합니다.
(붉은잠자리는 천둥벌거숭이의 어원)
드래건플라이는 용파리라는 뜻
영어에서는 왜 잠자리를 드래곤플라이(발음규정으로는 드래건플라이임)라고 하게 되었을까요? 잠자리가 용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용(dragon) 뒤에 붙은 플라이(fly)는 "날다"라는 의미 외에도 "파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용이 날다'가 아니라 "용파리"가 되겠습니다. 무시무시한 용의 이미지에 파리를 붙이다니, 좀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리는 일반적인 파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큰 범위의 곤충류를 말합니다.
(서양에서 용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어에서 드래곤의 어원인 drakon, draca 등은 큰 뱀을 뜻하며 drak는 '무섭게 노려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잠자리를 드래곤플라이라고 부르게 된 설명 글들을 보면 잠자리의 강해 보이는 턱과 거대한 눈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모습을 확대해 보면 분명 무섭게 생기긴 했습니다.
그런데 꼬리도 용의 느낌을 줍니다. 길고 마디가 있는 꼬리는 어떨 때는 휘어서 둥글게 말리기도 하니 파리 같은 얇은 날개가 달린 작은 용으로 불릴만 합니다.
(특이한 모양의 뱀잠자리. 날개가 뒤로 접히는 특이한 종)
학술적 분류에서 잠자리는 곤충강-잠자리목에 해당하는데 그 학문명이 오도나타(Odonata)입니다. 그런데 Odon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빨"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공룡영화에 나오는 트오로돈(Troodon)의 tro가 상처라는 뜻이고 odon이 이빨이라는 뜻이니, 잠자리와 이빨, 용은 서양의 개념에서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미국 북서부에서는 "악마의 바늘"이라고 불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잠자리의 종류는 5천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잠자리
중국에서 말하는 청정, 또는 청령은 잠자리 청(蜻)자와 잠자리 령(蛉)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뱀 사(蛇)자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으니, 중국인들도 서양인들처럼 잠자리를 뱀이나 용과 비슷하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한편 중국에서 발견되어 화제였던 초대형 뱀잠자리는 날개를 바퀴벌레처럼 뒤로 접을 수 있고 입이 집게벌레 같은데 손바닥보다도 컸습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초대형 잠자리. 출처: 중국 웹사이트 캡처)
일본어에서 돈보(とんぼ, トンボ)는 학창시절 많이 사용하던 tombo라는 지우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식으로는 잠자리표 지우개가 되겠습니다.
본래는 아키츠(あきつ)가 고어라고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돈보(とんぼ)는 とんぼがえり의 준말이라고 나옵니다. とんぼがえり는 "재주넘다", "공중제비"를 뜻하는 것이니, 일본에서는 잠자리를 의태어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충청도 방언에서 파생된 말이 아닐까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검색엔진에 나오는 말벌을 잡아 먹는 잠자리의 모습 / 구글 이미지검색 캡처)
참고로 무엇이든 잡아먹는 사마귀, 장수잠자리는 버마재비, 범털이로도 불리는데, 여기서 털이는 잠자리의 방언인 철기와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범은 호랑이를 말하므로 사마귀와 장수잠자리는 곤충계의 호랑이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대했던 잠자리에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어원인 천둥벌거숭이, 용 등의 이야기가 얽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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