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바보 노무현입니다 2 - 불의에 굴하지 않는 바보]
우리 정치사에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그 정치인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덤벼들었던 정치인... 불의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자기 갈 길을 가던 정치인... 바보 노무현이 정치를 하게 된 과정을 여러 가지 증언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글의 순서]
1.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2.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3.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4. 결국 인정받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부산 경남은 보수당 지지 지역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에 쓴 소리를 하는 야권지역이었습니다. 이 정치구도가 보수화된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 세력과 '3당 합당'을 하며, 보수당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3당 합당 이전의 김영삼은 진보파였고, 그가 정치세계에 등용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로의 인식이 퍼져가는 중이었고 '송기인' 신부 등과 함께 힘든 자들을 도와주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인권변호사이며 노동운동가가 된 노무현.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노무현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한 재야인사로 발탁되게 되었다.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김영삼은 총선이 다가오자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송기인 신부를 통해서 인맥을 물색하게 되었습니다.
"전화가 왔는데, 재야의 인사 중에서 네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거예요. 노무현 보고 네가 좀 해보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제가 국회의원 될 생각은 없지만 선거운동은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러는 거라. '댔다, 그럼!' 말이지..."
송기인 신부가 밝히는 노무현의 정치 데뷔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노무현입니다.
(사진: 노동자와 함께 했던 노무현. 나중에 노동부 장관이 되어서는 노동자에게 계란를 맞고도, 그들의 울분을 이해한다고 말했었다.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노무현은 부산의 동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고, 허삼수와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허삼수는 12.12 쿠데타에서 전두환을 도와 공을 세운 후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허삼수는 당시 최고의 실세니까.. 야 그거 힘들지 않나? 그러니까 대답이... '야, 어차피 붙으려 그러면 이 군사정권의 최고 실세하고 한판 승부를 내가 해야지!'"
고교동창 '원창희'의 걱정에 대한 노무현의 말입니다. 하지만 거대 골리앗과 작은 다윗의 싸움인 것은 사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런 성향의 사람이 노무현입니다.
(사진: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시위에 참가한 노무현. 사이트 세상사는 세상에는 각종 노무현 관련 자료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인권 변호사답게 그렇게 임했죠. 선거운동 방식도, 유세 내용도 철저하게 그런 방향으로 임했죠. 어찌 보면 굉장히 아마추어적인 선거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데 그걸 통해서 말하자면 민심이... 지지가 올라가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문재인 당시 변호사의 증언입니다. 제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동업자이자 친구가 노무현입니다.
"아... 예상을 깼죠. 허삼수를 깬다는 것은 전국적인 관심사였죠. 그 당시에..."
문재인과 원창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문재인은 자신이 대통령에 도전하게 될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의원 여러분, 저는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 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일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은, 적어도 자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1988년 첫 대정부 질의에 나선 노무현의 말입니다.
(사진: 1988년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을 추궁하는 노무현 국회의원. 독재정권에게 탄압받던 국민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 ⓒ 방송 캡처)
1988년은 '5공 청문회'가 있던 해입니다. 이때 가장 이슈가 된 청문회 스타가 노무현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정치자금법에 대한 규정도 모르고 어떤 정치자금이 합법적이고 불법적인 것도 모르는 안전기획부장에게 이 나라의 안전을 맡겼습니까?"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말한 노무현의 발언입니다.
"그럼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본 의원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 있습니다."
1988년 5공 청문회 답변이 제대로 되지 않자 호통을 쳤던 1호 청문회 스타가 노무현입니다.
(사진: 정주영 전 현대회장에게 질의하는 노무현 국회의원. 정경유착을 밝히며 부정부패와 비리를 국민에게 폭로하였다.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 ⓒ 방송 캡처)
"과거에 힘 좀 있다고 모든 걸 자기 임의로 다 숨겨놓고 밝혀주지 않던 것을 국민들에게 다 밝힐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청문회의 의미를 정의하는 노무현의 인터뷰입니다. 무자비했던 군사정권의 비리를 국회에서 파헤치는 일은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서슬 퍼랬던 권력자에게 호통을 치는 노무현의 인상은 그래서 더욱 강렬했습니다.
