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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2021. 1. 17.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aalmeidah

 

처칠과 찰스 모린

정치가이며 문학가이며 화가였던 처칠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세계 역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유명 정치인을 다섯 명 꼽자면 처칠, 루스벨트, 히틀러, 스탈린, 드골을 꼽을 것입니다. (물론 태평양 전쟁이 아닌 유럽 전쟁에서)

윈스턴 처칠은 정치가였지만, 문학가와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초기에는 이미 죽은 화가인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었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화가 처칠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가 왜 그림을 좋아했는지, 그것을 알려고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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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의 그림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Bettman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수상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연설과 글, 그리고 시가로 유명합니다. 보통, 그의 성격을 고집불통이고 불같으며 독설을 내뿜는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화가 처칠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그 뒤의 있던 그의 인간적인 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53년 노벨 문학상도 받았지만, 마음의 위안을 받은 것은 그림이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그림을 좋아했던 처칠과 히틀러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처칠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40대가 넘어서였습니다. 1915년 내각에서 사임 당한 뒤, 1920년대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해군 장관이었는데,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 실패하면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등 소일거리를 하던 처칠은 어느 날 아이들이 상자에 그려 놓은 낙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 그는 공원에 나가 풍경화를 연습하곤 했고, 화가 '존 레버리'의 부인 '하젤'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찰스 모린이 된 처칠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그가 그림을 그려야 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집 근처에는 기차가 지나는 철길이 있었는데, 갑자기 난간에서 철길로 뛰어내릴까 봐 스스로 겁을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자식들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거나 불행하게 죽기도 했습니다. 처칠은 그림을 통해서 집중의 시간과 생활의 여유를 가지고 싶었나 봅니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그러던 중 1921년, 화가 처칠은 한 전시회에 자신의 풍경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본명이 아니라 찰스 모린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습니다. 찰스 모린은 영국 아마추어 미술전시회에서 1위를 했었다고 설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그림이 처칠의 그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그림은 이미 얼마 전에 다른 전시회에 처칠의 이름으로 걸렸던 그림임에도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않아서 알아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처칠이 그림을 그린 이유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화가 '찰스 모린'은 1919년에 죽은 프랑스의 풍경화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왜 이미 죽은 화가의 이름으로 전시회에 그림을 걸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뾰족한 설명을 알 수 있는 문서가 없습니다. 다만...

 

화가 처칠이라고 부르지만, 윈스턴 처칠 자신은 스스로 전문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취미로 그림 아마추어 그림이라고 표현했으니,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실제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현재 미국에서 화가 및 조각가 활동 중인 처칠의 손녀 증언에 의하면 그림 솜씨도 괜찮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가 처칠의 그림을 보고는 그림으로 먹고살아도 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처칠은 주로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듯이 그림을 그려오곤 했다는 것입니다. 화가 처칠은 평생을 통해 500점의 그림을 그렸고 후반에는 그냥 자신의 이름 그대로 그림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처칠 그림 가격과 본질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현대에 들어와서 처칠의 그림은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적어도 2억~3억 원에 이르며, 최고 30억 원에 불리기도 합니다. 물론 역사적 인물이 그림이라는 플러스 요소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전문 화가들은 처칠의 그림을 보고 잘 그리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칠의 그림을 사는 사람들은 처칠의 우울증과 정치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화가 처칠 - 찰스 모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까닭. 처칠의 그림 가격 / ⓒ Winston Churchill

처칠은 죽어서 저승에 가면 첫 번째 백만 년 동안은 그림만 그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화가 처칠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불랙 독이라고 불렀던 우울증과 스트레스에서의 해방이기도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찰스 모린이 풍경화 화가였듯이 윈스턴 처칠도 인물화는 그리지 않고 풍경화만 그렸습니다. 사람들이 인물화도 그려보라고 하면, 그는 나무들은 실물과 다르게 그려도 불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구나 하고 놀라지만, 처칠 스스로에게는 절박한 피난처였던 것입니다.

 

만약 지금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중이라면, 처칠처럼 그림을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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