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치료용으로 사용되었던 여성용 기구의 역사]
2012년 "히스테리아"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 때문에 여성용 기구의 역사가 관심을 끌었고, 현대적인 바이브레이터의 개발이야기는 정신과 의학의 역사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보면, 그 역사가 매우 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 의학계에서는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의사들이 민망하고 미신 같은 치료행위를 했었는데, 의학사에 실제로 있었던 숨겨진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바이브레이터 및 비슷한 용도의 기구들은 민망한 기구이긴 하지만, 법원 판례에 의해 합법적인 개인용품으로 국내에도 유통되고 있다고 합니다.
히스테리아 영화의 소개
히스테리아는 2012년 개봉한 영국영화입니다. 타니아 웩슬러라는 여성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매기 질렌할, 휴 댄시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 히스테리아는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한 한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민감한 소재 때문에 19금으로 개봉되었지만, 성적인 장면이 주제가 아닌 의외로 건전한 영화입니다. 오히려 보수적인 영국사회의 비판을 담은 영화이며, 제16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9.5의 높은 평점을 받기도 한 나름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입니다. 단점은 약간 계몽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
(영화 히스테리아의 한 장면. 전동 자위기구를 보며 놀라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상류층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전문병원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손으로 음부를 마싸지 하는 치료법을 배웠고, 여성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의사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그 치료법이 팔을 혹사시키는 중노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여성을 대변하는 두 자매가 나옵니다. 병원장의 두 딸인데, 첫 딸은 여성적인 상류층 스타일이고 둘째 딸은 여성해방을 외치며 하류층과 함께하는 스타일입니다. 이 역시 감독이 당시 시대적 여성에 대한 시각을 표현한 부분입니다.
(연극의 한 장면. 당시의 무식한 우울증 치료법은 의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전동 바이브레이터의 발명 배경과 역사
서양 의학에서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다방면에서 많은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는 히스테리 중에서도 여성의 불안증, 우울증, 정신적 흥분 등에 대해서 자궁의 문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현대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서양의학에서는 실제로 그 말을 믿었었고, 해결방법으로 성관계를 제시했습니다. 17세기부터는 오르가즘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시술되었고, 히스테리가 심한 경우 자궁 적출, 음핵 제거 시도까지 있었다고도 합니다. 19세기 근대의학에 이르러 여기에 운동요법, 물을 이용한 음부 마싸지 요법 등이 있었으며, 영화 히스테리아에 나오는 손 마싸지는 의사나 조산소의 산부들이 돕기도 했습니다.
(초기의 휴대용 바이브레이터. 고무를 끼워서 음부 마싸지를 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요법들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확인할 수 없으나, 일부 상류층 여성 사이에서는 실제로 의사의 이런 시술을 받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사입장에서는 지루한 노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의사 조셉 모티머 그랜빌은 최초의 전동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합니다. 친구가 사용하던 전동 먼지떨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처음엔 증기기관을 이용했으나 몇 년 후 전기 전동기로 발전하였습니다.
점점 인기를 얻어가던 바이브레이터는 20세기 초부터 가정용으로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히스테리는 심리상태 때문임을 모르고, 20세기 초까지도 여성의 히스테리가 자궁과 관련되어 있다는 설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입니다.
(당시의 바이브레이터 판매 광고. 가정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여성용 기구
치료용인 바이브레이터와 달리 처음부터 성적 도구로 사용된 기구들도 있었는데, 여러 종류의 여성용 기구의 역사도 제법 오래됩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안압지에서 1970년대에 발견된 여성용 기구는 놀랄만한 일입니다. 안압지의 바닥을 발굴하던 중 발견한 이 기구는 무려 천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엔 학계에서도 어떤 용도였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었으나, 크기와 직접 사용했던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실제 사용된 여성용 기구인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달리 매우 적극적인 성생활을 즐겼던 시대로 보입니다. 이 유물은 국립 경주박물관 안압지 관련 진열구역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춘화를 보고 있는 양반집 여성들의 모습. 18세기 조선 화가 신윤복의 그림)
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근처에서도 이런 기구가 발견되었다고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혼수용품을 전문취급하던 시장인 동상전에서도 몰래 취급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영화 음란서생을 보면 책방에서 비밀리에 음란서적을 대여하거나 장사치들이 봇짐에 넣고 다니면서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방물장수들은 여염집에 직접 방문하여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반화된 시대상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나, 억압된 사회체제 안에서도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여성용 기구들이 은밀히 유통되었었다는 얘기입니다.
뒷얘기로, 19세기에 발명된 바이브레이션의 영향은 전자제품의 대량생산과 맞물려서, 지금에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각종 진동제품으로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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