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유화, 수채화... 한자말입니다. 한자로 油畵, 水彩畵입니다.
우리 말로는 어떻게 될까요? 기름그림, 물로 칠한 그림입니다.
중국인들은 어떤 의미로 읽을까요? 우리처럼 특별한 의미일까요? 그냥 기름 그림, 물칠한 그림으로 읽습니다.
영어로는 어떤가 봅시다. oil painting, watercolors입니다. 역시 기름 그림, 물색깔 정도입니다.
왜 우리만 그림을 말하기 위해 다시 한자의 뜻을 알아야 할까요?
한국은 어린 학생들이 넘치는 교육의 양을 감당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에, 용어의 배움에 있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입니다.
수학, 영어 등 학문 그 자체로도 버거운 학생들이 처음부터 개념화되기 어려운 방법을 통해서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한 예만 보더라도 수없이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이젠 미술을 떠나 다른 것도 살펴봅시다.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해를 구하여라"
해는 한자말로 풀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풀어라"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럼 중국인은 저걸 뭐라고 이해할까요? 그냥 "풀어라"입니다. 중국에서 저 말이 학문적 가치가 높은 말일까요?
우리 학생들은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해서 다시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엔 영어를 살펴봅시다.
재귀대명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reflexive pronoun라고 합니다. 대충 반사한다는 의미로 씁니다. 즉, 자신대명사인 것입니다.
한자로는 무슨 뜻일까요? 再歸代名詞입니다. 다시 再자와 돌아올 歸자입니다. 결국은 반사대명사입니다. 중국인들은 저 말을 아주 학문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할까요? 그냥 되돌아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한자를 공부한 다음에 다시 영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중국인에게는 별로 가치 높은 말도 아닌데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른바 지식층이라는 사람들이 외부정보를 가지고 올 때 저렇게 해 놓는 것입니다. 한자말을 쓰면 고고하고 특별한 거라는 생각을 우리 할아버지들, 우리 조상들이 해왔고 심리를 파고 보자면 일종의 "잘난 척"인 것입니다.
지식층이 우매한 짓을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리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홈쇼핑 방송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옷 하나 파는데 "러블리한 라인과 럭셔리한 컬러를 매치시킨 스커트인데요, 베이비블루톤의 스마트한 콤비를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예요"라는 말을 씁니다.
중학생도 아는 온갖 영어를 다 끌어다가 있는 체합니다. 사실, 이렇게 해야 대중에게 먹히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겠지요. 대중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수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말을 사랑하자? 이런 말이 아닙니다. 필요한 차용이냐, 불필요한 차용이냐를 논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차용의 오염과 혼탁은 이른바 잘난 척하는 자들의 그릇된 심보에서 나오는 것임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국제화되는 세상에서 말의 차용이 "어쩔수 없는" 것인지 "잘난 척하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조상들의 그릇된 심보 때문에 우리 세대는 쉬운 학문개념을 어렵게 배워왔습니다. 그러니까 공부에 재미를 가질 수 있는 아이들마저 개념을 이해 못하고 공부를 포기하는 상황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계속 이런다면 우리 후손은 또 우리 세대를 욕하며 수학이나 사회를 배우기 위해 영어의 뜻을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쉽게 가도 될 길을 빙빙 돌아서 가는 조선시대의 구태의연한 양반들 심보를 21세기의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