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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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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

키스세븐지식 2017. 5. 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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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

특수부대라고 하면 일면 멋있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6.25전쟁 중 특수임무를 하던 특수부대는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워야했습니다. 그 중에서 북한 침투까지 했던 네코부대는 6006부대 소속의 첩보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부대 특성상 역사에서는 지워진 그들입니다.


[글의 순서]
1. 6.25전쟁 중  6006부대
2.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
3.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



6.25전쟁 중  6006부대


요즘엔 특수부대, 첩보부대라고 하면 특별한 훈련을 받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멋진 활약을 하는 영화를 상상합니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의 첩보부대는 체계적이지 못한 부대원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희생을 무릅썼던 특수부대였습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갑작스런 6.25전쟁 등의 혼란스러운 역사 때문입니다. 

사진: 네코부대로 알려진 사진. 희귀한 사진으로 당시 네코부대원들의 모습이 실려있다. [6.25전쟁 중  6006부대](사진: 네코부대로 알려진 사진. 희귀한 사진으로 당시 네코부대원들의 모습이 실려있다. [6.25전쟁 중 6006부대] / ⓒ donga.com)

흔히 알고 있는 6.25전쟁 때의 특수부대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도 나왔던 '켈로부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켈로부대가 처음부터 정식명칭은 아니었고, 레오파트부대, 동키부대 등 KLO의 지원을 받는 부대들을 말하는 명칭입니다. 그 외에도 반공을 목적으로 청년들끼리 조직한 무력투쟁 단체들도 많았습니다. 
'네코부대'는 미국 공군 '6006부대'의 지원을 받는 첩보부대였습니다. 한국군이 주력이었지만, 미공군 소속의 특수부대입니다. 

사진: 6.25전쟁 중 시가전 모습. 시가전은 정규부대의 공방전이지만, 첩보부대는 비정규부대로서 특수임무를 맡는다. [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사진: 6.25전쟁 중 시가전 모습. 시가전은 정규부대의 공방전이지만, 첩보부대는 비정규부대로서 특수임무를 맡는다. [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 / ⓒ Hohum)

6006부대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 북한에서 특수임무를 시행하기 위해서 편성된 부대입니다. 미 공군소속이기 때문에 한국의 내막을 잘 알기 위해서는 한국인 군인들이 필요했고, 특히 이북을 잘 아는 북한 출신의 부대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6006부대 산하의 네코부대원들은 북한에서 월남한 부대원들이 많았고, 20특무전대같은 한국군과의 합동작전도 있었습니다. 네코부대는 부대장 '도널드 니콜스'가 지휘를 했습니다. 

사진: 현대 특수부대의 훈련모습. 남북한은 침투작전 등에 대비한 부대 수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6.25전쟁 중  6006부대](사진: 현대 특수부대의 훈련모습. 남북한은 침투작전 등에 대비한 부대 수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6.25전쟁 중 6006부대] / ⓒ Korea Army)



명칭이 네코부대인 유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도적 역할을 한 부대장 도널드 니콜스의 약칭이 "닉"이었는데, 이것을 한국인들이 잘못 알아듣고 네코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설은 6006부대가 첩보부대인만큼, 부대장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행동하여 고양이 같다는 의미로 일본어 "네코"부대로 불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의미로든 니콜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


6006부대 산하 네코부대의 활약상 중 유명한 일화는 최신예 탱크와 전투기의 정보를 알아온 첩보활동이 있습니다. 첩보부대는 아군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인데, 네코부대의 활약으로 인해 실제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은 주력 무기인 'T-34탱크'를 이용한 절대 우위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미군은 1950년 7월에 'F-51D'기 10대를 대구기지에 급히 보냈습니다. 

사진: 북한군의 주력무기인 T-34탱크. 네코부대는 이 T-34 탱크의 부품과 매뉴얼 등을 탈취하여 다부동전투의 승리에 기여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사진: 북한군의 주력무기인 T-34탱크. 네코부대는 이 T-34 탱크의 부품과 매뉴얼 등을 탈취하여 다부동전투의 승리에 기여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 / ⓒ Radomil)



F-51D는 T-34탱크에게 로켓탄으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면 장갑이 워낙 뛰어나서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와 한국공군의 '20특무전대'에는 이것을 해결할 첩보활동을 하라는 특수임무가 떨어졌습니다. 
이들은 경북 경산군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탱크 부품과 매뉴얼 등을 탈취하여 왔습니다. 이를 토대로 긴급 분석작업에 들어간 UN군은 T-34 탱크에게는 '네이팜'이 최적의 공격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작전으로 인해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전투인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T-34 탱크의 내부 조종석 모습. 관리가 잘 되지 않은 최근 사진이지만, 과거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사진: T-34 탱크의 내부 조종석 모습. 관리가 잘 되지 않은 최근 사진이지만, 과거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 / ⓒ Pitkäkaula)