잘못을 못 느끼는 그들로 인해 눈물까지 글썽이며 울분을 참던 사람도 노무현입니다.
(사진: "이의 있습니다!" 일방적인 3당 합당 발표에 반대토론을 주장하는 노무현. 김영삼은 진보개혁을 버리고 갑자기 보수독재세력과 당을 합당해 버렸다.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부산, 경남을 대표하던 진보세력인 김영삼이 보수세력과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해 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나중에 김영삼은 14대 대통령이 됩니다.
"이게 회의입니까?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으면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1990년. 3당 합당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린 당의 결정에, 이렇게 항의하며 반항한 정치인은 노무현입니다. 결국 그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사진: 3당 합당을 따라가면 편하게 정치생활을 지낼 수 있었지만, 명분없는 정치야합에 반발하며 스스로 고생의 길을 걸어갔다.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그 때는 또 온 집안이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왜 안 따라 가느냐... 네가 뭐가 잘났다고 안 따라 가느냐... 뭐 이런 식으로... 남들 다 하는 대로 해야 된다. 그렇게 반대들을 좀 했었죠.
그러나 노무현 의원은, 길이 아니라는 거죠. '3당 합당은 야합이지.... 내가 이런 거 하려고, 국회의원 되기 위해서 정치하는 거 아니다.'"
변호사 정재성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김영삼이 보수당에 들어가자 부산, 경남이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은 진보의원들은 15대 총선에서 낙선을 했고, 그 중 한 사람이 노무현입니다.
"한 10년 동안은 김영삼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그런 기반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기반에 확실하게 소속되어 있지 않고 독자를 얘기했기 때문에 손해 보는 보는 단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15대 총선에서 전부 다 떨어진 거죠."
'박계동' 전 국회사무총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은 1990년 갑자기 3당 합당을 했다. 다음 대통령직을 고리로 유혹하여 보수와 야합한 것이다.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 ⓒ 방송 캡처)
노무현은 서울로 올라와서 종로 재보궐 선거에 당선되었습니다. 이제 종로에서 정치 텃밭을 만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놀랄 선언을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16대 총선에서 영남, 그 중에서도 부산, 경남에서 출마할 결심을 밝혀 드립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최대의 과제인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동서화합과 화해를 이루려고 합니다."
부산 총선 출마선언을 하는 노무현의 말입니다.
"왜 이러실까? 그 날 저녁에 소주를 한 잔 먹고 집에 들어가는 중에 대문 앞에서 제가 울었어요. 아, 너무 힘들고 대통령(당시 국회의원) 하시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되고...."
당시 노무현의 보좌관 '송인배'는 그 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진: 차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전임 대통령으로서의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노무현은 부귀영화를 스스로 버렸기에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 ⓒ 방송 캡처)
"거의 밤에 찾아가 가지고, 나는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말이 되느냐, 거기 가면 될 줄 아느냐..."
강보현 변호사가 말렸지만 지역감정을 깨려는 확고한 결심을 한 노무현입니다.
"피하고 싶었죠. 그러나 2000년 4.15 총선 때도 부산에 내려갈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내려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선거에 임했고, 기죽지 않고 열심히 임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노무현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권이 독재를 하든 말든 경상도 당이면 무조건 그 당만 찍어주는 현실을 지난 선거에서 여실히 느꼈고, 오히려 도전하여 지역감정을 깨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진: 통일민주당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노무현 후보. 뒷면에는 부산의 유명한 영세지역인 일명 달동네가 보이고 있다.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 ⓒ 미상)
"이번에는 한 번만 더 종로에서 하고 싶었어요. 종로에서 한 번만 더 우리 자리를 좀 만들어 가지고 그 다음에 부산에 갔으면 했어요."
"그만 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종로 보궐선거 되시고 나니까 너무너무 기쁘더라고요. 부산을 가신다고 하시니까 정말 솔직히 저는 굉장히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운동도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될 것 같은 선거였거든요."
