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 유우성 간첩사건 정리]
1959년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 사건을 간첩이라고 조작해서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을 간첩이라고 조작해서 사형에 처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2010년대에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간첩 조작 사건은 또 일어났습니다. 2013년의 일명 유우성 간첩사건 정리(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정리)를 시간 순으로 했습니다.
[엮인 글]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시작 정리
유우성 간첩사건의 주인공은 2004년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아니고, 화교로서 북한에 살던 사람입니다. 남한에 정학한 그는 서울시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들어가서 탈북자 관리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1월, 그는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탈북자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간첩행위가 이유였습니다.
(유코리아뉴스 [유우성 간첩사건 정리] / ⓒ ukoreanews.com)
자제력 잃은 언론의 자극적 보도, 그들의 진짜 목적은?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0
국정원은 북한의 인사와 접촉하기 위해 중국을 오갔다는 입출입 증거와 그를 북한에서 봤다는 증인, 그리고 동생마저 오빠가 북한을 오갔다는 증언을 한 것이 증거라고 밝혔습니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한 명의 간첩을 잡아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판결되면서 일이 커집니다.
(YTN 뉴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정리] / ⓒ ytn.co.kr)
유우성 간첩 사건·증거 조작 정리
https://www.ytn.co.kr/_ln/0103_201404151005593730
그의 변호를 맞은 민변에서 그의 중국 입출입에 대한 진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여, 국정원이 중국에서 줬다며 제출한 증거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유우성 간첩사건을 정리할 때, 국정원의 불법행위는 이것이 핵심입니다. 거기다가 중국 영사관도 위조범 검거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유우성 간첩사건의 진실 정리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내용을 정리하면, 국정원은 중국 측의 공문서를 조작했을 뿐만 아니라 증거 자료의 공증마저도 조작을 했고, 심지어 민변이 제출한 자료도 조작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유우성 간첩사건의 증인인 동생과 여러 인물에게 국정원이 협박, 회유를 했고, 진술서도 국정원이 써온 것을 베껴 쓰게 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민변 등의 접견을 제한하는 등의 위법을 저질렀습니다.
(민중의 소리 [유우성 간첩사건 정리] / ⓒ vop.co.kr)
‘탈북간첩’ 여동생 “국정원이 알려준 대로 탈북자 명단 진술”
http://www.vop.co.kr/A00000627863.html
그러나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사건의 본질은 간첩이라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물타기를 했습니다. 증거가 조작됐어도 간첩이 맞다는 주장을 계속 보도했습니다.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도 유우성을 찢어 죽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했습니다. 한편, 거짓 증거에 협조하고 괴로워하던 조선족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은 남재준이었고, 법무부 장관은 황교안이었습니다. 국정원은 그 이전부터 여론 조작과 정치개입을 해왔기 때문에 국민의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조작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간첩을 잡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간첩 혐의는 증거를 통해 증명되는 것인데, 증거가 조작되었어도 간첩은 맞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오마이뉴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정리] / ⓒ ohmynews.com)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중동은 어떻게 죽였나
하지만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은 증거가 계속 드러났습니다. 증언을 한 증인에게 국정원이 압박하는 녹취록이 폭로되고, 출입국 기록의 조작도 중국에서 직접 확인하여 거짓이 명백해졌으며, 증인들도 거짓진술임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수사에 불만을 가진 국정원 과장은 자살을 기도하며 민변과 종북세력이 국정원을 흔든다고 주장했고, 뉴스타파를 상대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정원이 법정 소송을 걸기도 했습니다.
최종 결론
결국 2014년 2심에서도 무죄가 판결 나며 유우성 간첩사건이 정리되었습니다. 2심에서는 여동생의 증언마저도 협박에 의한 조작임도 이유로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화교임을 숨기고 탈북자 행세를 했으므로 사기죄 등에는 유죄가 났습니다.(처음에는 없던 혐의인데 갑자기 검찰이 공소장에 추가함) 그리고 11월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 관여한 자들에게 유죄판결이 났습니다.
(경향신문 [유우성 간첩사건 정리] / ⓒ khan.co.kr)
증거조작으로 얼룩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404251202131
2015년엔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었고, 2019년엔 검사들이 조작을 알고도 넘어간 것이라며 과거사위의 사과 권고가 있었습니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정리하자면, 당시 서울시장인 박원순을 빨갱이로 몰려고 보수 기관과 정치인, 언론이 공격을 했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우성이 채용될 때는 현. 자유한국당의 오세훈이 시장일 때였습니다.
(한겨레 신문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정리] / ⓒ hani.co.kr)
검찰 과거사위 “검찰이 국정원 인권침해·증거조작 의도적으로 방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1341.html
유우성 간첩사건을 정리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권력기관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충성할 때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권력기관과 보수정치권이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국민의 인식이 변화되어서 철저한 감시를 할 수 있을 때에만 방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