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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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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키스세븐지식 2024. 5. 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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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1971년의 크리스마스, 이 날 명동의 대연각 호텔 빌딩은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화재로 인해 191명이 죽고 68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화재를 견딜 수 없어서 고층에서 뛰어내려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대연각에 불이 난 원인과 위치, 사망자 사연 등에 대한 사건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추가로, 가요 "젊은 연인들"을 불렀던 서울대트리오의 사연을 알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에서 보면 됩니다)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과 사망자

 

대연각빌딩 위치와 화재 원인

 

1970년대, 대연각호텔은 명동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였습니다. 대연각의 뜻은 "大(큰 대), 然(그러할 연), 閣(집 각)"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然은 "당연", "우연", "자연" 등에 사용되는 한자이기도 합니다.

 

대연각 호텔의 위치는 서울 중구 충무로동이었는데(현재 고려대연각타워가 있는 곳), 이곳은 이미 1947년에 히라다백화점, 그리고 1959년에는 고미파 캬바레가 화재로 불탄 자리였습니다. 1969년, 극동건설에 의해 지상 21층, 지하 2층, 총 222개의 객실을 갖춘 마천루 빌딩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약 1년 후인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비극이 벌어집니다.

 

호텔 대연각빌딩 위치 - 화재 원인과 사망자
호텔 대연각빌딩 위치 - 화재 원인과 사망자 ⓒ www.kiss7.kr 편집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이 원인 액화석유가스의 폭발입니다. 그날 오전 9시가 넘어서 1층 커피숍에서 화재가 시작됐는데, 프로판 가스통에서 불이 옮겨붙었습니다. 온통 가연성 물질이었던 내장재, 한지로 된 벽지, 목재로 된 인테리어와 문 등으로 인해 불길은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

 

스프링쿨러 같은 소화 장비는 없었고, 불이 나자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멈추었습니다. 더욱이 비상구와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대부분 잠겨 있었습니다. 빌딩 내부는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불길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오히려 대피로를 막아버렸습니다.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대피할 통로가 모두 막혀 버린 상황... 대연각호텔 화재사고 당시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었습니다. 5층까지는 옆에 다른 건물이 붙어 있어서 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6층 이상 21층까지는 탈출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소방관 등 2000명에 가까운 구조팀이 출동했지만, 당시 고가 사다리 소방 차량은 최대 32m, 즉 7층밖에 닿지 않았습니다. 급하다 보니 주변 국궁 궁사들을 동원해서 화살에 구출용 로프를 묶어 쏘기도 했지만, 로프가 무거워서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줄을 타고 내려오던 당시 상황 -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줄을 타고 내려오던 당시 상황 -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 KTV

 

그나마 대피가 가능한 5층까지의 피해자들은 커튼과 시트를 뜯어서 줄을 만들어 옆 건물로 타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내려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닌 높은 층 피해자들은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가고, 옆 건물로 갈 대피로를 찾고, 창문을 열어 겨우 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옥상 문은 잠겨 있어서 20여 명 이상이 옥상 입구까지 올라오고도 죽고 말았습니다. 미8군 헬기와 대통령 전용 헬기까지 출동했지만, 호텔 측은 옥상에 헬기가 내릴 장소도 만들지 않았었고, 다급한 사람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줄을 몸에 감지 않고 손으로만 잡고 올라가다가 2명이 추락해 죽기도 했습니다.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

 

질식사의 위기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추락사로 38명이 죽었습니다. 건물 주변에는 추락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있었고, 시내 중심가에 쇼핑 나왔던 사람들은 이 참혹한 지옥의 모습을 그대로 봐야만 했습니다.​​

 

이때, 주한 대만 대사관 공사, 주한튀르키예 대사관 대령,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자 김성술, "젊은 연인들"의 원곡을 불렀던 훜스라는 듀엣그룹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으로 죽었습니다.

 

대연각빌딩 화재사건으로 사망자 발생
대연각빌딩 화재사건으로 사망자 발생 ⓒ KTV

 

그중에는 한 여성이 8층에서 침대 시트를 타고 뛰어내려서 살아난 기적도 있었습니다. 발목 부상만 입고 살았지만, 운이 아주 좋은 경우였을 뿐, 매트리스는 충격을 흡수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게 되었습니다.​

 

7층의 한 종업원은 죽을 위기에서 객실의 사람들을 전부 깨워 옆 건물 옥상으로 피신시켜서 50명이나 탈출시키는 영웅적인 일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연각 화재 사고는 너무나 큰 대참사였기에 완전 진압에 7시간이나 소요되었고, 시체 발굴 및 수습에도 18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또 다시 반복된 화재 사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의 사망자는 166명, 실종 25명, 부상 68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화재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이며 호텔 화재 중 최대 사망 사고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소방과 안전 의식이 없던 시대의 비극
소방과 안전 의식이 없던 시대의 비극 ⓒ KTV

 

나라 전체가 대형 사고와 많은 인명 피해로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보수 여당이었던 박정희의 공화당은 진보 민주 진영 사람들을 잡아넣기 위한 국가보안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하지만 추모 열기 때문에 국보법 통과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론이 국민 참사보다 정권이 먼저냐는 비판을 했지만 묵살되고, 1984년 부산에서 대아관광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사망자 38명과 부상자 68명이 발생하는 복사판 참사가 다시 이어지는 비극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 화재, 1974년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사고 역시 인재가 참사를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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