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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고조선 건국사의 단군신화 현대적으로 읽기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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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고조선 건국사의 단군신화 현대적으로 읽기 2

키스세븐지식 2019. 1. 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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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고조선 건국사의 단군신화 현대적으로 읽기 2] 

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옵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허무맹랑한 전설일 뿐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부족의 상징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구전되는 이야기들은 상징성 있는 표현이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특징을 생각하면, 곰족과 범족 이야기는 새 문명에 흡수되는 토착 부족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 고조선 건국사의 단군신화 읽기 2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환웅)에게 빌기를, “원컨대 (모습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 과거에 실증파들이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여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원래 그 지역에 살던 미개한 곰족과 범족이 문명국에 합류하기를 원했다고 본다면 단군신화도 실제 역사로서 매끄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뜻은 변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진: 민족 시작의 상징 전시물. 천부인과 청동기 문화를 보여준다(민족 시작의 상징 전시물. 천부인과 청동기 문화를 보여준다 [고조선 건국사 단군신화 삼국유사] / ⓒ Vuong Tri Binh)


이에 한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쑥과 마늘은 인내심을 의미하며, 부족으로 합류하는 조건으로 야생에서 마구 살던 토착민들에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곰과 호랑이가 상징하는 것은 야생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육식을 하던 부족입니다. 환웅은 이들에게 채식으로 바꾸고 계획과 목적을 생각하며 살도록 요구했던 것입니다. 


사진: 민족 융합의 곰족상. 단국대에 동상이 있다(민족 융합의 곰족상. 단국대에 동상이 있다 [단군신화 삼국유사 고조선 건국사] / ⓒ HanKooKin)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기하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전해지고.... 

: 우리말의 고어에서 곰은 땅을 상징합니다. 곰족이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땅을 기반으로 하는 토착민으로서 문명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농경문화로의 발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범족은 호전적이고 문명생활을 견디지 못해서 퇴출당합니다. 농경문화와 맞지 않은 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 문명 부족에 참여하긴 했으나 바로 융합되지 못하는 곰족을 비로소 흡수합니다. 토착 민족이 그냥 문명 시민이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후손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웅이 동등하게 그들을 대하면서 드디어 민족적 결합이 생겼고, 그 결실이 단군왕검이라는 것입니다. 


사진: 북한이 만들어 놓은 단군의 무덤. 단군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북한이 만들어 놓은 단군의 무덤. 단군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단군신화 삼국유사 고조선 건국사] / ⓒ Laika ac)


단군왕검(唐高, 요[堯])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 이주해 온 부족과 토착 부족의 결합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민족의 시작이 더욱 발전된 문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단, 지금의 평양성과 위치가 같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평양의 어원은 "넓은 평야"이고 순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므로, 수천 년 전의 넓은 평야는 다른 곳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단군상. 단군왕검.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역사다(단군상. 단군왕검.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역사다 [단군신화 고조선 건국사 삼국유사] / ⓒ YunHo LEE)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5백 년이었다. 

: 아사달 어원은 "해가 뜨는 곳, 넓은 곳"이라는 것이므로 역시 평양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이미 환웅이 내려와서 나라를 세우고 단군이 독립하여 다시 나라를 세웠으니, 그 처음이 어디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 이전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 조선이 세워진 후에도 문명국이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북한의 안내문. 단군 시작을 기원전 3천년부터라고 보고 있고, 후조선과 만조선으로 분류한다(북한의 안내문. 단군 시작을 기원전 3천년부터라고 보고 있고, 후조선과 만조선으로 분류한다 [단군신화 고조선 건국사 삼국유사] / ⓒ (stephan))


주(周) 나라의 호왕(虎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9백8세이었다 한다. 

: 무왕의 기자조선설은 후대의 역사가가 오해하여 잘못 적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말만 주나라일 뿐 주나라 유물이나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군왕검의 나이도 한 사람이 1908년을 산 것이 아니라, 대를 이은 단군 왕조가 그만큼을 오래 다스렸다는 얘기로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건국 신화의 교훈은 미래형이다 


물론 위와 같은 견해는 많은 반론이 있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단지 신화라고만 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현실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과거의 역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역시 그러합니다. 고대에는 모든 시와 이야기가 모두 그랬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1281년의 삼국유사. 이 외에도 단군신화가 적힌 역사서가 또 있다(1281년의 삼국유사. 이 외에도 단군신화가 적힌 역사서가 또 있다 [고조선 건국사 단군신화 삼국유사] / ⓒ Salamander724)


그러므로 겉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려고 해아 옳은 것입니다. 단군신화 건국 이야기를 표현 그대로 우화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에서 얻는 교훈은 없을 것입니다. 단군신화에는 새로운 창조에 도전하는 자와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의 비교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후손에게 전달하는 조상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범족의 예시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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