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키스세븐

허블 우주 망원경과 우주와 은하 - 20세기 초 천문학 본문

유용한 지식 칼럼

허블 우주 망원경과 우주와 은하 - 20세기 초 천문학

키스세븐지식 2015. 9. 6. 16:22
공유하기 링크
필요하면 공유하세요 ^^
이 블로그를 북마크 하세요! 좋은 정보가 계속 이어집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과 우주와 은하 - 20세기 초 천문학] 




학교에서 허블이니 허블상수니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허블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도 유명합니다. 어찌 보면 허블은 다재다능하며 명석한데다가 명예까지 거머쥔 행운의 인물입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류는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은하와 빅뱅이론 정도는 아는 세상이니, 허블과 수많은 천문학자가 20세기에 쌓아 올린 업적은 대단한 것입니다. 

역동의 20세기 초 천문학을 뒤쫓아 가 봅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과 우주와 은하 


5백년 전만해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후 망원경의 발달로 가까운 행성은 직접 관찰하며 태양계 내부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양계 바깥쪽의 행성과 그 바깥의 우주는 빛을 관찰한 뒤, 수학적으로 증명을 하는 식으로 이론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망원경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은 아직도 태양계 내의 행성들조차 관찰을 자세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허블 우주 망원경 덕분에 볼 수 없던 많은 베일이 벗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아름답게 소용돌이 치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 보는 우주사진도 사실은 우주 자체를 보이는 대로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검은 우주 속의 휘황찬란하고 오색영롱한 별들과 우주개스의 색상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를 촬영한 뒤 지금까지의 각종 이론에 근거하여 계산하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재창조된 우주일 뿐입니다. 천문학자들이 이론을 내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학설이 완전히 뒤집어진다면 우주 사진의 모습은 다 달라지게 됩니다. 




안드로메다의 거리가 결론지어 준 우주론 


20세기 초의 천문학계는 양대파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주에 수많은 은하가 존재하는지, 우리 은하만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어릴 때부터 은하를 그린 우주 상상도를 보며 자라기 때문에 당연히 "수많은 은하가 있는 우주"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 은하가 유일한 은하이며 다른 은하들은 우리 은하 안에 들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천문학자들도 꽤 많던 시절입니다. 그 대표적인 천문학자가 허블의 라이벌인 섀플리였습니다. 



(지구 상에 떠있는 허블 우주 망원경. 허블을 기념하여 이름을 붙였다)


미국으로 천문학의 주도권이 넘어간 1920년대, 섀플리가 연구하던 윌슨산 천문대를 중심으로 한 '은하가 포함된 우주론'과 릭 천문대를 중심으로 한 '은하가 각자 독립적이라는 우주론'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끝이 나지 않을 듯한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허블"이었습니다. 

허블이 측정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가 우리 은하의 크기보다 컸던 것입니다. 이후 다른 천문학자들도 같은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허블은 그 공로로 가장 뛰어난 논문에게 주는 1천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됩니다. 




허블의 법칙은 팽창 우주론을 넘어 빅뱅으로... 


허블은 1920년대 말에 허블상수를 연구합니다. 우주에서의 속도와 거리에 대한 비율입니다. 이전부터 이 비율을 정의하려고 노력했지만 허블에 와서야 결론이 지어집니다. 

물론 이후에도 많은 보완이 있었습니다. 앨런 샌디지 등의 천문학자들은 허블상수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허블상수를 계산하여 우리는 별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고, 거리가 멀수록 더 빠른 속도로 우주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약 150억년~200억년 전에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빅뱅이론)


역시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우주론은 또 다른 토론에 빠졌습니다. 우주는 항상 똑같은가, 아니면 커지고 있는가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원래 정적인 우주론자였지만 팽창 우주론인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주는 변함없다는 정적인 우주론을 주장하는 학자가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도 "허블의 법칙"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거리가 멀수록 빨리 멀어진다는 허블 법칙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바깥쪽이 더 빨리 멀어진다는 것은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옛날엔 우주가 아주 작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결국 빅뱅, 즉 우주대폭발이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억세게 좋은 행운과 재능을 겸비한 천문학자 허블 


허블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천문학을 배웠습니다. 고등학생시절, 화성에 대해 쓴 글이 신문에 실릴 정도로 글재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블은 시카고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 학위를, 옥스포드에서 법률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다시 시카고대학에 와서 박사학위까지 땁니다. 더구나 미남형의 외모에 권투까지 잘해서 제법 유명한 권투선수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다재다능한 재능 때문에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었고 교수들도 좋아했습니다. 

1차 대전에 참전한 뒤 허블은 윌슨산 천문대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윌슨천문대에는 당시에 가장 큰 망원경이 있었습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이 기념하는 천문학자 허블)


윌슨천문대에는 이미 섀플리가 선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고집스러운 인물입니다. 섀플리는 다른 은하들이 우리 은하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던 천문학자입니다. 허블은 섀플리가 고집스러워서 싫었고, 섀플리는 허블이 술과 놀기를 좋아하니 싫었습니다. 그래서 섀플리와 허블은 자주 충돌했다고 합니다. 

사실 다른 은하가 우리 은하의 밖에 존재한다는 증거는 새플리가 먼저 발견했습니다. 고집이 셌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지나쳐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섀플리가 다른 천문대로 옮기고 난후 허블은 섀플리가 버리고 간 자료에서 그 아이디어를 발견합니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추적활영한 사진)


그런데 어느날 술 마시고 우연히 찍은 우주 사진에 그 증거가 찍혔습니다. 그것은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는데, 운 좋게도 안드로메다에서 최초로 변광성이란 것이 발견되는 순간입니다. 

허블은 그 거리를 재서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보다 멀리 있기 때문에, 우주에는 여러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천재면서도 집요한 연구를 하던 허블에게는 행운까지도 따라다닌 것입니다. 

이로인해 우리 은하 속에 다른 은하가 속해 있다고 주장하던 섀플리는 그간의 주장을 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라이벌격인 두 사람은 결국 섀플리가 완패를 인정하면서 허블에게 명예과 인기가 집중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허블은 죽는 순간까지 인류의 우주 과학에 대한 많은 공로를 남겼습니다. 한편으로는 죽을 때까지 천문학자로서 모든 명예와 권위를 누릴만큼 누리다가 간 학자이기도 합니다. 


★ 이 정보가 도움이 된다면 아래의 공감을 부탁드립니다! ^^
(로그인 필요없음)



키스세븐지식은 키스세븐과 그룹 사이트입니다.

아래로 더 내려 가 보세요!

혹시 읽을만한 것이 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이 블로그를 북마크 하세요! 좋은 정보가 계속 이어집니다.
http://kiss7.tistory.com

공유하기 링크
필요하면 공유하세요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