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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야 차이카'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2016. 12. 1.

['야 차이카'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러시아에는 '야 차이카'라는 말로 유명한 여성이 있습니다. 사실은 세계 우주과학 역사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세계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이며 최연소의 우주비행사였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그 주인공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우주인인 이소연과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1963년 구.소련의 관제실에는 그동안 낯익었던 남성비행사의 목소리가 아닌 여성의 교신 목소리가 들려서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Терешко́ва)의 목소리로, 첫 말인 '야 차이카'의 뜻은 "여기는 갈매기"라는 의미입니다. 군사 등의 분야에서는 교신을 할 때 암구호를 넣는데, 그 이유 때문에 한 말입니다. 그 후 이 말은 여권신장의 상징처럼 되어 유행어로 퍼졌었다고 합니다. 


사진: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의 모습. 노동자에서 여성우주인의 꿈을 이룬 일화로 유명하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사진: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의 모습. 노동자에서 여성우주인의 꿈을 이룬 일화로 유명하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 ⓒ vesti.lv)


테레시코바는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이며 인류의 10번째 우주인입니다. 그녀는 구.소련의 '보스토크 6호'를 타고 1963년 최초의 여성우주인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이가 26세로, 세계 최연소 우주인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무려 7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주비행을 하며 지구를 48바퀴나 돌았습니다. 이 역시 당시 최장 우주비행 기록입니다.  여자우주비행사가 최연소로 최장 우주비행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사진: 우주 유영 중인 테레시코바. 그녀의 교신명 (사진: 우주 유영 중인 테레시코바. 그녀의 교신명 "야 차이카"의 뜻은 여기는 갈매기라는 의미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 ⓒ googleusercontent.com)


그 이후 테레시코바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일 뿐만 아니라, 그 지식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군에서도 장군까지 진급을 하였습니다. 또한 구.소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정치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테레시코바는 70이 훨씬 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화성에 가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어서 화성에 대해 출간되는 책들을 모두 찾아 읽어본다고 합니다. 


사진: 노동자에서 여자우주인이 된 후, 박사를 거쳐 장군이 되고 지금은 정치가로 활약 중이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사진: 노동자에서 여자우주인이 된 후, 박사를 거쳐 장군이 되고 지금은 정치가로 활약 중이다. [야 차이카의 뜻과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 ⓒ wikimedia.org)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


1960년대에 소련에서는 여성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지원자를 모집했습니다. 1000명이 지원한 가운데 5명이 뽑혔고 그 중에는 테레시코바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방직공장이나 타이어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에 불과했습니다. 

테레시코바는 취미로 낙하산을 즐겼는데,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 여성이 여성우주인으로 선발되는 데에 큰 잇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우주선은 지금 같은 착륙장치가 없었으므로, 조종사가 미리 탈출하고 우주선은 추락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지구로 귀환한 후 낙하산 캡슐에서 내리는 테레시코바. 온 세계의 관심을 받은 우주비행이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사진: 지구로 귀환한 후 낙하산 캡슐에서 내리는 테레시코바. 온 세계의 관심을 받은 우주비행이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 / ⓒ spacefacts.de)


1930년대에 태어난 그녀는 '유리 가가린'에게서 1년 간의 훈련을 받은 뒤 보스토크 6호에 탔습니다. 유리 가가린은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러시아가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의 훈련은 매우 혹독했습니다. 매일 낙하산 훈련을 했으며 70도가 넘는 고온에서 견뎌야 했고, 우주를 가상한 완전 방음상태에서도 지내야 했습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스페이스자이로'같은 무중력 훈련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고의로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나 잠간씩 우주유영을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진: 세계 최초로 우주로 갔던 유리 가가린. 구.소련의 군인이었던 그는 지금도 러시아의 우주개발 영웅으로 남아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사진: 세계 최초로 우주로 갔던 유리 가가린. 구.소련의 군인이었던 그는 지금도 러시아의 우주개발 영웅으로 남아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 / ⓒ 미상)


테레시코바가 첫 교신에 사용한 '야 차이카'의 뜻은 러시아어로 'Я — Чайка!'입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의 한마디는, 억압받지 않고 자유로운 여성, 강인하게 꿈을 이룬 여성이라는 상징성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더구나 전문지식인도 아닌 공장노동자가 노력 끝에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꿈을 주는 모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소련 지도자는 "여성은 약하지 않다"고 추켜세웠으며, 실제로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진: 꿈을 이루고 성공한 여성 테레시코바. 그러나 미소냉전체제에서 체제 과시용으로 홍보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사진: 꿈을 이루고 성공한 여성 테레시코바. 그러나 미소냉전체제에서 체제 과시용으로 홍보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 / ⓒ gctc.ru)




소련과 미국의 우주개발 - 여성우주인


인류가 우주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습니다. 지금은 여러 나라가 우주인을 배출했지만,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냉전체제 분위기 때문에 언제 두 나라가 우주전쟁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우주인을 보냈습니다.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의 우주개발은 미래를 지배할 기술을 대결한다는 측면 뿐 아니라 자본진영, 공산진영의 체제경쟁적 측면도 있었습니다. 


사진: 초기 소련(러시아)의 우주선모델인 (사진: 초기 소련(러시아)의 우주선모델인 "보스토크호"의 모델. 여성우주인 테레시코바는 보스토크 6호를 탔었다. [소련과 미국의 우주개발 - 여성우주인] / ⓒ wikimedia.org)


그때 소련은 자기들이 자랑하던 '여성, 노동자가 평등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과시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 이전의 우주인들은 모두 남성이며 엘리트군인들 뿐이었습니다. 평범한 여자를 첫 여성우주인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라는 수식어는 테레시코바를 상징적인 여성이 되게 하였고, 더불어 소련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야 차이카'의 뜻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으니 말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야 차이카'의 뜻은 당시 소련의 우주개발 상징을 보면 알 수 있다. 점퍼에 새겨진 비둘기의 모습. [소련과 미국의 우주개발 - 여성우주인](사진: '야 차이카'의 뜻은 당시 소련의 우주개발 상징을 보면 알 수 있다. 점퍼에 새겨진 비둘기의 모습. [소련과 미국의 우주개발 - 여성우주인] / ⓒ collectspace.com)


미국의 첫 여성우주비행사는 1980년대에나 가능했습니다. 우주기술이 불완전한 당시에, 우주비행사들은 다른 면에서는 실험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체제경쟁도 필요했지만, 우주에서의 여성 인체에 대한 자료도 필요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테레시코바는 우주에서의 적응력 등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마련해 주었다는 공헌도 있습니다. 

여성우주인들이 임신을 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고 실제로 그런 경향도 있으나, 테레시코바는 무사히 딸을 낳았으며 스스로도 자부심 높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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