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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지강헌 인질극 사건 -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2024. 12. 9.

지강헌 인질극 사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지강헌 인질극 사건 -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 KBS
지강헌 인질극 사건 -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 KBS


 

유전무죄, 무전유죄 뜻은 부자면 죄가 있어도 없어지고 가난하면 죄가 없어도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1988년에 있었던 지강헌 사건에서 입니다. 당시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이 있었고, 그 죄수들 중 한 명이 인질극을 벌이며 했던 말입니다.

 

교도관을 공격하고 권총을 든 채, 서울 시내로 들어가서 가정집울 점거했었습니다. 탈주범 중 하나는 TV생중계를 요구하며, 억울 함을 호소했습니다. 탈옥과 인질극은 범죄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사회 정의와 법의 공정성 왜곡에 대해 사회가 변화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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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인질극 사건 -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1988년 10월,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재소자들이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잡범이었지만 징역형을 마친 후에도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중엔 560만 원 절도 혐의로 17년 형을 선고받은 지강헌이 있었습니다. 72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7년 형을 선고받고 3년 만에 풀려난 사실에 분노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탈주범 지강헌,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 -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탈주범 지강헌,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 -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 KBS

 

결국 12명이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탈주범들은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 제도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흉기를 사용하여 교도관들을 공격하고 M1911 권총과 총알 5발을 탈취했습니다. 이때 신문에는 "홀리데이 사건"이라는 사건으로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탈주범들은 총을 들고 서울 시내로 잠입했습니다.

 

탈주범들은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은신하며 경찰의 추적을 피했습니다. 그들은 훔친 돈으로 생활을 유지했고 때로는 강도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져 왔습니다. 탈주범들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중 4명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했는데, 이것이 "북가좌동 인질극"입니다.

 


 

지강헌 인질극 사건

 

당시 34살인 지강헌은 1954년 태어났습니다. 현금과 승용차 등을 훔친 혐의로 총 1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꿈은 시인이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이후 학교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주먹질과 도둑질로 살아가던 그는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권총을 탈취했습니다.

 

지강헌 인질극 사건
지강헌 인질극 사건 ⓒ KBS

 

훔친 돈으로 생활하며 도주 행각을 벌이다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서 집주인 고□□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1988년 10월 16일 새벽, 고□□는 탈주범들이 잠든 사이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집에서 탈출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포위했고, 워낙 큰 사건이라서 TV로 생중계까지 되었습니다.

 

인질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었기에 1천여 명의 경찰 병력이 현장에 투입되었고 집 주변은 완전히 봉쇄되었습니다. 경찰특공대도 현장에 배치되었고, 인질 협상 경찰도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지강헌은 인질들에게 정중하게 대하면서, "죄송하다 조금만 참아달라"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북가좌동 인질극

 

인질범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지강헌은 인질극을 통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외치며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가벼운 죄를 지어도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고 분노했습니다.

 

북가좌동 인질극
북가좌동 인질극

 

그들은 경찰과의 협상 과정에서 요구 조건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인질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요구했습니다.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경찰을 위협하면서도, 인질에게는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귓속말로 안심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인 탈주범은 12명 중 4명이었습니다. 지강헌, 안광술, 한의철, 그리고 강영일이었습니다. 당시 강영일은 21살이었습니다. 경찰의 포위로 절망적인 순간이 되자, 지강헌은 강영일의 발밑에 총을 쏘며 나가서 자수라하고 했습니다. 강일영은 나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홀리데이 인질 사건

 

경찰은 인질범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인질범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팝송인 비지스의 "홀리데이" 음악 테이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홀리데이 인질 사건으로도 불립니다.

 

인질을 잡은 4명의 탈주범 - 홀리데이 인질 사건
인질을 잡은 4명의 탈주범 - 홀리데이 인질 사건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해서 인질 구출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22살의 안광술,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20살의 한의철은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강영일이 쫓겨나며 자수하게 되었지만, 안광술과 한의철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한 안광술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고, 한의철은 가슴에 총을 쏘았습니다. 지강헌은 "홀리데이" 노래를 들으면서 창문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는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그때 경찰특공대가 진입했고, 경찰은 총을 쏘았습니다. TV 생중계가 되는 가운데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뜻과 의미

 

지강헌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 기간은 7년을 넘지 못하게 바뀌었습니다. 사회보호법이란, 형기를 마친 사람에게도 추가적인 감금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정치인과 부자 등은 형기를 제대로 마치기도 전에 교도소를 나와서 뻔뻔스럽게 활동하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생존자 강영일 탈주범 - 유전무죄 무전유죄 뜻과 의미
생존자 강영일 탈주범 - 유전무죄 무전유죄 뜻과 의미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뜻은 "돈 있으면 죄 없고, 돈 없으면 죄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 전에도 사용되던 말이었지만, 이 사건 이후 전 국민이 알게 된 말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는 전 국민이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정의를 깔아뭉개는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한편 다른 탈주범 7명의 도주는 계속되다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그중엔 안암동 인질극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때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강영일은 형기를 끝까지 마치고 사회로 출소했다고 합니다. 인질극이 있었던 북가좌동 집은 흉가가 되었기에 교정당국이 매입해서 지방 교도관들의 자녀를 위한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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