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선의 얼굴 - 선생님들이 작사/작곡한 가곡, 국민가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통기타를 친다면 한번 쯤 접해 봤을 노래, 얼굴의 가사입니다. 가곡으로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1970년대 윤연선의 노래로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학교 선생님들이 즉석에서 만든 곡이라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곡으로 인해 드라마 줄거리 같은 사랑이야기가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글의 순서]
1.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2. 가수 윤연선과 얼굴의 인연
3. 윤연선의 드라마 같은 러브스토리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국민가요가 되려면 일단 국민들의 정서에 맺히는 것이 있어야 하고,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 노래방에서 어떤 곡이든 애창곡을 뽐낼 수 있지만 1970년대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통기타를 치던 젊은 나이에 접한 노래는 유난히 오래 가게 됩니다. 기타를 배우는 입문자에게 '윤연선'의 가요 <얼굴>은 애틋한 정서를 남겨 주는 곡입니다.
(사진: 국민가요 얼굴은 1970년대 통기타의 향수를 품고 있으며, 가곡 얼굴은 학교 음악시간의 추억을 품고 있다. 같은 곡이 가곡버전과 포크송버전으로 있는 것이다.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 ⓒ Aravind kumar)
가곡으로도 애창되고 국민가요로도 불리는 곡인 윤연선의 얼굴은 잘나가는 작곡가, 작사가가 만든 곡이 아닙니다. 한 중학교에서 아침 교무회의를 하던 선생님들이 따분한 회의를 피하려고 즉석에서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는 군사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아서, 학교 교무회의도 '훈시말씀' 등등 일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탄생한 곡입니다. 가곡 얼굴은 생물선생과 음악선생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진: 얼굴은 동도중학교 선생님들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즉석에서 만든 곡이라는 사연이 있다. 가수 윤연선과 소프라노 홍수미의 곡으로 유명해졌다.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 ⓒ watchsmart)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근처에는 '동도공업고등학교'와 '동도중학교'가 있었습니다. 현재 동도공업고등학교는 '서울디자인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있는데, 이곳이 국민들의 애창곡인 얼굴이 가곡으로 탄생한 곳입니다.
같은 재단에 같은 운동장을 쓰는 학교이기 때문에 동도공업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소개된 글들이 많지만, 문화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얼굴을 작사, 작곡한 선생님들이 동도중학교에 있을 때 만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 국민가요 얼굴이 작사 작곡된 곳으로 알려진 서울 동도중학교 사진. 동도고등학교는 서울디자인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 ⓒ 쉰지식인)
국민가요 얼굴은 1970년대에 나왔지만, 원곡의 작사, 작곡은 1967년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아침 교무회의가 길었던 어느 날, 지루해진 동도중학교 음악교사 '신귀복'은 옆에 있던 생물교사 '심봉석'에게 뜬금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제목을 얼굴로 정했으니 사귀는 애인을 생각하며 가사를 지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곡을 붙이겠다고 해서 시작된 장난 같은 제안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금세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 냈는데, 이 곡이 그 유명한 <얼굴>입니다.
(사진: 얼굴의 작사, 작곡자의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서 서울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다. 원본 페이지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506401001이다. [가곡 얼굴이 만들어진 사연] / ⓒ 서울신문)
동도중학교 선생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노래 얼굴은 처음엔 비공식적으로 라디오 방송 전파를 탔습니다. 그 후 1970년 신귀복이 가곡집 앨범을 냈을 때 소프라노 '홍수미'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이 가곡 얼굴이 지금 중학교 교과서에 소개되는 얼굴이란 곡입니다.
1974년, 통기타 가수 윤연선은 가곡인 얼굴을 포크장르로 다시 발표했습니다. 큰 기교 없이 잔잔하게 흐르다가 감정이 올라가는 매력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고, 지금의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가수 윤연선과 얼굴의 인연
포크가수 윤연선은 한 동안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히트곡인 얼굴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입니다. 하지만 윤연선은 현재 SM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이수만'과 함께 데뷔앨범을 발표했던 가수였습니다.
포크가수 윤연선이 원래부터 가수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대학연합 음악동아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인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얼굴을 부른 윤연선의 독집앨범 매혹의 노래모음 쟈켓 사진. 생머리에 꾸미지 않은 모습처럼 목소리도 그런 순수함을 주었다고 한다. [가수 윤연선과 얼굴의 인연] / ⓒ 지구레코드)
윤연선의 연예활동은 대학생 가수라는 신분으로 노래를 했을 뿐이며, 전문적인 가수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당시 유명 DJ였던 '이종환'을 알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후 대학축제에서 노래를 부르며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활발하지 못해서인지 이수만과의 데뷔앨범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은 윤연선의 데뷔앨범을 같이한 듀엣멤버이다. 이들은 포크송가수였고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노래들을 불렀다. [가수 윤연선과 얼굴의 인연] / ⓒ 오하시스레코드)
1972년, 윤연선은 첫 독집앨범인 <평화의 날개>를 발표했습니다.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발성으로 부르는 포크창법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이 앨범은 인터넷 가요음반 경매시장에서 170만원에 낙찰되는 최고가앨범의 기록을 세웁니다.
