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사건의 비둘기
안유 검사, 한재동, 전병용 교도관
지금은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40년 전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죽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세상을 바꾼 사건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세상에 알린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40년 전처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박종철 사건의 비둘기로 알려진 전병용, 한재동 교도관과 안유 검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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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동, 전병용 교도관, 안유 검사 - 박종철 사건의 비둘기
박종철 사건의 한재동, 전병용 교도관
대체로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 언론 및 시민 감시율이 높아집니다. 더구나 독재정권 시대에는 그 살벌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아도 서로 전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때 그 소식을 밖으로 전달한 사람들을 교도소의 비둘기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1986년에 전국에 수감된 민주화 투쟁 사범들은 무려 2800여 명이나 됐습니다. 교도소는 소통에 검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부의 감시 때문에 진실을 알아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즉, 검열을 피해서 교 도소 밖으로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비둘기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영화 '1987년'을 보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실을 알린 교도관과 고문경찰관의 실체를 전한 보안계장이 나옵니다. 이들은 '한재동', '전병용' 교도관과 '안유' 검사를 모델로 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재야인사인 '김정남'에게 사실을 알리는 데에 성공하고, 결국 전국적 항쟁의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민주화 중심의 이부영
전체적인 흐름은 이렇습니다. 안유의 정보 → 이부영의 활동 → 전병용, 한재동 교도관의 전달 → 김정남의 계획 → 신부 김승훈의 폭로로 이어집니다. 만약 이 과정이 차단당했다면, 국민들은 진실을 모르고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정부의 검열 속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하게 될 '이부영'은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5.3 인천항쟁'의 배후 조종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여러 정보들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물고문하다가 죽여 놓고는 갑자기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박종철 사건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고문 경찰 둘이 구속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고위직 고문 경찰 대신 희생당한 하위 경찰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자주 그들을 면담하러 왔고, 책임지고 구속되어 주면 바로 사면시켜 주겠다며 돈 등으로 회유했습니다. 그들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검경의 가짜 발표가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안유에게서 시작되다
당시 안유 검사는 구속된 경찰관을 면회 온 자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이부영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은 진짜 고문 경찰관이 3명이나 더 있고,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시 시국사범들이 구속되어 있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이부영을 통해서 요구조건을 추진했었습니다. 이부영은 교도소에서 재소자 대표로 협상을 하곤 했기에 안유와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둘은 이미 많은 대화로 친분이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이부영은 아는 사이인 한재동에게 필기 도구를 부탁했습니다. 정부의 눈을 피해 편지를 쓸 수 있게 도운 한재동은 다음 날 다시 그에게 갔습니다. 쇠창살을 잡고 얘기하던 중, 이부영이 한재동의 소매 속에 편지를 쓰윽 밀어 넣었습니다. 김정남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로 우리는 죽을지도 모르니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박종철 사건 비둘기 전병용, 한재동
편지를 받아든 교도관 한재동... 그는 처음에는 동료 교도관이었던 '전병용'에게 부탁해서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전병용은 교도관을 그만두고 경찰에 쫓기는 중이었습니다. 민주열사들을 숨겨줬다가 추적을 받게 된 것입니다. 김정남 역시 수배 중이었기에 둘이 만나기도 어려웠습니다.
김정남이 먼저 연락하기 전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상황.. 마침내 3월 15일에 만날 수 있게 되는데, 이틀 후 전병용이 검거되었으니 아찔한 위기를 겨우 넘긴 것입니다. 그 후, 두 번째 이부영의 편지는 한재동이 직접 전달했습니다. 박종철 사건의 비둘기인 전병용, 한재동의 역할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님이 특별미사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부영의 편지를 가지고 김정남이 작성한 것입니다. 고문경찰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던 진실이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정부는 당혹해했고, 전국에서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종철 사건의 숨은 뒷이야기
한편, 그때까지도 교도소에는 경찰 관계자들의 방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책임지고 희생하라는 회유 때문입니다. 안유의 증언에 의하면, 무려 1억 원의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제시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흉계는 완전히 들통이 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보수당에서 정치를 하게 될 '안상수' 검사는 이 사건의 조사로 진실을 밝힌 검사로 알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재동의 증언에 의하면, 사실은 정식 수사를 미루며 덮으려고 했던 건데 떠밀려서 수사를 더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즉, 그의 실제 본의와 다르게 진실 검사로 유명해져 버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박종철 사건과 교도관 비둘기 한재동, 전병용의 스토리는 실제 영화보다 훨씬 살벌한 과정을 거쳐서 알려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우는 보수 인사가 많으니, 당시 같으면 무조건 남영동 고문수사실에 끌려가서 죽을지 모를 고문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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