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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작전(예리코 작전) - 아미앵 교도소 폭격 작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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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작전(예리코 작전) - 아미앵 교도소 폭격 작전

키스 키스세븐 2019. 9. 2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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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작전(예리코 작전) - 아미앵 교도소 폭격 작전] 

6.25 한국 전쟁 때 장사리 전투가 있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장사 상륙작전이라고 합니다. 이 작전은 사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어린 학도병들을 희생시킨 작전입니다. 물론 고의적 희생이라는 사실은 지휘부만 알고 있었습니다. 

장사리 상륙작전처럼 고의적 희생을 치른 전투가 제리코 작전입니다. 이 작전 역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연합군의 희생을 알고도 폭격을 감행한 작전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치졸한 작전이었습니다. 프랑스 아미앵 교도소 폭격 작전인 예리코 작전을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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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작전 - 아미앵 교도소 폭격작전 


제2차 세계대전은 1944년 6월 6일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준으로 나치 독일의 패망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직전인 1944년 2월, 독일군이 점령 중이던 프랑스 '아미앵'의 교도소 폭격작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저항군인 프랑스 레지스탕스 포로들과 프랑스 장교들이 잡혀 있었고,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잡힌 스파이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 비밀정보부에 첩보가 입수됩니다. 곧 대대적인 처형이 있을 것이니 구해 달라는 프랑스 저항군의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사진: 일명 여리고 작전의 아미앵 교도소(일명 여리고 작전의 아미앵 교도소 [예리코(제리코) 작전 폭격] / ⓒ siqik.com)



이미 12명이 처형되었으며 곧 수백 명이 처형될 것이라는 교도소 내부 포로들의 요청이 영국에 접수되자, 연합군은 '제리코 작전' 계획을 세웁니다. 제리코(Jericho)는 영어식 발음인데, 어원인 아랍어로 한다면 "예리코"입니다. 성경에서 '여리고 성'이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그대로 한다면 '예리코 작전'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접한 정보에 의하면 프랑스 아미앵 교도소에 수감된 반독일 수감자의 수는 717명이었으니, 대규모 작전이 필요해졌습니다. 



지금에야 구출작전이라고 하면 특수부대가 투입된 첨단 긴급 작전이 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교도소이기 때문에 높은 성벽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뚫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국군이 주축이 된 사령부에서 결정한 것은 폭격으로 성벽을 무너트리고 수감자들을 위해 탈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무식한 작전을 편다면 연합군의 포로들도 많이 죽고 다칠 것이므로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놔둔다면 어차피 사형당할 것이니 실행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사진: 교도소 벽을 폭격하는 당시 실화 사진 과 상세 그림(교도소 벽을 폭격하는 당시 실화 사진 과 상세 그림[아미앵 교도소 폭격 작전] / ⓒ RAF)



영국, 호주, 뉴질랜드 지휘부가 주축이 된 작전팀은 경비대원들이 12시에 한 곳에 모여 식사를 한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점심시간에 폭격을 가한다는 계획을 세운 뒤 19대의 '모스키토 폭격기'와 12대의 호위 전투기를 동원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최종 작전 결정이 작전 마감 시간을 겨우 2시간 앞두고 결정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출발했던 항공기 중 5대는 고장 등의 이유로 그대로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예리코 작전 - 노르망디 상륙을 위한 양동 작전 


487 전대는 교도소 외벽을 부수기로 하고 464 전대는 경비대원 집결 장소를 폭격하기로 했습니다. 만약에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으므로 21 전대가 예비로 따라가서 2차 폭격을 준비하려는 작전도 세웠습니다. 

이들은 11초간 지연시간이 되는 장치가 된 폭탄을 사용했는데, 한쪽 벽을 부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동쪽의 성벽을 무너트리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폭격을 하기 위한 시도에서 수많은 수감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독일 전투기의 공격으로 꼬리가 잘리고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사진: 당시 항공촬여에서 실제로 촬영된 여리고 작전의 장면(당시 항공촬여에서 실제로 촬영된 여리고 작전의 장면 [제리코(예리코) 작전 폭격] / ⓒ Unknown)


프랑스 아미앵 교도소의 제리코 작전(예리코 작전)으로 258명의 포로들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79명의 장교 등 102명이 폭격으로 죽고 74명이 부상을 입었으니, 정말이지 무식한 폭격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탈출을 뒤쫓는 독일군을 지연시키는 작전도 벌여서 2시간의 시간을 벌였지만, 탈출한 포로들은 이틀 만에 다시 잡혀서 182명이 처형당했습니다. 그래도 영국군은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했지만, 프랑스군은 이 작전에 엄청난 분노를 터트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아미앵 교도소 내의 프랑스 저항군의 요청이 있었다는 영국의 발표와 달리 포로들은 폭격 예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포로의 요청에 의해 영국군이 폭격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독일군이 대규모 처형을 계획했다는 문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처음부터 처형 계획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교도소에 영국군 포로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포격작전의 영국 폭격기 모스키토(포격작전의 영국 폭격기 모스키토 [여리고 작전 폭격] / ⓒ starsinsider.com)



예리코 작전(제리코 작전)은 1969년 영국 영화 <모스키토 전대>의 모티브가 되었고, 2011년 영국 BBC TV의 다큐멘터리에서도 다시 조명이 되었습니다. 

연구가들은 아미앵 교도소 폭격작전이 장사리 상륙작전처럼 양동작전 중 하나라는 의견을 냅니다. 대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독일의 관심을 돌리려고 벌인 작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국인의 피해 없이 프랑스인 장교와 레지스탕스만 있는 교도소를 골라서 폭격한 셈입니다. 물론 영국은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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