가수 윤연선의 목소리는 어쩌면 원래부터 국민가요 "얼굴"과 어울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곡에 온갖 기교를 넣어서 부르면 노래의 맛이 살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진: 얼굴의 가사는 동그라미를 그리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게 되었다는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가수 윤연선과 얼굴의 인연] / ⓒ Aravind kumar)
그러던 어느 날, 윤연선은 한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가곡 얼굴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녀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작곡가 신귀복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동도중학교에 신귀복을 찾아가서 곡을 달라고 하니, 그는 음악실로 데려가서 테스트를 했습니다. 트로트가 대세였던 당시였지만, 포크발성으로 부르는 창법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음악교사 신귀복은 기쁘게 악보를 건넸다고 합니다.
"얼굴" 가사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한편, 가곡 "얼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얼굴의 작곡가 신귀복은 생각보다 유명한 음악교사입니다. 제5차와 제6차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저자인 것입니다. 이때 학교를 다닌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얼굴의 작곡가 신귀복이 편찬한 교과서로 노래를 부르고 컸습니다.
그가 작곡한 얼굴은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친근한 가곡이 되었고,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TV배경음악으로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신귀복은 얼굴, 천년학, 오솔길 등을 비롯하여 동요 100여곡과 가곡 300여곡을 작곡했습니다.
(사진: 제5차 교육과정 음악 교과서의 표지 사진. 음악 교과서 저자에 신귀복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신귀복은 음악교사, 심봉석은 생물교사였다.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 ⓒ 영록서점)
생물선생이며 작사가로 알려진 심봉석에 대한 에피소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얼굴"이 심봉석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매일 집 앞을 지나서 등교하는 한 여학생의 이미지라는 설입니다. 이름도 모르지만 동그란 얼굴이 기억에 남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설은 당시 사귀던 애인의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작곡가 신귀복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사에서의 주인공은 심봉석의 애인이며, 결혼에 성공하여 부인이 되었다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 가곡 얼굴, 포크가요 얼굴에는 그리운 마음에 얽힌 사연도 담겨 있다. 동그라미로 그린 주인공이 누구냐는 의문과 함께 뒤늦게 이루어진 사랑이야기도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 ⓒ 214214kei)
국민가요 얼굴을 부른 가수 윤연선에 대해서는 놀랄만한 러브스토리가 있습니다. 윤연선은 젊은 시절에 같은 동네의 한 청년과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의대생이었는데, 청년의 어머니는 귀하게 키운 아들이 연예인과 결혼하는 것이 싫어서 모진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청년은 선을 보아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가수 윤연선은 홍대 앞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며 평생 독신으로 병든 어머니를 돌봤다고 합니다.
(사진: 가수 윤연선과 배우 윤양하는 친남매 사이다. 배우 윤양하는 비록 촛불집회 막말파문에 휩싸였었으나 전 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했었다. 유명 출연작으로는 아제아제바라아제가 있다.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 ⓒ KBS)
그런데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윤연선에게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의대생 청년과 헤어진 지 27년이 지난 어느 날, 통기타 가수들이 뜻을 합해 가수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한 것이 운명 시작이었습니다.
이때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수 윤연선이 아직 미혼으로 살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기사는 마치 드라마 같은 줄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무려 이십여 년을 잊고 살았던 그 남자가 기사를 읽고 찾아 온 것입니다.
(사진: TV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윤연선의 모습 캡처화면. 윤연선은 가수 데뷔 30주년 기념콘서트로 인해 27년만의사랑을 다시 이룬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 ⓒ KBS)
남자는 이혼을 하고 자녀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가곡과 가요, 교과서 노래로 유명한 얼굴은 아이들도 알고 있었기에 결혼할 뻔 했던 과거의 일을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이 신문기사를 보고는 남자의 등을 떠밀어 윤연선을 찾아 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사진: 중학교 선생들이 즉흥적으로 만든 곡 얼굴은 국민정서에 남아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곡이되었다. 가곡버전도 함께 들어보면 더욱 좋다. [드라마 같은 국민가요 얼굴] / ⓒ rvegacolman0)
라이브 카페 이름마저도 <얼굴>이었던 가수 윤연선의 가게로 찾아 온 추억 속의 남자... 그리고 다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남자는 끝내 청혼을 했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은 현실이 되어 다시 볼 수 있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동도중학교의 선생님들이 즉석에서 만든 노래인 얼굴은 여러 가지 사연 속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아직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사연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