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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 가계도와 성종의 즉위 - 예종의 죽음과 권력암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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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 가계도와 성종의 즉위 - 예종의 죽음과 권력암투

키스세븐지식 2017. 5. 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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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 가계도와 성종의 즉위 - 예종의 죽음과 권력암투]

조선왕조계보의 8대 왕인 예종은 워낙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엄했던 군주입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주인공 예종은 가계도 내의 권력암투와 남이장군 옥사 사건으로 드라마에도 잠간씩 나오곤 합니다. 12세에 아들을 보았으나 너무 일찍 요절하여 결국 성종이 뒤를 잇게 되는 조선 예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글의 순서]

1. 예종의 가계도

2.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

3. 조선 예종의 죽음


[관련 링크]

조선 문종의 이혼과 결혼들 - 현덕왕후와 단종 죽음의 배경




조선 예종의 가계도, "임금님과 사건수첩"


조선 '예종'은 1468년에 즉위하였습니다.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예종 - 성종으로 이어지는 조선왕조계보에서 8대 왕입니다. 하지만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서 존재감이 없는 왕이기도 합니다. 

겨우 14개월 동안만 왕위에 있었던 예종은 조선왕조 가계도에서 인종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짧은 왕입니다. 그나마도 즉위 직후 4개월은 영의정 '이준'(세종의 손자)이 섭정을 했으니 1년도 채 안 되는 통치를 했습니다. 


사진: 창경궁 문정전의 모습. 존제감 없는 왕, 예종은 짧은 재위기간 중에 왕권강화에 힘 썼다. 12세에 아들을 낳고 20세에 사망한 왕인 예종은 자식을 왕위에 올리지 못하고 제9대 왕에 성종이 올랐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사진: 창경궁 문정전의 모습. 존제감 없는 왕, 예종은 짧은 재위기간 중에 왕권강화에 힘 썼다. 12세에 아들을 낳고 20세에 사망한 왕인 예종은 자식을 왕위에 올리지 못하고 제9대 왕에 성종이 올랐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임금님과 사건수첩"] / ⓒ 미상)


영화 <임금님과 사건수첩>이 인기를 끌자 재조명되었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예리한 추리력과 뛰어난 검술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종의 업적이라면 군부대의 논과 밭을 백성에게 개방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허용한 것이나, 경국대전의 완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포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는 경국대전의 완성을 성종 때 했다고 배웁니다. 


사진: 영화에서는 탐정처럼 추리력이 뛰어난 왕으로 나오지만, 고증이 완벽히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는 코믹시대사극인 셈이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사진: 영화에서는 탐정처럼 추리력이 뛰어난 왕으로 나오지만, 고증이 완벽히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는 코믹시대사극인 셈이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임금님과 사건수첩"] / ⓒ 임금님의 사건수첩 포스터)


조선 예종의 가계도를 보면,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의 아들이며 단종과는 사촌관계이고 다음 왕인 성종에게는 삼촌이 됩니다. 어머니 '정희황후'는 나중에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성종시대의 왕대비입니다. 또한 '인수대비'로 유명한 '소혜왕후'는 예종에게 형수가 되는 사람입니다. 

또한 조선왕조계보에서 3대왕인 '태종'을 기준으로, 예종은 친후손이고 '남이장군'은 외후손입니다. 


사진: 태종부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는 가계도. 왼쪽의 문종은 세조의 형이며, 아랫쪽의 의경세자는 예종의 형이다. 왕실의 혈육관계를 알 수 있게 재구성하였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사진: 태종부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는 가계도. 왼쪽의 문종은 세조의 형이며, 아랫쪽의 의경세자는 예종의 형이다. 왕실의 혈육관계를 알 수 있게 재구성하였다. [조선 예종의 가계도, "임금님과 사건수첩"] / ⓒ www.kiss7.kr)


세조가 한명회와 함께 '계유정란'을 일으켜서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면서 궁궐에 들어갔으나, 첫째 아들 '의경세자'가 세자에 올랐기 때문에 왕자시절의 예종은 조선왕조계보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경세자가 스무 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면서 예종의 인생도 달라졌습니다. 

8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오르고 조선 8대 왕인 예종이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엄한 군주로 변화합니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


세자 예종은 11세에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와 혼인하였습니다. 한명회는 계유정란을 통해 수양대군이 왕에 오르도록 했던 일등공신인데, 왕세자까지 사위로 두었으니 권력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예종이 열두 살 되는 해에 열여섯 살의 장순왕후는 원자를 임신합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어쨌든 조선 예종은 가장 어린 나이에 아들을 두게 된 왕이었습니다. 


사진: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린 세조시대의 공신 한명회 초상. 한명회는 예종의 장인이지만 왕권강화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던 재상이기도 하다. 결국 성종 옹립에도 관여하였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사진: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린 세조시대의 공신 한명회 초상. 한명회는 예종의 장인이지만 왕권강화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던 재상이기도 하다. 결국 성종 옹립에도 관여하였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 / ⓒ 미상)


왕실의 큰 경사였지만 단종의 원한 때문인지, 피비린내 나는 계유정란의 혼령 때문인지, 장순왕후는 출산 중에 열일곱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더구나 며칠 후에는 원자마저 사망해버리며 큰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얼마 후, 조선 예종의 가계도는 '안순왕후'가 두 번째 왕비로 기록되는데 그녀 역시 한명회의 가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세조 이후의 가계도는 훈구파 공신들의 영향권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의 한장면. 세자시절의 예종이 세자빈 한씨와 산책을 하고 있다.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은 장순왕후, 안순왕후로 2명의 부인이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사진: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의 한장면. 세자시절의 예종이 세자빈 한씨와 산책을 하고 있다.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은 장순왕후, 안순왕후로 2명의 부인이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 / ⓒ JTBC 드라마의 한장면)


세자 시절의 예종은 효성이 깊었다고 합니다. 세조 말년이 되어 아버지가 병에 들자 극진히 살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 때문에 예종이 몸을 망치고 일찍 죽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세조의 첫 아들 의경세자는 스무 살의 나이에 죽었는데, 둘째 아들 예종도 똑같이 스무 살에 죽게 됩니다. 그러자 백성들 사이에는 '단종'과 그 어머니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아들을 죽여 복수하겠다고 했다는 야사도 전해집니다. 


