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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 추방 사건과 보츠와나

키스세븐지식 2019. 3. 3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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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 추방 사건과 보츠와나]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세기의 로맨스 이야기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서양 일화인 것은 문화적 영향력이 커서 알려질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가 추방되어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는 세기의 로맨스도 있습니다. 결국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이 된 세레체 카마의 이야기와 보츠와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

아프리카의 나라들의 이미지는 뜨거운 환경과 내전과 독재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보츠와나는 그런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서 유독 제대로 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여기에는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가 독재의 욕심을 버리고 정치를 했던 역사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민주주의 지수가 프랑스나 대만보다도 높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보츠와나의 정치, 경제는 제법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첫 대통령 세레체 카마는 왕위 대신 대통령이 되어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보츠와나 대통령과 가족들 [보츠와나 세레체 카마 아프리카 왕자 추방] / ⓒ dailymaverick.co.za)

그래서 눈길이 가는 사람이 아프리카 보츠와나 왕자였지만 추방당했던 세레체 카마(Srertse Kham)라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보츠와나 대통령이 될 세레체 카마와 영국 여인 '루스 윌리엄스(Ruth Williams)'와의 사랑이야기는 세기의 로맨스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구석의 흑인이었고 애인은 영국 백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종적인 문제 때문에 양쪽 국가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는 1950년대의 큰 이슈가 되었었습니다. 이 일화는 '아마 아산테' 감독의 <오직 사랑뿐>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연 댄스파티에서 한눈에 반한 두 사람... 당시 보츠와나는 독일제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부족들이 합의하여 영국의 보호령 안에 들어갔고, 세레체 카마 왕자는 그 부족 중 바망와토족의 왕자였습니다. 루스 윌리엄스도 평범한 은행원에 불과했지만, 식민지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던 영국인의 눈에는 그저 검은 피부의 이방인일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1년 간의 연애를 한 후에 결혼을 약속했는데 양쪽 국가에서 서로 이상한 사람과 결혼하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범 국가 위치 [보츠와나 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 추방] / ⓒ TUBS, 편집 www.kiss7.kr)

영국의 보호령이었기에 세레체 카마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며 엘리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은 히틀러의 유대인 차별을 비난하면서도 자신들도 유색인 인종차별을 하는 나라였습니다.
영국의 인종적 반대도 있었지만 보츠와나의 반대는 관습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귀국하여 귀족회의 '고틀라'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2002년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했던 연설처럼 명연설로 원로들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영화 <오직 사랑뿐>의 실화가 바로 그때의 사연입니다.

 

 

​영화 오직 사랑 뿐 실화

​양가의 허락으로 겨우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아프리카 왕자와 영국 처녀에게는 새로운 시련이 닥쳤습니다. 이웃국가 남아공의 영국보다 더 심한 인종차별이었습니다. 남아공은 1950년대를 전후하여 인종 간의 결혼 뿐 아니라 시설 사용까지도 금지하고 차별하는 법을 만들어냈습니다.
남아공은 흑인의 결혼을 핑계 삼아 보츠와나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영국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영국으로 추방당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옆 나라의 압력 때문에 추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영화 오직 사랑뿐 실화 [보츠와나 세레체 카마 아프리카 왕자 추방] / ⓒ 엠마 아산테)

1951년 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는 추방되면서 약소국의 한을 느껴야 했습니다. 몇 년 후, 영국에서 결혼해 살던 그와 부인은 겨우 허락을 받아서 개인 자격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평민으로의 삶을 시작했지만,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잊지 못하던 세레체 카마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당시 보츠와나는 "영국령 베추날랜드"로 불렸는데,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마침내 1966년 영국에서 독립하여 보츠와나로 나라 이름을 바꿉니다.

 

아프리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민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된 세레체 카마는 다른 독립국가의 대통령들과 달랐습니다. 백인과의 결혼으로 추방당한 아픔은 지독한 인종차별 국가였던 남아공에 대한 저항처럼 남았고 어떡하든 못 사는 나라를 살려야겠다는 열매로 남았습니다.
다른 독재자들이 사치스러운 삶을 살다가 내전을 겪었던 것과 달리 복지에 치중하고 교육과 사회시설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다이아몬드 수출 외에는 제대로 된 산업이 없던 후진국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각 부족을 통합하여 내전으로 국민들끼리 죽이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세 대통령. 오른쪽 현 대통령은 1대 대통령의 아들이다 [보츠와나 아프리카 왕자 세레체 카마 추방] / ⓒ blackfilm.com)

보츠와나 대통령 세레체 카마의 모범이 있었기에 보츠와나에는 '마시레이'같은 정치인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2대 대통령인 그는 다른 나라처럼(또는 우리나라 독재 때처럼) 종신 대통령을 노릴 수 있었지만 야당의 요구에 응해서 스스로 대통령에서 내려왔습니다. 종신 대통령 금지 법안을 만들고 권력을 포기한 것입니다. 보츠와나는 이런 민주주의적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박해를 문제 삼으며 북한과의 수교도 끊게 됩니다.
영화 오직 사랑뿐의 실화인 보츠와나 대통령 세레체 카마는 왕자에서 추방당한 평민의 삶을 살았고, 세기의 로맨스라는 관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옳은 가치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냈다는 점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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