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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

비키니와 인터넷은 핵무기로 인한 핵문화

2015. 12. 20.

[비키니와 인터넷은 핵무기로 인한 핵문화] 




핵이란 인류에게는 재앙인 기술입니다. 이 핵기술로 인간은 몇 초만에도 수십만을 죽일 수 있습니다. 

1945년 미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해 놓고도 불안에 떨었습니다. 얼마 후 구.소련도 핵폭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군사력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 핵무기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핵무기로 인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핵문화입니다. 






핵개발이 인류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 핵문화 


핵개발로 인한 신기술은 가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라이팬입니다. 세계적인 프라이팬 제조사인 테팔은 테프론을 이용해서 세계적인 제품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맨허튼 프로젝트라는 것을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는 한화로 약 25조원과 13만 명의 인원을 투입한 개발계획입니다. 테팔이 프라이팬에 사용한 테프론은 이 프로젝트에서 나온 부산물입니다. 



(가정용 기기에도 사용되는 핵개발 기술들. 테프론 등은 특히 유명하다)


이 프로젝트에서 연구된 여러 아이디어는 이후에도 우주, 무기, 첨단산업에서 활용되었으며 심지어 가정용 제품에까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핵무기 때문에 얼떨결에 얻게 된 기술들도 있듯이 핵무기는 1950년대 이후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문학,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서도 그 영향을 감당 못해 파생한 장르들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핵무기 문화는 두려움으로 인해 발생한 문화이기도 합니다. 핵무기는 인류의 무의식 속에 두려움으로 존재합니다. 



(가정에서 수도꼭지 등에 사용되는 테프론은 이렇게도 판매가 되고 있다)






핵무기의 두려움, 최초의 인터넷이 되다 


원자폭탄 때문에 인류가 얼떨결에 얻어낸 신기술도 있었는데, 그것은 최초의 인터넷입니다. 지금엔 일반적인 통신망이고 미래에는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의 기술이지만, 당시만 해도 몇몇 사람들끼리만 연결된 폐쇄망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터넷(internet)의 원래 이름은 인터네트워크(lnter network)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오픈된 정보통신망이 된 것은 와일드웹이 적용된 1989~1993년 이후의 일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그 인근 도시들은 원자폭탄이 터질 때 라디오는 물론 전파를 사용하는 모든 통신기기가 불통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 번의 핵실험을 거듭한 미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소련이 먼저 핵공격을 하면 군사지휘가 불통이 될 것이라는 것에 불안해했습니다. 

원자폭탄의 강력한 핵폭발은 섬광과 불, 방사능 뿐 아니라 전자파도 발생시킵니다. 즉 유무선 통신연결이 완전히 마비되는 상황입니다. 



(최초의 인터넷은 군사용으로 시작된 아파넷이다)


미국 국방부는 공중 전파가 아니라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선 정보망을 구축하기로 했고 1960년대에 아파넷(ARPANET)라는 최초의 인터넷을 시작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회선이 끊기더라도 다른 회선을 돌아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A, B, C, D라는 컴퓨터가 서로 이어져 있다면, B가 폭파되고 A와 D를 연결한 선이 핵공격에 의해 끊긴다고 해도 A는 C를 거쳐서 D와 통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대학 연구소들이 이런 시도를 먼저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제대로 된 최초의 인터넷은 군사용이었습니다. 

이것이 발달하고 범위가 커지면서 상업용, 개인용으로 정보망이 광범위하게 연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입니다. 최초의 인터넷이었던 군사용 아파넷은 상업용과 분리되어 현재는 밀넷(milnet)으로 운영됩니다. 

한국은 1990년대 초 김대중 정부의 과감한 투자로 인해 짧은 기간 내에 세계인터넷 상위 국가에 올라섰습니다.



(미래에는 인터넷의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멸망의 두려움, 노출패션 비키니가 되다 


아는 사람은 꽤 많이 아는 상식으로 유명한 것이 비키니입니다. 비키니는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디자인되었습니다. 

그런데 1946년에는 세계적인 핵실험도 있었습니다. 미국은 비키니 환초라는 산호로 생성된 섬에서 더욱 가공할만한 원폭 실험을 했습니다. 이 섬의 이름이 수영복 비키니의 원조입니다. 



(핵실험이 이루어진 비키니섬의 위치. 출처: KBS)


미국은 이미 1945년에 원자폭탄을 사용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은 군비경쟁에 들어가기 때문에 누가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느냐는 전세계인의 관심사였습니다. 왜냐면 전후 양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과 소련이 언젠가는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전쟁이 끝났음에도 실험한 원자폭탄 강화실험은 비키니라는 섬에서 엄청난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리며 소련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때 비키니를 고안한 루이 레아라는 사람은 이걸 이용해서 홍보할 목적으로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영복이지만 당시에는 대담한 노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수영복을 다 벗은 것과 같다고 느꼈지만, 벗은 몸을 보여주려는 어느 대담한 여성들의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기에 이슈가 되기는 충분했습니다. 지금에는 끈만으로된 마이크로 비키니까지 출시되는 중입니다. 



(최초의 비키니와 비키니를 개발한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


비키니는 원자폭탄만큼이나 쇼킹한 사건이었기에 몇몇 나라는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는 부도덕한 수영복으로 규정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법적으로 금지시켰던 때도 있었습니다. 패션모델들이 아무도 입으려 하지 않아서 발표회 때는 스트립댄서를 동원해야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러나 일반적으로 파격적인 의상이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리는 데 비해, 비키니가 정착되기까지는 10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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