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키스세븐

덩케르크 철수작전 - 영화 덩케르크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 본문

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덩케르크 철수작전 - 영화 덩케르크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

키스 키스세븐 2017.07.16 20:36

공유하기 링크
필요하면 공유하세요 ^^
저작권법: 단,직접 복사 시에는 반드시 원문주소 표시 필수


[덩케르크 철수작전 - 영화 덩케르크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

영화 덩케르크 실화는 역사상 최대의 철수 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있었으며 6.25 때의 흥남철수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죽을 뻔한 수십만 명의 병사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철수작전은 오히려 큰 힘이 되어 사기를 높이는 덩케르크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글의 순서]

1.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

2.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

3.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


[엮인 글 링크]

영화 덩케르크 뜻과 철수작전 배경, 덩케르크의 기적 내용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


1940년, 죽거나 포로가 될 약 34만 명의 젊은이들이 '덩케르크'의 기적으로 되살아난 '제2차 세계대전'의 실화가 있습니다. 덩케르크 실화는 다이나모 작전이라는 철수작전으로 진행되었으며,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연전연패의 충격에 빠졌던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군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잘 도망쳐야만 승리하는 전투... 이것이 바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인 것이고, 여기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진: 영화 포스터와 한 장면.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수십만 명의 구출작전이었다. 약 37만 명의 병사 중 약 34만 명이 철수 작전에서 살아나온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사진: 영화 포스터와 한 장면.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수십만 명의 구출작전이었다. 약 37만 명의 병사 중 약 34만 명이 철수 작전에서 살아나온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 / ⓒ 영화 덩케르크 Dunkirk)


1939년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은 1940년이 되면서 드디어 독일 나치군과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군이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먼저 침공한 것은 프랑스였지만, 독일군은 벨기에 숲으로 우회해서 빠른 진격의 '전격전'을 벌였고 연합군은 대패했습니다. 

덩케르크 실화는 1940년 5월, 독일 기갑 전술의 천재 '하인츠 구데리안'의 작전이 성공하며 연합군이 포위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독일군이 숨 쉴 틈없이 추격해 오자 쫓기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은 결국 거대한 포위망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사진: 독일의 포위망에 갖힌 연합군의 상황 설명도. 덩케르크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은 됭케르크에서 벌어졌다.  됭케르크는 프랑스어 발음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사진: 독일의 포위망에 갖힌 연합군의 상황 설명도. 덩케르크 실화인 다이나모 작전은 됭케르크에서 벌어졌다. 됭케르크는 프랑스어 발음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 / ⓒ google maps / 편집 www.kiss7.kr)


영국 지원군까지 가세했지만 연합군은 '덩케르크, 불로뉴, 칼레' 3개 항구 쪽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영국과 가까운 이 항구들을 잃는다면, 죽음을 맞거나 포로가 되거나 해야 할 심각한 상황입니다. 

독일군은 5월 24일에 15km 앞까지 진격했고, 다음날 블로뉴와 칼레가 점령당하면서 앞날이 점점 캄캄해져 갔습니다. 37만여 명의 병사들은 절망적인 미래로 인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이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덩케르크 철수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입니다. 


사진: 다이나모 작전 중 침몰한 배의 잔해가 아직도 됭케르크 해변에 남아 있다. 덩케르크 뜻은 사막언덕의 교회라는 의미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사진: 다이나모 작전 중 침몰한 배의 잔해가 아직도 됭케르크 해변에 남아 있다. 덩케르크 뜻은 사막언덕의 교회라는 의미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실화] / ⓒ Corinne DECARPENTRIE)


이때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독일군이 3일간이나 공격을 멈춰준 것입니다. 독일 나치군은 부대 간의 간격을 좁히고 전차부대와 보병부대의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가 방문한 이후에는 진격 중지 명령까지 내려졌습니다. 

독일 나치군이 3일간이나 공격을 멈춘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에게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빌미를 준 것만은 확실합니다. 거의 다잡은 37만 명의 적군에게 시간의 여유를 준 것입니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 철수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을 준비 중인 영국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히틀러가 무슨 이유로 갑자기 공격을 멈췄는지는 몰랐지만, '도버해협'을 통한 대규모 철수 작전은 결사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일군의 진격 중지의 이유는 직전에 벌어진 '아라스 전차전'에서 반격을 받고 조심스러워졌다는 추측도 있고, 너무 완전 승리로 진행되니까 연합군의 유도전술이라고 겁을 먹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히틀러가 말 안 듣는 최전방 지휘자들에게 화가 나서 중지시켰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 아르덴 숲을 진격 중인 독일 기갑부대. 연합군을 공포에 몰아 넣은 독일군의 전격전은 빠른 속도가 이유였다. 그로인해 연합군은 영화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처럼 고생을 해야 했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사진: 아르덴 숲을 진격 중인 독일 기갑부대. 연합군을 공포에 몰아 넣은 독일군의 전격전은 빠른 속도가 이유였다. 그로인해 연합군은 영화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처럼 고생을 해야 했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 / ⓒ sarahsundin.com)


