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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 갑이의 복수이야기 - 명종시대 정순붕의 염병과 을사사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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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 갑이의 복수이야기 - 명종시대 정순붕의 염병과 을사사화

키스 키스세븐 2018.02.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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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 갑이의 복수이야기 - 명종시대 정순붕의 염병과 을사사화]

야사 중에 여종 갑이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갑이라는 여종이 주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양반을 죽이고 복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명종 원년에 있었던 을사사화에서 죽은 유관과 연결됩니다. 그로인해 명종 3년, 유관을 죽게 한 정순붕을 염병에 걸려 죽게 한다는 이야기를 쫓아가 봅니다. 




[글의 순서]

명종과 을사사화의 배경

여종 갑이의 복수

정순붕과 여종 갑이의 죽음



명종과 을사사화의 배경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7년 전인 1545년, 열 두 살의 어린 나이로 `명종`이 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좌의정을 하던 사람이 `유관`이었는데, 양반인 유관의 가족묘에는 `갑이`라는 노비가 같이 묻혀 있습니다. 

노비가 양반의 가족묘지에 함께 묻히는 일은 조선이라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갑이가 `충비`라는 묘비까지 세워진 채 묻힐 수 있었던 것은 명종 3년 우의정 `정순붕`이 염병에 걸려 죽은 사연 때문입니다. 


여종 갑이의 묘명 (사진: 여종 갑이의 묘명 "충비 갑지묘" - "을사사화:핏빛 조선 4대 사화" 중에서 [갑이, 정순붕, 을사사화] / ⓒ 한국인물사연구원)


여종 갑이가 유관을 대신하여 복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윤원형`과 정순붕이 일으킨 1545년의 `을사사화`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 11대 왕인 `중종`에게는 `장경왕후`와 `문정왕후`라는 왕비가 있었고, 두 왕비는 모두 `파평 윤씨` 집안의 여인들입니다. 장경왕후의 아들은 조선 12대 왕에 오를 `인종`이었고, 문정왕후의 아들은 13대 왕인 명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외척과 권력다툼이라는 어두운 정치가 얽혀 있습니다. 


사진: 파평 윤씨 종문. 을사사화는 파평 윤씨 외척 간의 싸움이었다.(사진: 파평 윤씨 종문. 을사사화는 파평 윤씨 외척 간의 싸움이었다. [갑이, 정순붕, 을사사화] / ⓒ Samhanin)


인종이 즉위하자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사림파`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들 사림파는 권력을 잡으면서 다른 세력들을 내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종이 겨우 8개월 만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인종이 죽자 다음 서열인 `명종`이 즉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서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권은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형`과 `훈구파`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관과 여종 갑이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사진: 태강릉 문정왕후묘. 명종 시대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는 중종의 부인이다.(사진: 태강릉 문정왕후묘. 명종 시대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는 중종의 부인이다. [갑이, 정순붕, 을사사화] / ⓒ van_sinsy)


윤원형은 정순붕, `이기`, `임백령` 등과 모의하여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이 명종 즉위를 방해하였다는 모함을 하였고, 이로 인해 사림파가 훈구파에게 제거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치적 원한, 여자 문제와 재산을 빼앗기 위한 모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조선 `4대 사화` 중 가장 마지막에 벌어진 을사사화는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이때 유관의 여종 갑이도 정순붕의 집으로 끌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역적으로 몰리면 죽음이 당연했었고, 재산과 노비도 공신들이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여종 갑이의 복수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에서는 여종 갑이가 유인숙의 계집종이라고 나온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 자체가 야담이니 약간씩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사림파 유관은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친한 사이였던지라 을사사화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가족과 노비들은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고, 모두들 전 주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 주인을 잘 모셔야 한다"며 열 네 살의 여종 갑이가 나서니 정순붕의 눈에는 기특했을 것입니다. 


사진: 유몽인의 어우야담. 호남학연구회의 자료 사진.(사진: 유몽인의 어우야담. 호남학연구회의 자료 사진. [명종과 을사사화의 배경] / ⓒ homun.or.kr)


이리하여 역적으로 죽은 좌의정 유관의 여종 갑이는 정순붕의 충실한 노비가 되었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머리도 총명하여 귀여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종 갑이는 유관의 가족들이 자신을 학대하여 천벌을 받았다는 등의 말을 하며 정순붕의 믿음을 한껏 받았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따로 시키지 않아도 정순붕의 마음을 미리 알고 모든 것을 해내니 늙은 정순붕이 여종 갑이를 첩으로 삼았다고도 합니다. 