또 하나의 특수임무는 최신예 전투기인 '미그-15'기에 대한 6006부대의 첩보작전이었습니다. 6.25전쟁 동안 UN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닐 때가 있었습니다. 
1950년 11월, 압록강 진격작전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소련제 미그-15기 때문에 쇼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이때의 쌍방 피해율이 1:1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소련과 중공의 기록에 의하면 미공군기의 피해율이 3배를 넘었습니다. 미국은 부인하지만, 어찌되었든 매우 심각해진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이때 네코부대의 특수임무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소련제 미그-15기 모습. 6.25전쟁 당시 최신예 전투기로서 미공군의 제공권 장악에 큰 장애물이었지만 네코부대의 활양으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사진: 소련제 미그-15기 모습. 6.25전쟁 당시 최신예 전투기로서 미공군의 제공권 장악에 큰 장애물이었지만 네코부대의 활양으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6006부대의 네코부대 활약상] / ⓒ U.S. Air Force)



1950년 4월, 니콜스와 한국 병사들은 6006부대의 지시로 평안남도의 '청천강' 인근에 은밀히 침투하였습니다. 
네코부대원들은 여기에서 미그-15기의 엔진 등에 사용되는 부품과 각종 장비를 떼어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도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총격전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봉의' 이등중사, '윤일균' 대위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품을 가지고 오기 위해 버티다가 전사했습니다. 덕분에 UN군은 6.25전쟁 휴전까지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네코부대는 적진 침투작전의 특수임무를 실행하여 MIG-15기의 정보를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사진: 네코부대는 적진 침투작전의 특수임무를 실행하여 MIG-15기의 정보를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네코부대 - 6006부대 산하의 북한 침투 특수임무 첩보부대] / ⓒ defense.gov)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


네코부대의 활약은 매우 뛰어났지만 그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도 있습니다. 1953년 6.25전쟁이 휴전을 맺자 육군 소속의 첩보부대인 켈로부대가 해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8240유격백마부대' 등이 6006부대로 옮겨 왔습니다. 이들은 휴전 이후에도 특수임무를 받고 북한 침투작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네코부대와 켈로부대원 중에는 북한 출신의 월남 용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족을 구출해 오는 작전도 있었습니다. 또한 국군포로, 공작원, 북한기관원 출신 등 12명을 데리고 귀환하는 침투작전에도 참가했습니다. 

사진: 6006부대 산하 네코부대의 부대장이었던 니콜스의 한국 방문 당시의 사진. 그러나 CIA의 정책에 따라 은둔 생활을 해야만 했다.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사진: 6006부대 산하 네코부대의 부대장이었던 니콜스의 한국 방문 당시의 사진. 그러나 CIA의 정책에 따라 은둔 생활을 해야만 했다.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 / ⓒ 미상)



'김일성'은 이들을 배반자라고 부르며 특히 미워했습니다. 켈로부대의 선박대장이었으며 네코부대에서도 활약했던 '최원모'가 전쟁 후인 1967년 북한에서 사형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일반 선박을 타고 운행하다가 배가 북한에 납북되었었는데, 다른 선원들은 모두 송환되었으나 최원모는 북에 남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과거 켈로부대원이었던 사실이 드러나서 송환되지 못하고 사형 당했습니다. 죄명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그만큼 김일성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 6.25전쟁 중 비정규군으로서 희생을 하고도 역사에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한 장병들이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사진: 6.25전쟁 중 비정규군으로서 희생을 하고도 역사에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한 장병들이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 / ⓒ 미상)



네코부대의 부대장인 니콜스와 연관된 사람들의 피해도 컸습니다. 니콜스의 공작과장이었던 '김인호'의 모친은 북한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가 사망하였고, 니콜스의 정보원이었던 '강창옥', '최명신' 등은 결국 공개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북한 첩보활동을 지휘했던 니콜스는 북한과 소련에 의해 암살 현상금이 걸렸으며, 실제로 3번이나 암살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극비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국인 부인과 아들은 위치가 발각되어 끝내 암살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네코부대의 특수임무 침투작전을 통한 정보가 6.25전쟁의 승패에 직결된 공헌을 세웠다. 당시 훈장을 받을 정도로 중요했던 활동지역 지도.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사진: 네코부대의 특수임무 침투작전을 통한 정보가 6.25전쟁의 승패에 직결된 공헌을 세웠다. 당시 훈장을 받을 정도로 중요했던 활동지역 지도. [네코부대원의 안타까운 일화들] / ⓒ www.kiss7.kr)



휴전 후인 1957년까지도 북한 첩보활동을 벌였던 6006부대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네코부대의 부대장 니콜스는 CIA의 정책에 따라 멕시코에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니콜스는 이름까지 가명으로 바꾸고 신분을 세탁한 채 과거를 말할 수 없는 처지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네코부대원이나 켈로부대원들의 대우는 특별하지 못했습니다. 일반부대로 편입되거나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입니다. 이들은 '비정규군' 신분이었기 때문에 6.25전쟁의 공적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며 원통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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