노무현의 가족 '권양숙'과 '노연정'의 말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입니다.
(사진: 계속 떨어지면서도 다시 부산에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 서울 종로에서 계속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지만, 지역감정이라는 불리함에 맞서기 위해 부산에 출마했다. [손해를 알면서도 도전한 노무현입니다] / ⓒ 미상)
"초반에 분위기가 좋았어요. 대통령(당시 ...)이 가지고 계신 이미지나 거리를 다니면서 매일 새벽부터 같이 시민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그랬을 때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당시 보좌관은 '송인배'의 말처럼,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믿음감을 주는 후보였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낙선이 이번에는 꼭 되어야 우리 부산을 죽이기를 골몰을 하고 있는 이 김대중 정권이 정신을 차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보수당의 후보 '허태열'은 역시나 지역감정을 조장했는데, 그 피해자는 노무현입니다.
"차차 깎아 먹더라고요. 그게 악수만 해도 압니다. 악수하려고 손만 잡아도 느낌이 오는데요. 지는 선거가 그때가 4번째였죠. 지는 선거가 정말로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그런 얘기를..."
송인배는 김대중 호남당이라는 지역감정 때문에 노무현이 선거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인정받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그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이 부산에 출마한다고 해서 우리 한국 정치의 지역구도가 변화가 있는 건 아니죠. 다만 그런 의지가, 타파해 보려는 의지가 있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 이렇게 좀 각인됐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하나의 상징성이 되어 버렸죠.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출마에 일종의 어떤 상징성이 되었고..."
'이상돈' 교수는 노무현이 떨어질 줄 알면서도 도전한 부산 선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음 부산출마는 절대 안 됩니다. 이번 출마는 다소 명분이 있었지만, 다음 출마는 이번 총선에서 등 돌린 사람들에게 한 표를 구걸하는 식의 이미지만 줄 뿐입니다."
이때부터 노무현의 정치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터넷 응원글에는 바보 노무현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 올려졌습니다.
(사진: 지역감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말입니다. 노무현은 보수당을 찍어주는 부산에 출마했다가 또 낙선합니다. [결국 인정받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 ⓒ knowhow.or.kr)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기존의 정치인이라고 그러면 거짓말 잘하고 결국 대통령, 국회의원 그런 거 당선될 때는 뭐든지 할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자기 몸보신한다고 그러나? 그런 것만 우선으로 하는데, 그런 것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기 할 일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 대변하는 모습 속에서 좀 다르다... 다른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방송 인터뷰에서 '김성례'라는 시민의 말입니다. 한국에서 시민들이 정치를 응원하는 풍토가 나타나게 한 한국 최초의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입니다. 한국의 국민참여 정치풍토가 완전히 바뀌는 시점도 이때부터 입니다.
(사진: 노사모는 바보 노무현에게 감동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정치인 팬클럽이다. 한국 정치가 크게 변하는 순간은 노무현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결국 인정받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 ⓒ nosamo.org)
"마지막 2000년 선거는 그 이전에 종로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지역구가 종로에 있는데 훨씬 유리한 곳인데 왜 그걸 버리고 부산으로 가냐... 바보... 이렇게 붙여줬죠. 그동안 사람들이 나한테 붙여줬던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대통령이 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돼지 저금통 나누어 주고 돈 보내고 학 접어서 보내고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불안하죠."
재임시절의 노무현은 자신을 응원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노사모 모임에 참석한 노무현. 노란색은 노무현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결국 인정받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 ⓒ nosamo.org)
이전의 정치와 다르게 노무현의 선거는 국민의 후원금을 모금해서 치루었기 때문에, 과거의 정치보다 선거가 깨끗해졌습니다. 이 또한 새로운 한국의 정치역사입니다.
국민이 사랑했던 만큼 대통령 일을 잘하고 있는지... 그것은 국민에게 진 빚이니까 말입니다.
- 다음 글은 경선과 대통령 당선 시기의 노무현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은 MBC방송 인터뷰 내용을 자료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