사진: 이수광 지봉유설. 숭실대학교 자료사진.(사진: 이수광 지봉유설. 숭실대학교 자료사진. [명종과 을사사화의 배경] / ⓒ ssu.ac.kr)


명종이 즉위하던 해에 을사사화가 난 후, 3년이 지나 명종 3년이 되었습니다. 여종 갑이가 정순붕의 집으로 올 때 상노 `돌쇠`도 같이 넘겨졌는데, 마음에 갑이를 담아 두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 갑이는 어느 날 돌쇠에게 혼인을 하자며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해괴하게도 염병에 걸려 죽은 송장의 어깨뼈를 구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쇠는 너무 놀랐지만, 혼인을 해 준다는 말에 온 동네를 수소문하여 송장을 찾아냈습니다. 


사진: 조선시대 베개. 경기도 박물관 자료사진.(사진: 조선시대 베개. 경기도 박물관 자료사진. [명종과 을사사화의 배경] / ⓒ musenet.ggcf.kr)


유관의 여종 갑이가 하필이면 시체의 뼈가 필요했던 것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염병에 걸린 송장의 어깨뼈를 잘라서 베갯속에 넣어두면 베고 자는 사람이 염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염병의 뜻은 염(染)자가 "옮긴다"는 뜻을 가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장티푸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돌쇠는 어깻죽지를 구해서 썩은 살을 도려내고 뼈를 잘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갑이는 진짜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정순붕과 여종 갑이의 죽음


우의정 정순붕의 집으로 끌려 간 후 여종 갑이가 귀여움을 받을 짓을 골라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순붕을 안심시켜서 접근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갑이가 베갯속에 염병에 걸린 시체의 뼈를 넣은 후, 정말로 정순붕은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끌려 온 갑이는 무려 3년이나 참고 기회를 노리다가 주인 유관의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사진: 을사사화를 다룬 핏빛 조선 4대 사화 표지.(사진: 을사사화를 다룬 핏빛 조선 4대 사화 표지. [여종 갑이의 복수] / ⓒ 한국인물사연구원)


야사에 의하면, 정순붕이 시름시름 앓자 무속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누군가의 저주를 받았다는 답변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베갯속에서시체 뼈가 나오자 정순붕의 집은 난리가 났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 찾아내려는 순간, 여종 갑이는 굳이 숨기지도 않고 순순히 자신이 그랬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순붕의 가족들은 때려 죽이듯이 여종 갑이를 구타했고, 열일곱 살의 갑이 역시 몸져누워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사진: MBC의 드라마 옥중화의 오프닝 화면. 윤원형은 을사사화의 주동인물이다.(사진: MBC의 드라마 옥중화의 오프닝 화면. 윤원형은 을사사화의 주동인물이다. [여종 갑이의 복수] / ⓒ MBC)


명종 3년 같은 해, 결국 정순붕도 죽고 여종 갑이도 죽었습니다. 

을사사화는 어린 명종의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의 외척들이 장경왕후의 외척들을 죽인 파평 윤씨 간의 사화입니다. 그러나 거의 6년 동안 이들과 친분이 있던 100여 명 이상의 사림들이 죽어갔습니다. 정순붕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 1등 공신에 올랐지만 겨우 3년 만에 장티푸스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 3년의 영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난초처럼 의리를 지킨 여종 갑이의 충성은 당시에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사진: 난초처럼 의리를 지킨 여종 갑이의 충성은 당시에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여종 갑이의 복수] / ⓒ tee2tee)


유몽인의 어우야담에서는 해골을 넣어서 죽였다고 그러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염병에 걸린 시체의 뼈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미천한 신분의 여종 갑이의 이야기가 남겨진 이유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장티푸스에 걸인 정순붕의 죽음을 "당해도 싸다"고 느꼈을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갑이의 이야기를 빌어 야사에 남긴 것 같습니다. 여종 갑이의 묘비에 새겨진 "충비(忠婢)"의 뜻이 "충성스러운 계집종"인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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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읽을만한 것이 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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