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종칠금
제갈량과 맹획의 고사
[칠종칠금 뜻과 유래 - 삼국지 제갈량과 맹획(남만 왕)의 사자성어]
七縱七擒과 삼국지연의의 유래를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남만 왕 '맹획'과 최고의 두뇌 '제갈량'이 등장합니다. 칠종칠금의 뜻과 유래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전투에서 나온 말입니다.
더불어, 실제 역사와 삼국지연의에서의 배경지식과 사건, 촉한과 남만의 전쟁 이야기 등도 함께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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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종칠금 뜻과 역사
먼저 알아둬야 할 사전 지식을 설명합니다. 실제 인물 '제갈량'은 서기 200년 전후에 중국에 살던 인물입니다. 서기 225년에 제갈량이 벌인 남만 정벌이 역사적 배경이며, 3세기에 쓰인 정사 '삼국지'와 14세기에 쓰인 '삼국지연의'에서 유래합니다.
어떤 이는 남만이 지금의 베트남이고, 실제 인물 '맹획'은 베트남인이라고도 말하지만, 이것은 중국이 항상 지금의 영토 크기였을 거라는 착각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과거의 중국은 본토의 일부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맹획 역시 중국 남부 사람일 것입니다.
"칠종칠금"의 뜻은 "일곱 번 놔주고 일곱 번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자성어 한자는 七(일곱 칠), 縱(놓을 종), 七(일곱 칠), 擒(잡을 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상대가 진정으로 승복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풀이하자면, 내가 힘이 강하다고 상대를 함부로 꺾는 것보다는, 상대가 마음으로 나를 이해할 때까지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도 능력일 것이니, "상대편을 내 마음대로 요리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갈량과 맹획의 전투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은 유비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위나라를 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쪽에 반란군이 있으니, 이를 먼저 해결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먼 거리의 적들은 호시탐탐 촉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니, 제갈량은 이 전쟁에서 완전한 승복을 목적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드디어 전투가 붙고, 첫 번째 싸움에서 제갈량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맹획은 속아서 잡힌 것이니 진짜 실력이 아니었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제갈량은 맹획을 풀어주고 다시 붙자고 했습니다. 두 번째 싸움에서는 내분으로 졌는데, 이 역시 제대로 싸운 것이 아니었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다시 붙은 세 번째 전투에서는 작전이 실패해 잡혔는데, 동생 때문에 잡힌 것이니 무효라고 했고, 네 번째 전투에서도 졌지만, 제갈량이 싸우질 않고 계략만 쓰니 불공평하다고 풀어 달라고 떼썼습니다. 제갈량은 계속 맹획을 풀어주고, 다섯 번째 전투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배신으로 잡혔으니 옳지 않다고 하고, 여섯 번째 전투에서도 잡혔으나 작전의 실패였으니 제대로 싸워봐야 한다고 합니다. 역시 제갈량은 그러면 다시 붙어보자며 또 풀어줬고, 드디어 일곱 번째 전투에서 맹획의 전 병력을 전멸시키면서 완전히 이기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칠종칠금 유래와 문제점
제갈량과 맹획의 전투는 정사 삼국지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삼국지에는 맹획이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칠종칠금이란 말도 없습니다. 실제 역사서인 삼국지에서는 그저 제갈량이 남정했다고만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자치통감'과 '삼국지연의'에 나올 뿐입니다.
약 8백 년 후의 역사책인 자치통감과 약 1100년 후의 소설책인 삼국지연의에 적힐 때까지, 이 이야기는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칠종칠금의 유래는 실제로는 천 년 전후의 나중에 쓰여진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맹획은 오지에 사는 흉물스러운 장수로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서 그는 중국 초나라 사람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가 살았다는 익주군은 지금의 운남성이며, 지도상으로는 양쯔강 아래의 중국 영토입니다. 그러므로 베트남인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소설의 마지막 7번째 전투에서 제갈량이 화약을 터트려서 포위된 맹획의 병사들이 모두 끔찍하게 불에 타죽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약이 실제 전쟁에 사용된 것은 13세기이므로, 삼국지연의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과장되게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맹획과 제갈량의 칠종칠금
실제 전투에서 최고 사령관이 일곱 번 잡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맹획과 제갈량의 칠종칠금 유래의 뜻은 그저 상징적인 표현이거나 재미를 위한 과장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진정한 승리는 인내심에서 온다"는 것을 의미로 삼는다면 기억할만한 고사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제 역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국인들은 주변 나라들을 오랑캐라고 불러왔는데, 실제 남만왕 맹획이 살던 곳은 중국 남부였는데도 오랑캐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중국 남부인들도 다 오랑캐이며, 고대의 중국은 지금 영토보다 매우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사인 역사책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지만, 삼국지연의, 한진춘추, 화양국지, 자치통감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완전한 허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인의 특성상, 몇 번 잡히거나 했던 것을 과장하여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어쨌든, 맹획과 제갈량의 칠종칠금의 뜻은 이 사자성어를 통해 제갈량이 진정한 승복을 받아내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를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후로 남만의 반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서 제갈량은 위나라 공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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