덩케르크 실화에서 영국은 정말로 모든 선박을 다 끌어 모았습니다. 군함만으로는 37만 명을 다 태울 수 없었기에 민간 선박 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다이나모 작전을 세우는 영국 스스로도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전망은 밝지 않았습니다. 최강 독일 전차부대가 언제 방어망을 뚫을지도 모르거나와, 바다 위에서도 최신예 독일 전투기들이 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도버해협에는 폭풍이 몰아치며 험난한 바다와 하늘로 덮여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 군함뿐 아니라 어선, 요트 등 민간인의 도움으로 900여 척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위해 달려 왔다. 이 그림은 덩케르크 작전을 묘사한 그림이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사진: 군함뿐 아니라 어선, 요트 등 민간인의 도움으로 900여 척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위해 달려 왔다. 이 그림은 덩케르크 작전을 묘사한 그림이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 / ⓒ artuk.org)


그런데 매우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람선, 화물선, 어선뿐만 아니라 개인 요트와 교육용 배까지 몰고 각지에서 지원자들이 몰려 온 것입니다. 이 중에는 너무 작은 배라서 대규모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상류층들마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목숨을 걸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철수 작전 첫날만 해도 폭풍이 너무 거세서 겨우 4만여 명을 탈출하는데에 그쳤지만, 다음 날부터는 갑자기 날씨가 조용해지며 덩케르크 실화가 만들어지는 역사적인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배에 승선하고 있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모습. 40km에 달하는 도버해협을 건너서 영국으로 가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사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배에 승선하고 있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모습. 40km에 달하는 도버해협을 건너서 영국으로 가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덩케르크 실화, 다이나모 작전] / ⓒ haikudeck.com)


1940년 5월 27일부터 900여 척이 동원된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덩케르크 실화가 되었습니다. 모든 배들은 침몰의 위험을 알면서도 정원보다 훨씬 많은 병사들을 태우려고 했고, 자신의 배가 망가지면 다른 배들이 자신의 배를 이용해서 해안에 안전하게 태울 수 있도록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에게는 치욕의 철수 작전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인원을 태우기 위해 전차와 야포, 탄약, 식량 등을 모두 버리고 배에 올라야 했습니다.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다이나모 작전은 6월 4일까지 9일간이나 벌어졌습니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


사상 최대의 철수작전인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그 마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시련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탈출을 돕기 위해 프랑스군 3만여 명이 방어선에 목숨을 걸었으나 독일 육군의 전차부대는 무시무시한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독일공군은 '슈튜카', 'Ju 88' 등의 폭격기와 '메서슈미트' 등의 전투기가 덩케르크 실화가 되는 해변과 바다 위에서 맹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국 쪽의 하늘은 폭풍이 조용해진 반면 독일 쪽의 하늘은 기상악후가 계속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나모 작전은 200여 척의 배들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진: 영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내용은 오직 생존이다. 무기도 다 버리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덩케르크에는 연합군이 포기하고 간 무기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었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사진: 영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내용은 오직 생존이다. 무기도 다 버리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덩케르크에는 연합군이 포기하고 간 무기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었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 / ⓒ 미상)


바다 위의 병사들을 살리기 위한 공중에서의 전투도 치열했습니다. 독일 최강기인 메서슈미트와 영국 최신예기 '스핏파이어'가 최초의 공중전을 벌였으며, 영국의 괴짜 전투기 '디파이언트'도 선을 보였습니다. 영국 조종사들의 바다 위의 떼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해 처절하게 하늘로 날아올라야 했습니다. 

쉬는 시간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영국이 2차 대전 초기에 잃은 전체 전투기의 40% 가까이를 덩케르크 철수작전에서 잃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덩케르크 실화는 결국 37만여 명 중 약 34만 명을 탈출시키며 성공했습니다. 


사진: 전투기, 폭격기의 공격 속에서 쫓아오는 기갑부대를 피해 배에 오르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장면. 덩케르크의 뜻은 프랑스어로 룅케르크이며 모래 언덕의 교회를 의미한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사진: 전투기, 폭격기의 공격 속에서 쫓아오는 기갑부대를 피해 배에 오르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장면. 덩케르크의 뜻은 프랑스어로 룅케르크이며 모래 언덕의 교회를 의미한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 / ⓒ Cundall, Charles Ernest)


덩케르크 철수작전으로 해안선에서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 동안, 방어선 바깥쪽에서는 프랑스군 34000여 명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더 많은 병사의 생존을 위해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들은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모두 탈출하면서 프랑스군 일부를 버리고 간 것에 대해 프랑스 국내에서는 울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다이나모 작전은 37만여 명 중 33만여 명을 구해내는 덩케르크의 기적을 이루어냈지만 상처 또한 참혹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영화 덩케르크는 실화인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그렸다. 이 사진은 무기를 버리고 탈출하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병사들을 담은 사진이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사진: 영화 덩케르크는 실화인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그렸다. 이 사진은 무기를 버리고 탈출하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병사들을 담은 사진이다.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의 기적] / ⓒ Puttnam and Malindine)


덩케르크 실화는 1940년 5월, 독일군 80여만 명이 연합군 37여만 명을 포위했지만 사상 최대의 탈출이 성공한 역사입니다. 독일군은 3주 만에 엄청난 연합군 병력을 영국으로 후퇴시켰습니다. 그 후 6월 말에 프랑스는 독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건너간 병사들은 무기가 없어서 다시 프랑스로 상륙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병사가 부족해서 10대 소년도 싸워야 했던 독일에 비해, 덩케르크 철수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다시 전선에 뛰어들어 공격에 참가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독일입장에서는 뼈아픈 실수였고 연합군 입장에서는 도망쳤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전화위복인 셈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