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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의 나라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이 되어야했던 이유

키스세븐지식 2015. 3. 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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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의 나라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이 되어야했던 이유]  



스위스, 영세중립국이 되다  

스위스는 잘 알려진 영세 중립국입니다. 즉 영원히 중립국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에서 영세 중립국은 단 3개국이 있습니다. 

스위스가 19세기에, 오스트리아가 2차 대전 이후에, 동남아시아의 라오스가 1960년대에 각국으로 부터 영세중립국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영세중립국은 주변국의 동맹에 참여하지 않으며 중립국 정책을 유지하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국가를 말합니다.  

스위스는 대외관계상의 국호입니다. 정식 국호는 헬베티아연방입니다. 우리나라도 대외적으로는 코리아를 쓰지만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인 것과 같습니다. 

중세 이전엔 로마제국, 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으나 13세기에 몇 개 지역이 동맹을 맺었는데 이때 동맹을 주도한 스위스지역의 이름이 지금의 스위스라는 명칭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스위스발음으로는 슈비츠입니다.  반면 헬베티아연방이라는 정식 국호는 기원전 5세기 경에 정착한 켈트족의 이름인 헬베티족에서 유래합니다. 

13세기에 동맹체가 생겼지만 이후로도 스위스는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는 입장이었고, 겨우 15세기가 되서야 신성로마제국의 침략을 이겨내고 독립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스위스는 못살고 힘없는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프랑스 혁명정부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을 마무리 짓는 바젤조약에서 스위스는 마침내 영세중립국 지위를 얻어냈습니다.  






가난해도 용맹한 용병의 나라 스위스  

스위스는 산악지형이므로 농업과 공업에서 불리하였고, 더구나 강대국의 틈바구니인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사이에서 불안한 안보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적자원을 수출하여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그 것이 바로 유명한 스위스 용병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시민혁명 때 루이16세를 목숨을 바쳐 지켰다든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을 구했다든지 하는 용맹한 스위스 용병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스위스용병들은 프랑스혁명과 바티칸 사수전에서 전멸을 당하는 위험에서도 끝까지 목숨을 바치며 싸워서 유럽 최고의 용병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로 로마교황청은 아직도 스위스 출신의 근위병만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산업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는 조건의 가난한 나라 스위스는 용병을 수출해서 외부의 자금을 벌어 들였습니다. 스위스의 아들들과 가장들은 생명을 담보로 조국과 가족의 경제를 먹여 살렸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과 바티칸 사수전에서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죽음을 택하여 싸운 것은 이러한 스위스의 어려움이 깔려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전멸을 직면한 스위스 용병대의 사령관은 "지금 물러서면 스위스 용병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서 다른 용병들도 더 이상 고용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조국 스위스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스위스 용병들은 그 용맹함을 인정받아 많은 유럽국가에 고용되어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스위스가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이런저런 전쟁에 끼어든다면 용병들을 수출한 스위스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맙니다. 스위스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면 반대편 국가들이 이미 고용한 용병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교황청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는 용병수출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은 영세중립국  

이런 국제적 상황 때문에, 그리고 약소국이었던 상황 때문에도 스위스는 전쟁에 끼어들 수 없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 때도 2차 세계대전 때도 스위스는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영세중립국이란 선택을 하는 것은 스위스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는 스위스로 우회하여 독일을 공격하려 하였지만 스위스는 이를 허용하지 않아서 세계대전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스위스의 교량과 터널을 통해 빠른 진격을 원했었지만 침략하면 독일이 필요로 하던 터널과 도로를 다 폭파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살아남았습니다. 


당시에 같은 중립국이었던 벨기에가 침공 당한 것과 비교할 때, 만일을 대비해 국경지역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 놓고 결사항전을 선언한 스위스의 결단력은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스위스는 필요시에 언제든지 교량과 도로, 터널을 폭파해 버릴 수 있게 건설한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땅으로 만들어서 적국의 침략이익이 없어지도록 하는 전략입니다.  





자주국방이 중립국을 유지하게 해 준다  

그렇다고 스위스의 국방력이 약한 것도 아닙니다. 
전체 인구 800만 명 중 10%는 언제라도 침략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방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스위스 병력은 기간병, 예비군을 합하여 20만 명 이내이지만 이것은 근래에 병력을 줄인 숫자이고 과거엔 60만여 명을 운영했었습니다. 

급작스런 전쟁을 대비해서 예비군들에게는 실탄을 제외한 소총을 지급하여 집에서 관리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알만 지급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스위스의 주택과 빌딩 중 95%는 폭격을 대비한 반공호를 가지고 있어서 핵공격을 받아도 몇 개월은 버틸 수 있는 방어시스템도 있습니다. 

가난했던 역사적 입장 때문에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상황이 스위스를 영세중립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러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상황에 맞는 외교를 함으로서 현대의 스위스는 얕볼 수 없는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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