사진: 삼촌인 세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단종의 어머니는 현덕왕후다. 현덕왕후는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저주를 하기도 했는데, 세조도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사진: 삼촌인 세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단종의 어머니는 현덕왕후다. 현덕왕후는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저주를 하기도 했는데, 세조도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엄격한 예종과 훈구파 한명회] / ⓒ SBS드라마의 한장면)


어쨌든, 죽음을 앞둔 세조는 죽기 하루 직전에 예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고, 예종은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왕에 올랐습니다. 왕세자였을 때의 그는 말수가 적고 얌전한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는 군주가 되었습니다. 조선 예종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냉정하게 정사를 펼쳤고, 아버지와 친했던 나이 많은 대신들에게도 엄하게 대했습니다. 예종의 가계도에서 장인이었던 한명회에게는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달리 조선 예종은 근엄하고 신하와 잘 어울리지 않는 군주였다. 왕권강화를 위해 남이장군을 죽인 것이 즉위 한 달만의 일이다. [조선 예종 가계도와 성종의 즉위 - 예종의 죽음과 권력암투](사진: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달리 조선 예종은 근엄하고 신하와 잘 어울리지 않는 군주였다. 왕권강화를 위해 남이장군을 죽인 것이 즉위 한 달만의 일이다. [조선 예종 가계도와 성종의 즉위 - 예종의 죽음과 권력암투] / ⓒ EBS 방송의 한장면)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


조선 예종은 세자 시절부터 '계유정란' 공신과 '이시애의 난' 공신들이 권력을 쥐고 조정에 있는 것을 못 마땅해 했습니다. 아버지 세조에게는 왕이 되게 해준 신하들이었겠으나, 예종 자신에게는 왕권을 약하게 만들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구공신인 한명회는 조선 예종의 가계도에서 장인이었지만, 항상 예종과 대립하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조가 살아생전에 아꼈던 신공신 '남이장군'은 세자 시절부터 미워했었다고 합니다. 어린 세자로서 실수가 많던 자신보다 남이장군을 더 좋아한 세조 때문에 시기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국 남이장군과 '강순'은 유자광의 누명을 씌고 예종 즉위 한 달 만에 비참하게 제거됩니다. 


사진: 조선 예종 시대의 권력은 계유정란 공신과 이시애의 난 공신이 훈구파와 종친파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예종과 남이장군의 옥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사진: 조선 예종 시대의 권력은 계유정란 공신과 이시애의 난 공신이 훈구파와 종친파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예종과 남이장군의 옥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 /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조선 예종이 왕권강화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는 '민수의 사옥'과 '묘호' 결정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민수의 사옥이란, 춘추관의 사관이 한명회를 두려워하여 거짓 사초를 적었던 사건입니다. 예종은 왕보다 훈구파 공신을 더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었습니다. 

더구나, 대신들이 결정한 세조의 묘호인 '신종'을 거부하고 강경하게 '세조'를 관철시키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묘호는 왕이 죽은 뒤에 대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라, 왕 자신은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종은 자신의 묘호까지 스스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사진: 묘호는 왕이 죽은 뒤에 공론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예종은 스스로 자신의 묘호를 정했으며 아버지 세조의 묘호도 자신이 강력히 밀어부쳐서 결정했던 왕이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사진: 묘호는 왕이 죽은 뒤에 공론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예종은 스스로 자신의 묘호를 정했으며 아버지 세조의 묘호도 자신이 강력히 밀어부쳐서 결정했던 왕이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 / ⓒ 임금님의 사건수첩)


그런데 예종이 스무 살이 되던 해, 갑자기 패혈증에 걸려서 사망하고 맙니다. 그 전날까지도 멀쩡하게 정무를 보던 조선 예종이었기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왕실은 큰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명회의 세력이 독살을 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복상사를 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종은 어릴 적부터 발에 종기가 생겨서 고질병인 '족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예종의 가계도에는 예종의 아들인 왕자가 있었지만, 권력암투로 인해 의경세자의 아들인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예종은 족질에 걸려서 갑자기 사망했다. 훈구세력과의 갈등 때문에 한명회가 독살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자식이 아니라 사촌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사진: 예종은 족질에 걸려서 갑자기 사망했다. 훈구세력과의 갈등 때문에 한명회가 독살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자식이 아니라 사촌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조선 예종의 죽음과 권력투쟁] /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조선 성종은 원래 왕권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아들의 자손을 왕위에 앉히려던 정희왕후, 의경세자의 부인이며 한명회와 사돈이었던 소혜왕후, 예종과 대립했던 훈구세력의 한명회가 결탁하여 성종의 즉위를 결정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조선 예종은 조선의 임금 중에서 두 번째로 단명한 왕이며 가장 어린 12세에 왕자를 생산한 왕입니다. 

얌전한 왕세자에서 왕에 즉위한지 한 달 만에 피의 옥사를 벌인 예종, 강력한 왕권 유지를 위해 나이 많은 대신들과 권력충돌을 벌였던 예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정치의 흐름에서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 직계 자손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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